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공학 전공자인 글쓴이가 '프로 참견러의 도시 리뷰' 연재를 통해 도시 이곳저곳을 누비며 푸념하듯 리뷰합니다.
동사무소 주요 기능은 '행정민원서비스'의 제공이다. 1990년대 이후 국민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여가 생활의 욕구도 늘어났다. 이와 함께 동사무소는 기존 행정민원서비스뿐만 아니라 주민자치활동과 문화센터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점차 동사무소의 기능이 확대된 것이다.
동사무소와 시청과 같은 공공청사가 행정서비스만 제공하지 않는다는 건 내 기억만 더듬어봐도 알 수 있다. 초등학생 때는 PC를 사용하기 위해 방문했었고 중학생 때는 방과 후 원어민 영어회화 강좌를 수강하기 위해 방문했었다. 성인이 된 후로는 이사 후 전입신고를 하기 위해, 센터의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기 위해 자주 방문했었다.
동사무소가 주민자치와 문화 기능을 수행하던 시기에 명칭을 '주민센터'로 전환하는 지침이 만들어진다. 동사무소 명칭은 약 1955년부터 사용되었다. 주민센터마다 각종 체육, 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공간이 생겨난 배경이다(정부는 2016년 행정복지센터를 사용하라는 지침을 만들기도 했는데, 반드시 의무인 사항은 아니라서 현재 지자체마다 명칭이 다르다. 이 글에서는 동사무소, 행정복지센터를 '주민센터'라고 칭한다).
전국 읍면동마다 설치된 주민센터는 30년이 지난 건축물이 많다. 사실 대다수가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어져서 일부만 보강하거나 보수하면 안전상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 공간이 협소한 게 문제다. 또한 개보수를 하더라도 문화 및 체육 활동 공간으로 활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
가장 큰 문제는, 예전에 지어졌을수록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는 경우가 잦아서 휠체어나 유아차를 이용하는 사람이나 노약자가 이동하는 데 제약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다양한 연유로 노후 주민센터를 새롭게 건립하고 개청 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노후 주민센터, 공공주택과 만나다

▲서울 구로구 오류1동 사진(카카오맵 로드뷰 화면 갈무리) ⓒ 로드뷰
최근 주민센터 건립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문화, 체육 기능의 공공시설뿐만 아니라 주택이 함께 들어서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예를 들면 행복주택과 같은 공공주택이 주민센터 등과 함께 조성되는 것이다. 이 현상은 주거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서울에서 주로 보인다.
국내 주민센터와 공공주택이 함께 건립된 최초 사례는 서울 구로구 오류1동 주민센터다. 1981년에 지어진 노후화된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2020년 주민센터와 공공주택을 복합화한 건축물이 지어졌다. 기존 지상 3층, 지하 1층, 연면적 1029㎡ 규모(약 311평)의 주민센터가 지상 18층, 지하 4층, 연면적 10340㎡(약 3127평)의 복합시설로 탈바꿈되었다.
오류1동 주민센터 외에도 천호3동 주민센터(서울시 강동구)와 제주시 일도2동주민센터 등이 주민센터와 공공주택을 복합화한 사례가 있다. 오류1동 행복주택은 보증금 2천만 원 이하에 월 임대료는 십만 원대 후반에 형성되어 있고 강동천호(천호3동) 행복주택은 보증금 4천만 원~1억 원 초반대에서 월 임대료는 십만 원~칠십만 원까지 다양하다(보증금에 따라 월 임대료는 달라진다). 주택 공급 대상(신청 자격)은 대학생과 청년(만 39세), 한부모가족이나 고령자 등인데, 강동천호 사례는 비싼 편에 속한다.
주민센터와 공공주택 복합화 사업, 어떻게 가능했냐면

▲공공주택이 주민센터 등과 함께 조성되는 이 현상은 주거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서울에서 주로 보인다.(자료사진) ⓒ tuan_p on Unsplash
국내에서 이 주민센터와 공공주택의 복합화 사업 모델이 가능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도시적 맥락을 탐구해 보자. 첫 번째 요인은 주민센터의 위치다. 흥미롭게도 보통 주민센터는 목이 좋다. 지자체와 주민 모두 서로 '접근성'이 좋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래된 건물이기 때문에 주변에 새롭게 지어진 건축물에 비해, 주민센터는 규모가 작은 경우가 많다. 현재 기준의 용적률과 기준에 비해 못 미치는 주민센터가 꽤 있다. 단시간 내에 발전하고 성장한 대한민국 도시에서는 필연적인 변화다. 주택공급을 고민하는 연구자와 정치인 입장에서는 이곳이 '노는 공간'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요인은 국공유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도시 내 국공유지에는 도시계획시설이 이미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공공주택을 지을 만한 국공유지는 많지 않을 뿐더러 택지로 쓸 만한 규모의 부지가 거의 없다. 따라서 새롭게 공공주택 부지를 매입해야 한다. 그런데 당연히 도심 내 지가는 비싸다. 공공주택이 도심지 외곽에 많은 이유다.
정리하면 노후화된 주민센터, 좋은 목에 있는 주민센터, 국공유지가 부족한 현실이 합해져 주민센터와 공공주택이 결합된 공간이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사실 이런 공공업무시설과 주택의 복합화는 일본에서 먼저 시행되었다. 일본 도시마구 청사는 공공청사와 아파트를 복합화한 최초 사례다. 1~9층은 공공청사, 11~49층까지는 주택을 복합화했다. 일부는 상업시설도 도입했다.
그런데 이건 다 누구 돈으로 지을까
공공주택과 복합화된 주민센터는 누구의 돈으로 짓는 걸까. 오류1동주민센터 공사비는 전액 SH공사가 부담하고, 향후 50년 동안 행복주택을 운영하며 사업비용을 회수하는 사업모델이다. 지자체는 사업시행 당시에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주민센터를 짓는다.
주택사업과 토지개발사업을 시행하는 캠코, LH, SH와 같은 공기업이 사업비를 조달한다. 이 같은 사업모델을 '위탁개발'이라고 부른다. 위탁개발업체와 지자체 간 협의를 통해 계약 기간과 사업비 회수 방식을 정한다.
오류1동 사례는 행복주택 사업비용으로 사업비를 회수하지만 사례에 따라 사업비 회수 방식과 기간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공공주택, 상업시설이나 업무시설을 임대하여 수익을 창출하기도 한다. 원칙적으로 수익은 지자체에 귀속되고 지자체는 사업비와 임대 및 관리 업무 대가로 수수료를 수탁기관에 지급한다. 쉽게 말해 할부 개념이다.

