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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의 생애에서 두고두고 기억되는 날, 1945년 1월 31일 하오, 학병을 탈출하여 7개월의 천신만고 끝에 중경에 도착하여 임시정부 청사 앞에 도열한 장준하와 동지 50여 명은 누구의 지휘구령도 없이 2열 횡대로 열을 맞춰섰다. 일본군대에서 배웠던 제식훈련이 꿈에 그리던 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바뀌는 순간에 유용하게 활용될 줄 어찌 예상했을까.

임시정부 27년의 역사에서 이번처럼 엘리트 청년 50여 명이 한꺼번에 청사에 제발로 찾아 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경사도 보통 경사가 아니었다. 6천리 험한 길을 뚫고 여기까지 온 애국 청년들이나, 산전수전 풍찬노숙을 해가면서 임시정부를 지키고 일제와 힘겹게 싸워온 독립운동가들이나 감격과 감동이 다르지 않았다.

마침 임정청사의 2층 한 방문이 열리고 누런 군복에 역시 누런 색깔의 외투차림으로 50여 세가 되어 보이는 위엄이 풍기는 한 분을 모신 교관과 그 뒤로는 중국 군복들을 입고 5~6명의 장정들이 따라 나오고 있다. 이청천 광복군 사령관이 이들이 도열해 있는 청사의 마당으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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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들은 부동자세를 취하며, 우리의 지도자를 만나본다는 하나의 강렬한 집념 속에 숨을 죽였다.
뒤따르는 몇 명의 군인들을 대동하고 우리 앞에 위엄 있게 걸어오는 분이 바로 이청천장군 이었다.
임천의 중앙군관학교 분교에서 이미 들어온 바로 그 인물, 광복군 총사령관이었다. 이청천 장군이 장준하 일행을 맞은 순간이다.

일제강점기 망국의 청년들에게, 더욱이 민족의식이 살아 있는 청년들에게 김구나 이청천은 민족의 영웅으로 비쳐졌다. 장준하도 일본유학 시절이나 학병, 임천 군관학교 때에 익히 들어온 이름이었다. 마음 깊이 흠모하면서 6천리 장정을 거쳐 여기까지 온 것도 이분들을 믿고 따르려는 일념에서였다.

이 사령관은 일군을 탈출하여 임정을 찾아온 청년들을 격려하면서 "앞으로 나와 함께 이곳에 여러분들이 있을 것이니까, 차차 많은 얘기를 하게 될 것이고, 오늘은 피로한 여러분에게 긴 얘기를 하지 않겠다. 곧 우리 정부의 주석이신 김구 선생께서 나오실 것이다."고 짧은 인사말을 했다.

이 사령관이 말을 맺자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이 좌우에 각료들을 대동하고 청년들 앞으로 다가왔다. 옅은 미소를 담은 선생의 인상은, 검은 안경 속에 장중한 성격을 풍기는 아주 인자한 인상이었다.

김구 주석은 좌우에 선 분들을 청년들에게 소개하였다. 김규식·이시영·조소앙·최동오·신익희·엄항섭·차리석·조완구·황학수·유림·유동열 선생을 비롯하여 임시정부 요인들이었다. 하나같이 조국독립을 위하여 수십 년씩 싸워온 백전노장들이다.

이들의 근엄한 모습이, 잠시의 침묵을 썰물처럼 걷어내고, 이윽고 김구 주석이 말문을 열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일행을 두루 살피고 있었다. 김구 주석의 말씀은 의외로 간단하였다. 우리들의 노고에 대한 치하였다. 뒷날 김준엽은 이날 김구 주석에 대한 인상을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간 소식을 듣고 기다리던 여러 동지들이 이와 같이 씩씩한 모습으로 당도했으니 무한히 반갑소이다. 더구나 국내로부터 갓 나온 여러분을 눈앞에 대하고 보니 마치 내가 직접 고국 산천에 돌아온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북받쳐오르는 감회를 억누르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많은 말이 소용없습니다. 우선 좀 쉬도록 하고, 오늘 저녁 정부에서 동지들에게 베푸는 환영회에서 또 만납시다.(김준엽, 앞의 책)

이날 저녁 환영회가 임시정부 청사에서 열렸다. 이에 앞서 대원들은 인근 목욕탕으로 안내되어 여러 달 동안의 묵은 때를 씻고 광복군의 새 군복이 지급되어 새옷으로 갈아입었다. 이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당당한 광복군이 된 것이다.

이날 저녁의 환영만찬은 청사 건물의 식당에 마련되었다. 김구 주석을 비롯하여 임시정부 각료와 직원 그리고 광복군총사령부 간부들까지 한 자리에 모였다. 중국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는 임시정부의 처지로서는 궁색하기 그지없는 살림이었다. 따라서 이날 만찬에도 간단한 안주와 배갈 술 몇 병이 전부였다. 하지만 장준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파티 음식보다 더 풍요로운 잔치상으로 인식하였다.

신익희 내무부장의 환영사에 이어 김구 주석의 격려사가 있었다. 주석의 격려사는 낮에 있었던 짧은 환영사에 비해 톤이 높고 다소 격렬했다.

일제의 폭정으로 모두 일본인이 된 줄로 염려했는데 그것이 나의 기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용감하게 탈출하여 이곳까지 찾아와 주어 고맙다. 숭엄한 조국의 혼이 살아있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지금 일인들은 한국 사람이 일본인이 되고자 원할 뿐 아니라, 한국사람이 한국말조차 모른다고 선전하지만, 한국의 혼은 결코 죽지 않는 다는 것을 여러분이 보여주었다. 외국인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는가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이 밤중에 여러분을 이끌고 중경 거리를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덧붙이는 글 |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실록소설 장준하]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실록소설장준하#장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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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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