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만교향곡 3번을 연주하고 있는 양주시립교향악단 ⓒ 한기홍
박승유 지휘자가 이끄는 양주시립교향악단의 지난 4월 30일 슈만의 교향곡 3번 공연은 두 가지 면에서 특별했다. 우선 양주시향과 시립합창단의 백석읍 연습실에서 콘서트가 열렸다는 점.
양주시향은 경기북부의 유일한 시립교향악단이면서도 전용 연주장이 없다. 대신 사용하는 경기섬유종합지원센터 대강당과 양주문화예술회관은 연주회 전용 홀이 아니다.
음향과 무대 시설이 클래식 음악 연주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랜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한 무대 위에 오를 수 없으니, 피아노협주곡은 늘 레퍼토리에서 제외된다.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으면 연주회를 열 수 없을 정도로 음향시설은 열악하다. 클래식 음악 연주를 마이크를 통해 들어야 하는 현실은 가혹하다.
양주시향의 슈만 심포니 3번의 연습실 공연도 그같은 고민에서 비롯됐다. 이 교향곡은 4악장이 백미다. '쾰른대성당에서의 장엄한 의식'을 담은 4악장은 종교적 숭고함과 내면적인 감성을 표현하고 있다.
천정의 높이가 확보돼 공명이 이뤄지지 않으면 4악장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다. 박승유 지휘자는 고민 끝에 천정 높이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연습실을 연주장으로 선택했다.

▲양주시 백석읍 양주시향 연습장의 천정 모습. 천정의 높이가 어느 정도 확보돼 교향악 연주 시의 공명 효과를 거둘 수 있다. ⓒ 한기홍
낭만주의를 교향곡 장르에 정착시킨 슈만
연습장은 80명 정도의 청중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다. 양주시향은 오전 11시에 시작하는 마티네 공연에 양주시민 80명을 초대했다. 소규모 청중이 마치 실내악을 감상하듯,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었 수 있었던 것이 두 번째 특별함이다.
15세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해 첼로와 지휘를 오래 공부한 박승유 지휘자는 슈만의 3번 교향곡을 "빈 고전주의와 독일 낭만주의 사이의 가교"라고 평가했다.
고전주의 작곡가들이 완성한 교향곡 형식을 기본 바탕으로 삼되, 낭만주의적 정서를 확장하여 담아낸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 차이를 건축물에 비유하여, "기둥이나 방의 구조는 예전 건물과 비슷하지만, 더욱 감성적인 인테리어로 꾸민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교향곡 3번은 슈만이 남긴 마지막 교향곡이다. 슈만은 총 네 개의 교향곡을 썼으며, 3번과 4번은 수정과 출판 시기의 차이로 순서가 바뀌었다. 이후 브람스가 교향곡 1번을 발표하기까지 약 26년 간의 시간적 격절이 있다.
"슈만은 형식보다 흐름과 분위기, 다시 말해 '정서의 연속성'을 더 중요시한다. 양주시향의 이번 연주를 들어봐도 슈만의 교향곡은 보다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내러티브 전개가 특징임을 알 수 있다."
박 지휘자가 보기에 그런 점에서 슈만은 단순한 '가교' 이상의 존재다. 낭만주의가 교향곡이라는 장르 속에서 깊이 뿌리내리고 꽃피우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음악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에 선 인물이라는 평가다.
빈 국립음대에서 수학한 박승유 지휘자는 오스트리아 빈의 음악적 전통의 맥락 안에서 성장했다. 빈 국립음대 지휘과의 대부 한스 스바로브스키, 그의 제자였던 우로스 라요비치 교수의 계보를 박 지휘자는 계승하고 있다.
거장 스바로브스키는 "음악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닌, 논리적 구조에 따른 예술"이란 철학을 견지했다. 지휘자는 곡을 해석하는 사람이지,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는 예술가가 아니라는 관점이다.
'작곡가의 의도 구현'을 중심에 둔 빈의 음악 전통
스바로브스키의 이같은 고전주의적 지휘 철학이 박승유에게는 어떻게 계승되었을까. 그는 스승 라요비치 교수가 은퇴하기 직전 마지막 수업에서 했던 말을 이렇게 회고했다.
