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으로 40년 동안 근무하다 올해 말 퇴직을 앞두고 있다. 틈나는 대로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오마이뉴스>에 실었다. 이들을 한데 모아 깁고 다듬어 책 두 권을 잇달아 펴냈다. 출간을 기념하여 '사진을 읽고 붓글을 보다'라는 주제로 대전 한국조폐공사 화폐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13일부터 25일까지(오전 10시~ 오후 5시) 개인전을 연다.

▲안내 엽서전시장 방문 기념으로 주려고 엽서를 만들었다. ⓒ 정명조
아호를 받다
전시를 앞두고 붓글 선생이 전각을 새겨 주겠다며 아호를 물었다. 급한 마음에 서당 훈장으로 지내는 친구에게 연락했다. 보름쯤 지나 해촌(海村)이라는 호와 그 뜻을 담은 호기(號記)를 받았다.

▲해촌기친구가 고향 마을 이름에서 취하여 호를 지어 보냈다. ⓒ 고암 이후영
친구는 한학과 국악에 정통한 선비다. 그가 지은 한시를 읽으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가 부는 단소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풍류에 젖어 들고, 그가 하는 논어 강독에 참석하면 생각이 더욱더 깊어진다.
호기에서 그는 "吾故舊中 有鄭名朝甫 工學博士而好古學 善作文 嗜游藝者也 自成童以後 遠去鄕井 遊學於大處 成就學問 業廣於寰宇 而以切切思鄕之心 刊案內珍島之書也 (나의 옛벗 가운데 정명조 보가 있는데 공학박사이면서 옛 학문을 좋아하고 글을 잘 짓고 예술에 노닐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성동 이후로 멀리 고향을 떠나 큰 도시에 유학하여 학문을 성취하고 업을 세상에 넓혔는데, 고향을 생각하는 절절한 마음으로 진도를 안내하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라고 나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름을 높일 때 고향에서 취하는 옛사람의 한 방법에 따라 "고향 마을 이름인 해창리에서 취하여 해촌으로 호를 지었다"라고 했다.
또 "吾嘗見吾友之寬如海 而如其顔色也不蹙而愉愉 其辭氣也不怒而溫溫 其持身也不苟而信信 吾友如此氣像 稟受浩浩巨海 是海生吾友 海育吾友 自在平生懷海 故也 (나는 일찍이 내 벗의 너그러움이 바다와 같은 것을 보았는데, 그 안색은 찡그리지 않고 부드러우며, 그 말씨는 성내지 않고 온화하며, 그 몸가짐은 구차하지 않고 유연한 것 같은 것이었다. 내 벗의 이와 같은 기상은 넓고 넓은 큰 바다에서 받은 것이니, 바로 바다가 나의 벗을 낳았고 바다가 나의 벗을 길러 저절로 평소 바다를 그리워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했다.
마지막에는 "吾友兮 以是日益崇德廣業 至望至望 (나의 벗이여! 이를 바탕으로 날로 더욱 덕을 높이고 업을 넓히기를 지극히 바란다)"라며 호기를 맺었다. 바다 같은 마음으로 남은 삶을 살아야 할 까닭을 친구가 일러 주었다.
사진을 고르다
책에 실린 사진 가운데 20여 점을 골라 액자로 만들었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다. 다들 어떤 카메라를 썼는지 궁금해한다. 스마트폰으로 찍었다고 하면 놀란다. 돌이켜보면, 사진 찍을 때 나에게는 늘 운이 따랐다.
눈이 오면 덕유산에 갔다. 몇 번이나 허탕 쳤다. 그러다 마침내, 눈꽃과 파란 하늘이 어우러진 장면을 마주했다.

▲설천봉운이 좋아 눈꽃과 파란 하늘을 같이 볼 수 있었다. ⓒ 정명조
해 질 무렵 예당호를 찾았을 때, 좌대에 한 사람이 보였다. 그가 낚싯대를 드리우는 순간을 마냥 기다렸다.
마곡사 뒷산을 걸을 때 보슬비가 내렸다. 소나무 사이로 안개가 몰려오고 사라지는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세방낙조에서도 운이 좋았다. 소나무 끝에서 떨어지는 해를 카페 앞마당에서 고스란히 담았다.

▲세방낙조소나무 끝에서 해가 떨어졌다. ⓒ 정명조
여러 번 시도하면 언젠가는 기회가 왔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듯, 가지 않으면 멋진 풍경을 담을 수 없었다.
전시된 작품 하나 하나가 소중한 추억을 담고 있다. 사진에 큐알 코드를 넣었다. 이를 스캔하면 사진이 실린 <오마이뉴스> 기사를 읽을 수 있다.
붓글을 쓰다
요즘 캘리그라피에 푹 빠졌다. 배운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붓글을 전시하는 것이 내게 큰 도전이었다. 주변의 격려에 힘입어 용기를 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듣고, 틈틈이 따라 쓰기를 했다.
전시회 일정이 잡힌 뒤부터는 날마다 한두 시간씩 붓을 들었다. 구도를 잡고, 먹물을 조절하고, 붓글을 썼다. 붓은 손끝에서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느 정도 선에서 작품을 마무리해야 했다.
<오마이뉴스>에 보낸 기사에서 글귀를 여러 개 골랐다. 마곡사에서 삿자리를 짠 앉은뱅이 이야기를 듣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이 기적'임을 깨달았다. 우리가 모두 기적 속에서 살고 있음을 감사해야 하는 이유다.
진도에는 '설움을 가락으로 풀어내고, 자연을 붓끝으로 담아내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진도아리랑 노랫말은 애틋했다. 우리 어머니들은 모두 '꽃으로 태어났으나 풀처럼 살다 가셨다.'
멈추면 바로 최고의 전망대가 되고, 죽은 나무도 겨울이 오면 되살아나는 곳이 '덕유산'이었다. 친구들과 산에 오르면서 '백두산! 한라산!'을 몇 번이나 외쳤다. 백 살까지 두 발로 산에 가자고, 한 발로 나뒹굴어도 산에 가자며 한바탕 웃곤 했다.

▲꽃길모든 사람이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 ⓒ 정명조
두 번째로 낸 책 제목이 <걷고 싶은 길>이다. 모든 사람이 '꽃길'만 걷기를 바라면서 꽃잎을 그리듯이 붓을 놀렸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라는 작품을 출입문 옆 벽에 걸어, 전시장을 찾은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구월담과 세방낙조와 예당호와 망탑봉의 풍경을 담은 엽서도 만들어 안내대 위에 올려놓았다.
전시장으로 나들이 가기 좋은 계절이다. 관람객들이 사진과 캘리그라피 작품을 보면, 걷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걸으면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 되고, 나란히 걷다 보면 마음도 어느새 가까워질 것이다.

▲<걷고 싶은 길>책 표지 ⓒ 북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