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정의로운전환 2025 공동행동'이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5·31 노동자·시민 대행진’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 민주노총
화석연료는 자본과 권력을 축적하는 도구였고, 이를 기반으로 한 산업과 국가 시스템은 성장과 효율을 명분 삼아 사회 자원을 소수에게 집중시켜왔다. 그 결과 불평등은 심화됐고, 위기는 더 취약한 이들에게 먼저 도달했다. 우리는 그렇게 기후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이 위기의 해결을 말하면서 우리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기후위기의 위험을 실질적으로 줄이고, 안전하고 지속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러나 문제는 단지 에너지원의 교체에 있지 않다. 이 위기는 단지 배출량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존 권력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에너지원만 바꾸는 전환은 결국 기후위기를 만든 구조를 다시 재생산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재생에너지는 분산, 분권이라는 말과 함께 자주 등장해왔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재생에너지 확장은 시장 중심의 민간 발전사업으로 재편되며, 오히려 기존 화석연료 중심 체제와 유사한 방식으로 굴러가고 있다. 대규모 기업이 부지를 선점하고, 지역 공동체는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며, 토지는 투기 대상이 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구조가 견고해질수록,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전환할 것인가, 어떻게 모두를 위한 필수 에너지 공급을 보장할 것인가, 위험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대신, 전환은 다시금 기업의 로비에 의해 좌우되고, 정책은 정부와 자본의 비공개 협상으로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위기 속에서도 안전한 삶을 살아갈 이들은 논의의 테이블에서 배제된다. 기후위기를 경험하고 마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여의 주체가 아니라, 동원의 대상이 될 뿐이다.
이런 상황은 다양한 말들로 포장된다. '분산형', '분권', '소유의 다양화'. 그러나 실제로는 결정권과 이익이 여전히 자본에 집중되고 있다면, 그것은 이름만 다른 화석연료 체제와 동일한 구조일 뿐이다. 공공성과 민주성이 빠진다면, 이름만 바뀐 체제를 반복할 뿐이다
화석연료는 자본, 국가, 군사가 결합해 성장해왔다. 재생에너지도 시장에서 이윤이 된다는 순간부터 대기업이 독점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한화, 두산, 포스코 등의 기존 재벌이 태양광이나 풍력 투자의 주체로 등장한 것이 이 예시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변화를 만드는 운동인척 하는 권력들, 소위 엘리트, 전문가, 자본과의 협력을 하는 단위들은 위기를 유발한 동일한 권력 구조에 기반하여 이들이 마치 선한 진화를 한 것처럼, 공적 역할을 수행할 것처럼 여기며 이를 옹호하고 환영한다. 문제를 바꾸는 게 아니라 얼굴만 바꾼채 그 권력구조를 연장하는 것을 자처한다. 결국 기후위기를 정의가 아니라 관리의 문제로 치부하는 데에 앞장선다. 그럼 우리는 여기서 판단을 해야한다. 이들은 정말로 전환의 주체로 불려도 되는가? 이것이 기후위기 대응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인가?
재생에너지 민영화는 허용 가능한가?
전환이 기존의 권력을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결코 정의로운 전환이 될 수 없다. 기후위기의 원인을 만든 구조를 해체하지 않은 채, 새로운 기술만을 덧씌운다고 해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더욱 명확히 해야 할 것은, 에너지원이 바뀌었다고 해서 권력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태양광과 풍력이 확대된다고 해도, 그 전환이 기존의 권력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 기후정의는 실현되지 않는다. 이름만 바뀐 화석자본, 이름만 바뀐 지배구조가 계속된다면, 이 사회는 조금도 나아질 수 없다. 석탄발전을 하는 민영화는 나쁘고, 재생에너지 민영화는 허용가능한 게 아닌 것 처럼 말이다. 우리는 그래서 누가 소유하고, 누가 이익을 얻는가를 고민해야한다. 진짜 전환인지, 이것이 단지 수단이 대체된 것일뿐인지를 분별해내야한다.
우리가 바꾸려는 것은 단지 기술이나 수단이 아니라,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여야 한다. 에너지뿐 아니라, 노동, 복지, 교통, 산업 구조 전반이 함께 바뀌어야 하며, 이는 시장에 맡길 수 없는 일이다. 시장은 계획하지 않는다. 공동의 안전과 지속 가능성을 조정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선 공공의 개입이 필요하다. 공공성이 회복되지 않는 전환은 시민의 삶을 배제하고, 기업의 이해관계에 종속된 정책으로 흐를 위험이 크다.
그렇기때문에 정의로운 전환은 발전소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우리 삶의 문제이다. 그리고 공공재생에너지는 우리에게 필요한 전환의 시작점이다.
전환은 누가 결정하고, 누가 책임지며, 그 과정에서 시민의 삶과 권리가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는가의 문제다. 우리에게는 공공이 결정하고, 공공을 위한 공공재생에너지가 필요하다. 혹시 '공공'이라는 말이 불편하다면, 오히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제대로 들여다봐야 할 것에 가까울지 모른다.
수단만 바뀐 전환은 전환이 아니다. 진짜 전환은,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2025년 5월 31일, 충남 태안과 경남 창원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노동자,시민 대행진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노동자-시민 대행진 포스터 ⓒ 정의로운전환 공동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