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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의대 정원 3058명 정부가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 규모인 3천58명으로 확정한 지난 4월 17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2026년 의대 정원 3058명정부가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 규모인 3천58명으로 확정한 지난 4월 17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 연합뉴스

정부의 '항복 선언'에도 불구하고 전국 의대생들의 다수가 강의실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당장 제적될 위기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내달 출범하게 될 새 정부가 '당근'과 함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걸로 확신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이 와중에 여야의 대선 후보자들 들으라는 듯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일부 의대 교수들이 대안을 쏟아내고 있다. 의대생들의 수업 복귀를 촉구하는 것 외에는 관심이 가는 내용은 없다.

어떤 개혁이든 당사자의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정부가 아무런 조건 없이 무릎을 꿇은 건 의료 개혁이 사실상 유일하다. 현재진행형인 검찰 개혁은 '최종 승자'가 결정되지 않았다. 최근 대법원의 노골적인 정치 개입으로 필요성이 대두된 사법 개혁은 아직 첫발조차 내딛지 못했다.

교육개혁은 '배가 산으로 가는' 중이고, 지난 정부의 핵심 공약이었던 연금 개혁과 노동 개혁 또한 탄핵 정국에 휩쓸려 흐지부지된 모양새다. 이 모든 개혁은 차기 정부가 '빚'으로 떠안게 됐다. 대화와 타협, 양보와 절충 속에 어떻게든 결론이 날 테지만, 관건은 여론의 추이다.

여론의 압도적 지지는 개혁을 추진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다. 더딜지언정 여러 차례 공청회를 통해 개혁의 방향과 속도를 조율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역사가 증명하듯, 관료주의적 상명하달식의 독선적이고 독단적인 개혁은 온갖 부작용만 남긴 채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역사적 교훈을 뒤집는 예외가 발생했다. 개혁의 시급성은 물론, 여론의 압도적 지지에도 역대 정부가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주저앉은 처음이자 유일한 사례가 의료 개혁이다. 더욱 기가 막힌 건, '원상복구'를 넘어 정부를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 삼으려는 듯한 태도다.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 이후 벌어진 대혼란 사태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려 했던' 문재인 정부의 의료 개혁은 의협의 집단 반발에 금세 꼬리를 내렸다. 그들의 막무가내 '몽니'조차 어르고 달래며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헛심만 쓴 꼴이 됐다. 그들에게 무소불위의 '힘'만 확인시켜 준 채 의료 개혁은 중장기 과제로 밀려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전임 정부의 실패를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도구로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첫 단추가 잘못 채워졌다. 느닷없는 2천 명 의대 증원안은 게도 잃고 구럭도 잃는 악수가 됐다. 증원 규모가 왜 2천 명인지 대통령과 관련 부처인 보건복지부, 교육부의 관료 그 누구도 설명하지 못했다. 윤 대통령의 '어명'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덜컥 발표한 셈이었다.

그 이후 벌어진 총체적 난국은 이미 우리가 고통스럽게 경험한 바다. 대학별 전형 일정과 엮여 의대 증원 계획을 취소할 수 없어 2025학년도 입학생 규모만 늘어난 기형적인 상황에 놓였다. 그들은 의대 재학생 선배들로부터 '윤석열 키즈'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게 됐다.

다행히도 의료 개혁의 당위는 윤석열의 퇴장과 함께 사라지지 않았다. 당장 지난 3년간의 의정 갈등으로 숱한 환자들이 목숨을 잃거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윤석열 정부의 무책임과 의사들의 오만함을 똑똑히 본 시민들은 의료 개혁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가를 동시에 깨달았다.

그렇게 의료 개혁은 내달 치러질 대선의 화두가 됐다. 아직 여야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의료 개혁에 관한 내용이 빠질 수는 없게 됐다. 역대 정부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 삼는다면, 적어도 의료 개혁만큼은 확실한 대안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다.

최근 공공의대의 신설 문제가 다시 논의되고 있다. 이는 지역의 필수 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실효적인 방안으로 여겨져 왔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추진된 의료 개혁의 핵심 골자로, 여론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기실 낙후 지역 주민들에 대한 의료 접근성은 인권 보장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공공의대의 신설이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 다시 등장할 기미가 보이자, 의협과 의대생들의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일부에선 이러면 새 정부에서도 지금처럼 의정 갈등이 지속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악의 의료 공백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으름장을 놓는 것이다.

그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정책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성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인권 감수성에 의존한 정책은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히포크라테스'와 '슈바이처'를 현실에서 기대하는 건 우스꽝스럽다는 거다.

표현은 고상하지만, 거칠게 말해서 의사에게 특별한 소명 의식을 기대하지 말라는 얘기로 들린다. 공공의대 신설뿐만 아니라 필수 의료 인력 확충, 의료 공공성 강화 등 의료 개혁에 대해 그들이 이구동성 강조하는 해결책은 딱 하나다. '경제적 제도적 인센티브'. 금전적 보상을 확대하고, 근무 환경을 개선하며, 의사에 대한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게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거다.

보상은 넉넉하게, 책임은 지지 않게?

낙후 지역에 근무하는 의사에겐 대도시의 의사보다 더 많은 급여를 지급하고, 관사 등의 주거 복지 혜택을 제공하며, 사소한 의료 과실을 두고 법적 소송에 휘말리지 않도록 최대한 예우해 달라는 뜻이다. 그것이 의사들의 완고한 태도를 풀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거다.

곧, 보상은 넉넉하게 해주되, 책임은 지지 않도록 해달라는 식이다. 이건 일종의 특권의식이 아닐까. 이미 문재인 정부 시절 의협이 공공의대 설립을 반대하며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한 기관이 내놓은 카드뉴스에서 그들의 주장이 드러난 바 있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 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 중 누구에게 진료를 받겠습니까?'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지역의 공공의료원에선 의사 모시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연봉 4~5억 원을 보장한다고 해도 서울에서 내려오겠다는 의사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한편, 외과와 응급의학과 등 필수 의료 분야를 선택하는 의대생도 나날이 줄어드는 추세다.

지방 의대에 갓 진학한 제자들조차 졸업한 뒤 서울로 가는 걸 당연시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지역에 남은 의사들을 '낙오자'로 조롱하는가 하면, 은퇴할 즈음 요양차 고향에 내려와 일하는 걸 루틴으로 여긴다고 한다. 현직 의사와 미래 의사가 될 의대생에게 진정 묻고 싶다. "대체 얼마면 되겠습니까?"

#의료개혁#공공의대설립#2천명의대증원#특권의식#의정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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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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