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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KBS는 3.1운동․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특별기획 <나의 독립 영웅>을 시리즈로 내보냈다. 그해 5월 7일 KBS가 72회차로 조명한 인물이 엘라수 와그너(한국 이름: 王來)였는데, 미국인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독립 영웅으로 묘사되었는지 궁금해한 사람들이 많았다.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난 엘라수 와그너(Ellasue C. Wagner, 1881∼1957)는 1904년 선교사로 우리나라 송도에 와서 최초의 기숙 여학교인 호수돈여학교(현 호수돈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1906년과 1938년에 각각 제2대, 제4대 교장을 역임했다. 그녀는 1915년 교훈을 '남을 위해 살자'로 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수돈여고 교훈 현재 호수돈여고 교정에 있는 '남을 위해 살자'는 교훈은 와그너 교장이 일제강점기에 제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수돈여고 교훈현재 호수돈여고 교정에 있는 '남을 위해 살자'는 교훈은 와그너 교장이 일제강점기에 제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신정섭

<나의 독립 영웅> 다큐멘터리를 보면, 와그너 교장은 학생들에게 자기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자립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했는데, 이러한 교육철학은 항일 정신의 씨앗이 된 것으로 보인다. 1919년 호수돈여학교에 항일 비밀결사대가 만들어졌고, 재학생들은 같은 해 3월 3일 개성에서 독립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학생들을 따라 개성 시민 1만여 명이 동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경찰은 만세운동을 벌인 학생들을 무차별 연행하였는데, 와그너 교장은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나를 구속하고 학생들은 모두 돌려보내 달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를 양성하는 학교의 교장으로 낙인이 찍힌 와그너는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40년 일본에 의해 미국으로 강제 추방되기에 이르렀다.

와그너 교장은 한국을 떠나기 전, 자신이 애지중지했던 성경책을 당시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였던 독립운동가 고 유달영 박사에게 선물로 주었다. 유달영 박사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 '성서조선' 사건으로 붙잡혀 김교신·함석헌·송두용·장기려 등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바 있다. 그는 2004년 93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는데, 최근 그 귀한 영어 성경책이 모교의 품에 안긴 것이다.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였던 고 유달영 박사 2004년 93세를 일기로 별세한 독립운동가 故유달영 박사는 1936년 개성의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였던 고 유달영 박사2004년 93세를 일기로 별세한 독립운동가 故유달영 박사는 1936년 개성의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누리집 화면 갈무리

지난 5월 7일 국립현충원에서 고 유달영 박사의 아들 유인걸(89) 님을 만나 성경책을 기증받은 김경미 현 호수돈여자고등학교 교장에게 설명을 들어보았다. 김 교장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별 게 아닐 수 있지만, 호수돈 동문인 저로서는 외규장각 도서를 프랑스로부터 돌려받은 느낌"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유인걸님이 아버지를 따라 수원고등농림학교(현재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관사에 거주하셨는데,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폭격이나 화재로 소실될까 봐 관사 앞 배추밭에 구덩이를 파서 성경책을 묻었다고 해요. 당시 15살이셨다는데 89세인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시더라고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책인데, 죽기 전에 아버지의 정신적 모교라고 할 수 있는 호수돈에 기증해야겠다고 결심하셨답니다."

와그너 교장의 성경책 故유달영 박사의 아들 유인걸님이 지난 5월 7일 호수돈여고에 기증한 와그너 교장의 영어 성경책
와그너 교장의 성경책故유달영 박사의 아들 유인걸님이 지난 5월 7일 호수돈여고에 기증한 와그너 교장의 영어 성경책 ⓒ 신정섭

그렇게 해서 와그너 교장의 영어 성경책은 모교인 호수돈여자고등학교(대전 소재 사립학교) 품으로 돌아왔다. 120년이 넘은 성경책은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고 유달영 박사가 껍데기를 씌워 서재에 잘 보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표지를 넘기자 유 박사가 "E. G. Wagner 교장이 태평양전쟁 때 미국으로 귀국하면서 나에게 준 선물 중의 하나"라고 쓴 친필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일제강점기 때 호수돈여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던 고 유달영 박사는 1996년 12월 <문화일보>에 '나의 인생 노트'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면서 당시를 아래와 같이 회고했다.

"호수돈여고는 개성 시내 북부의 높직한 언덕 위에 자리를 잡은 전망 좋은 학교였는데, 전교생이 4백여 명인 학교에 피아노가 20여 대가 있었을 정도로 놀라운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학교가 대가족의 한 집안 같았는데, 학생들은 단순한 학생이 아니라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 함께 싸울 동지들이라고 생각했다."

스승의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남을 위해 살자'는 교훈을 몸소 실천하면서 '다른 나라'의 독립을 위해 뜨거운 피를 바쳤던 외국인 와그너 교장, 그리고 그녀와 뜻을 합쳐 조국의 광복을 위해 살신성인하셨던 독립운동가 고 유달영 박사가 참 스승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계간지 <3.8 민주의거>에도 실렸습니다.


#와그너교장#호수돈여학교#나의독립영웅#남을위해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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