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제천시 산림의 임도 조성 사업 모습. 산림 내 도로 조성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벌목과 산림사면 상부의 절토 및 하부의 성토가 수반된다. 이러한 벌목과 지형의 변형은 자연스레 산사태 급증으로 이어진다. (사진: 최병성 기후재난연구소 상임대표) ⓒ 최병성 기후재난연구소 상임대표
산불이 날 때마다 정부와 지자체는 "임도를 더 만들겠다"고 말합니다. "소방차가 들어가야 불을 끌 수 있다"는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이 말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따져 보아야 합니다.
임도는 원래 산림경영을 위한 도로입니다. 나무를 심고 가꾸고 베어내기 위한 용도이므로, 일차선 흙길이면 충분합니다. 간벌 작업이나 감시·관찰에는 폭 1미터 정도의 소로도 족합니다. 급박한 물 운반도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소방차가 다녀야 한다는 전제가 붙으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소방차는 10톤 이상의 물을 싣고 다니며, 무거운 중장비 차량이 산길을 달리려면 아스팔트 포장, 배수로, 교량 설치가 필요합니다. 도로 폭도 최소 5~6미터, 회차 공간까지 고려하면 10미터 이상 산림을 훼손해야 합니다. 이는 더 이상 임도가 아니라 산 속 토목 공사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소방차는 한 대만 다니지 않습니다. 여러 대가 줄지어 들어가야 하고, 물을 다 쓰면 다시 내려가야 합니다. 산속에는 급수전이 없기에, 결국 물이 있는 곳까지 왕복해야 하고, 이는 헬기보다 더 느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임도를 어디까지 낼 것인가? "불은 어디서든 날 수 있다"는 이유로 모든 산이 대상지가 됩니다. 사과 껍질을 군데군데 벗기듯, 산 전체가 잘게 나뉘고 연결되며, 생태계는 단절됩니다. 게다가 임도 자체가 불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드나들고, 차가 오가며, 작은 불씨 하나로 큰불로 번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버립니다. '불을 끄겠다'며 만든 임도가, 불을 퍼뜨리는 화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이런 주장이 나올 수 있습니다. "산속에 급수전이 없으니, 대형 송수관을 묻고, 펌프를 돌리고, 관리 인력을 보강하자." 이런 요구는 결국 또 다른 토목공사, 또 다른 예산 낭비로 이어집니다. 심지어 "소방차가 시속 30km로 주행해야 골든타임을 지킬 수 있다"며 더 넓고 더 평탄하고 더 빠른 길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어디까지 들어줘야 합니까? 그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순간,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진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불을 어떻게 빨리 끌 것인가?"가 아니라 "불이 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해답은 길이 아니라 자연기반 해법에 있습니다. 비가 올 때 물을 모아 저장하는 물모이,낙엽층을 보존하고 땅을 촉촉하게 유지하는 생태적 구조 그리고 민가 근처나 도로변 중심의 예방형 방어선,이것이 바로 산불 대응의 지속가능한 해답입니다. 불을 끄기 위해 산을 파괴하지 마십시오. 불이 나지 않도록, 산이 스스로 지킬 수 있게 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 산은 도로가 아니라, 물과 그늘과 낙엽으로 지켜야 합니다. 장비와 인력이 아닌 자연기반해법이 진짜 해답입니다. 소방차가 다니는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