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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법률 실무에 오래 종사해오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질문은 "법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이다.

책 <법은 어떻게 생각하는가>(2025년 3월 출간) 저자는 이에 대해 다소 도발적이지만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법은 정의 실현이나 분쟁 해결에만 머물러 있지 않으며, 오히려 자원의 낭비를 방지하고 효율성을 촉진하는 역할을 지닌다는 것이다.

저자의 설명은 실무가로서 경험한 법과 경제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현실 문제를 날카롭게 해석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법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책표지
법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책표지 ⓒ 글항아리

이 책의 출발점은 "법은 낭비를 싫어한다"라는 명제다. 이는 구체적으로 계약, 손해배상, 권리 구제 등 법의 여러 영역에서 일관되게 작동한다. 계약이 이행되지 않으면 양 당사자 모두가 얻을 수 있었던 자원 활용의 기회가 소멸되고, 이는 곧 낭비로 귀결된다. 따라서 법은 원칙적으로 계약 이행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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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저자는 '한계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실무적으로 대단히 유용한 사고방식이다. 저자의 예시인 목장 소 소송 사례에서처럼, 법원은 목장주가 모든 사고를 예방했는지가 아니라, 사고 예방 비용과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비교해 '합당한 수준'의 조치만을 요구한다. 철조망 설치로 통상적인 안전이 확보되었다면, 더 이상의 과도한 보호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낭비라는 것이다.

크리켓 경기장의 담장 사건도 같은 논리로 설명된다. 10피트 담장으로 대부분의 위험이 차단되었다면, 추가 5피트 설치로 인한 비용은 지나치게 크며, 공이 넘어갈 가능성 자체가 극히 낮다면 효율성 원칙상 추가 조치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린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손해배상 사건에서 법원이 항상 완벽한 예방보다 사회 전체의 비용 대비 효용을 중시한다는 점을 실무 변호사로서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권리의 실질적 의미에 대해서도 저자의 입장은 실용적이다. 권리는 선언 자체보다 그 침해에 대한 법적 구제 방식에 의해 실질적으로 규정된다는 주장은, 실제로 소송에서 권리 주장만으로는 아무런 실효성이 없고, 이를 뒷받침하는 집행 가능성과 구제 수단이 있어야만 권리로 인정된다는 점에서 매우 현실적인 통찰이다.

저자는 협상비용이 들지 않는다면 가장 많은 금액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자가 권리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는 명확한 시장 원칙도 소개한다. 이는 재산권 이전, 인수합병, 계약 분쟁 등 실무 법률 분야에서도 널리 통용되는 원칙이며, 당사자간 거래 효율성을 높이는 핵심적 사고다.

책의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효율성을 절대적 가치로 전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효율성을 주요 사고 도구로 삼되, 반드시 법 체계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법의 목적은 효율성, 정의, 공공의 이익, 인간 존엄 등 다양한 가치가 균형을 이루는 데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효율성을 기준으로 비용과 편익을 분석하는 작업은 언제나 의미 있는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고 설파한다.

특히 "법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특정 행위를 강제하거나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것"이라는 점은 실무에서 소송 전략 수립, 계약 조항 설계, 리스크 평가 시 매우 유익한 통찰이다. 사람들에게 절대적 명령이 아닌 선택지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가장 비용 효율적인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법의 역할이라는 주장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강조한 '질문의 방식'은 모든 법률가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한계적 사고는 "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실제로 해결 가능한 지점과 그렇지 않은 지점을 구분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실무에서 사건을 수임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가장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적 도구다.

이 책은 실무 법률가에게는 사건 분석과 전략 구상에 새로운 사고 틀을 제공하고, 학문적으로는 법과 경제학이라는 두 분야의 접점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 탁월한 저서이다. 저자의 서술은 명쾌하고 논리는 탄탄하다. 법조계뿐만 아니라 정책 입안자, 경제학자, 경영자에게도 효율성과 낭비 제거라는 사고틀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귀중한 지적 자산이라 확신한다.

법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우리가 익혀야 할 거의 모든 법적 사고

워드 판즈워스 (지은이), 노보경 (옮긴이), 글항아리(2025)


#법학#변호사#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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