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왼쪽부터) 마용주, 박영재, 신숙희, 권영준, 오석준, 이흥구, 조대희, 오경미, 서경환, 엄상필, 노경필, 이숙연. ⓒ 사진공동취재단
동서양을 막론하고 패션은 과거 신분사회에서 신분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됐다. 모든 사람들은 사회계급에 따라 맞춤옷과 진배없는 정해진 옷을 입어야만 했다.
옷의 형태와 종류, 색과 소재까지 엄격하게 규율하던 신분 사회에서 패션은 자유롭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싶어하는 인간 욕망에 대한 구속이었고, 불평등한 사회의 상징물 중의 하나였다.
친환경 기류에 의해 옅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한때는 모피와 가죽 제품이 부자들의 전유물과 상징물이었던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사회적 신분에서 자유로워진 오늘날의 패션도 불평등하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과학기술의 발전 및 전통적 가치관의 약화, 개성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적 지위를 나타내는 패션의 역할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옷은 사회의 거울이다. 경제 발전과 소비 시스템, 문화 변천이 패션에 그대로 반영된다. 패션의 기능이나 역할도 달라진다. 하지만 여느 문화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패션의 전통적인 역할이 유지되는 곳도 있다.
사법부의 이례적인 행보로 더 엄중해지는 법복의 의미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 연합뉴스
대표적으로 법정에서 착용하는 법복이 그런 예다. 법복은 공정, 지혜, 양심을 의미한다. 법복을 입는 이유는 법관의 양심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법복에는 '주어진 위치 또는 신분을 가진 사람에게서 기대되는 행위'로 정의되는 '역할'과 관련해 '옷의 고유한 역할 이론'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 법복의 디자인은 전통 의복인 두루마기에서 착안한 것으로, 검은 색 천에 검자주색 띠가 가미되어 있다. 띠의 앞단에는 법원의 상징 문양이 새겨져 있고, 뒤쪽에는 전통적인 매듭 장식을 넣어 한국적인 미를 가미했다. 법복의 앞쪽과 뒤쪽에 있는 수직 주름은 외부 영향에 동요하지 않는다는 법관의 강직함을 상징한다. 넥타이는 남성 판사의 경우 짙은 회색에 법원 문양이 새겨진 넥타이, 여성 판사는 두 번 접힌 회색 에스코트 타이를 착용한다.
법복의 색은 자주색과 검은색, 두 가지다. 자주색은 헌법재판관들이 착용하는 법복색으로, 최고 권위를 상징한다. 판사와 검사의 법복색은 검은색이다. 검은색은 어떤 색과 섞어도 검은색이기 때문에 다른 것들에 물들지 않는 공정함을 나타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둘러싸고 탄핵 찬반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질 당시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법복을 주제로 한 게시글이 적잖게 올라왔다. '법복을 벗어라', '법복 입으니 자기들이 무슨 국가 위에 있는 줄 아나?' 등등. 게시글을 올린 작성자들의 정치 성향을 떠나서 탄핵 찬반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구심점을 법복에서 찾았다는 것은 흥미롭다.
탄핵 심판 이후 법복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같은 법정 드라마에서나 접할 것으로 여겼다. 착각이었다. 대통령 파면 선고 후 사회의 신속한 통합을 위해 재판관 8인이 전원일치된 의견을 내놓기 위해 숙고를 거듭한 노력이 무색하게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주요 뉴스가 사법부에서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 현직 판사들도 이례적으로 여기는 법관들의 행보가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3월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 인용으로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지귀연 부장판사가 써내려간 현실판 법정 이야기도 버거웠지만, 여기에 더하여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통령 선거가 불과 한 달여 남은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는 판결을 내렸다. 원래 영화든 드라마든 시즌1을뛰어넘는 시즌2는 쉽지 않은데, 판결 파급 영향력을 보면 조희대 대법원장이 그 어려운 걸 해낸 것 같다. 덕분에 수많은 국민이 혼란에 빠졌지만 말이다.
상식과 법리에 맞지 않는 판결을 내리는 법관들의 좌충우돌, 이판사판 판결로 그 어느 때보다 법복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 한인숙 기자는 TIN뉴스, 패션저널에서 패션전문 기자로 활동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