▲위탁개발 사업구조 ⓒ 캠코 자료를 일부 편집
어떻게 보면 조삼모사일 수 있다. 지자체는 부지를 내어주고 수탁기관은 사업을 시행하면서 계약기간 동안 사업비를 가져가는 체계다. 지자체는 사업을 시행하기 위한 가용 재원이 부족하고 수탁기관은 장기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를 살리는 상생이다. 국내 사례는 대다수가 위탁개발 모델로 사업이 시행된다.
반면 앞서 살펴본 일본 사례는 재원 조달 측면에서 국내 사례와 차이가 있다. 국내 사례는 '지자체-공기업' 모델이라면 일본은 '지자체-민간'(민관협력) 모델이다. 오류1동주민센터에 지어진 주택이 행복주택(공공)인 반면 일본 도시마구 청사에 지어진 아파트는 분양이 가능한 민간주택이다. 도시마구 청사는 주택 분양수익으로 청사 신축 비용을 마련했다.
국내에도 민간투자사업이 있다. 일본의 민관협력 사업모델의 방식과 유사하다. 민간이 짓고 소유권을 정부에 이전한다. 도로, 철도, 학교, 공공청사, 군시설 등이 민간투자사업이 가능한 대상이다. 현재 서울시 중구 회현동 행정복합타운 사업이 타당성조사 단계이지만, 아직 국내에는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된 공공청사 사례는 없는 상황이다.
노후청사의 공공주택 'O호' 개발, 공공성 담보되어야
2017년 국토교통부는 노후청사 복합개발 선도사업을 발표했다. 구로구 오류1동, 강동구 천호동, 제주시 일도이동 등의 결실을 맺은 사례다. 지난해 8월 국토교통부는 노후 공공청사 등을 활용해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준공 30년 이상 노후 공공건축물은 복합개발 검토를 의무화했다. 임대주택, 공익시설, 상업시설 순으로 복합시설을 고려하도록 했다.
도시계획의 방향도 도심지를 더욱 개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도시계획시설 중복결정, 입체, 복합화는 토지이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이다. 과거에 해당 부지에는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되어 공공청사 기능만 들어갔다면, 이제는 상업시설과 주택시설이 들어갈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게다가 용적률도 상향해 주는 인센티브도 제공한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도 주택 공급 확대 방안으로 도심 내 공공부지를 활용 공급안을 제시한 바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공공주택 10% 1인 가구 특별공급' 제공 등을 내놨지만, 공공청사 활용안은 아니다.
그러나 2024년 당시 정부에서도 '노후 공공청사 검토 시 복합개발'을 의무화했듯, 다음 정부에서도 이 사업은 계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도심지 내 주민센터와 청사는 입지, 청사 노후 상태, 토지이용 등을 고려하면 개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강동천호 행복주택 모집공고안(자료사진). ⓒ 화면갈무리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음식같은 땅처럼, 그냥 집어서 입 속으로 넣기만 하면 된다. 여야를 막론하고 구미가 당길 개발안이다. 공공청사를 통한 'O호 공급'과 같은 정치적 기념비를 새길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개발안을 마냥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시기에 맞게 정말 주거 안정이 필요한 이들에게 공급되길 바랄 뿐이다. 다만, 치적사업에 혈안이 되어 공급 양과 속도에 치중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적 약자 계층에게 공급되도록 면밀히 검토되었으면 좋겠다. 사업성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할 테지만, 국공유지에 지어지는 공공주택인 만큼 공공성이 꼭 담보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brunch.co.kr/@rulerstic에도 실립니다.
*참고문헌
1. 기반시설 복합화 가이드라인 수립 연구, 2015, 국토교통부
2. 노후 공공청사 복합개발을 위한 민관협력방식 활성화 방안 연구, 2018, 건축공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