"너희들이 기억하고, 해야 할 일은 '빈 정신'을 잇는 것이다. 그 말을 저는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정신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노력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 말씀을 들은 직후, 마치 마법 주문이 걸린 듯 그냥 자연스럽게 제 안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스바로브스키 학파의 많은 가르침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지켜가고 있다고 느낀다.
물론 예술가가 감정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 역시 스바로브스키의 말처럼, 감정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되는 것'이라고 믿는 편이다. 이 두 표현은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먼저 논리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작곡가가 의도한 음악을 충실히 구현해 낼 때—연주자든 관객이든—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감정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제 지휘 스타일도 '개인의 감정 전달'보다는 '작곡가의 의도 구현'을 중심에 두고 있고, 이는 분명히 빈의 음악적 전통과 철학 안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다."
"관현악법의 구사에 있어서도 슈만은 목관악기의 서정적인 선율 사용이 돋보인다. 베토벤처럼 금관과 타악의 화려함보다 현악기의 따뜻한 질감과 목관의 색채감을 중심으로 감정선을 펼쳐내고 있다."
시민 청중과 함께 양주시향의 슈만교향곡 3번을 따라들었다. 베토벤 교향곡과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전개를 보여준다. 베토벤은 명확하고 논리적인 형식을 중시했고, 각 악장은 전개-재현부 등 고전적 틀을 비교적 엄격히 따랐다.
반면 슈만은 형식보다 흐름과 분위기, 다시 말해 '정서의 연속성'을 더 중요시한다. 양주시향의 이번 연주를 들어봐도 슈만의 교향곡은 보다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내러티브 전개가 특징임을 알 수 있다.
관현악법의 구사에 있어서도 슈만은 목관악기의 서정적인 선율 사용이 돋보인다. 베토벤처럼 금관과 타악의 화려함보다 현악기의 따뜻한 질감과 목관의 색채감을 중심으로 감정선을 펼쳐내고 있다.
양주시향의 연주회에 가기 전 세계적인 대가들이 지휘한 슈만 교향곡 3번 연주를 유튜브로 듣고, 그 연주평을 찾아 읽었다.

▲양주시향 지휘자 박승유는 빈 국립음대에서 첼로와 지휘를 공부했다. 빈의 고전적 음악 해석의 전통을 계승한 지휘자로 평가받는다. ⓒ 한기홍
먼저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서정성과 깊이를 강조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과연 템포는 다소 느리지만 서사적 흐름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4악장의 종교적 장중함을 마치 오페라처럼 표현하고 있다.
레너드 번스타인은 어떨까. 전체적으로 빠르고, 감정의 파고를 과감하게 밀어붙였다는 평가다. 그는 1악장에서 이미 영웅적인 인상을 부각하고 있다. 5악장은 거의 축제 음악을 연주할 때처럼 감정을 폭발시킨다.
박승유 지휘자의 해석은 크리스티안 틸레만을 닮았다. 틸레만은 전통적인 독일 낭만주의 해석의 정수를 보여준다. 금관은 장중하고, 현악은 묵직하고 유려하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왜 현장에서 봐야 하는지 알겠다"
4악장에서는 종교적 장중미와 엄숙함의 절정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브루크너적인 무게감이 느껴지고, 독일 전통의 구조적 완결성을 중시한다.
이날 연주는 비록 80명의 청중으로 한정돼 있었지만, 현장감을 만끽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연주였다. 양주시향의 연습실 공연은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공연이 끝나고 한 시민 청중도 이렇게 말했다.
"바로 5m 앞에서, 연주자의 표정과 동작에서 퍼져나오는 음악이 이렇게 감동적인 줄을 예전에는 몰랐다. 유튜브에서 봤던 뉴욕필이나 빈필 공연보다 더 좋았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왜 현장에서 봐야 하는지, 오늘 공연을 보고 확연하게 깨달았다. 양주시가 추진 중인 아트센터 건립이 조속한 시일 내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공채 24기)에 입사했다. 이후 월간중앙에서 오랜 기간 기자로 일했다. 사회팀장, 정치팀장을 거쳐 선임기자로 다양한 분야 인물 인터뷰 기사와 탐사보도에 참여했다.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현상을 시대적 흐름과 견줘보며, 여러 인물 간의 조화와 긴장관계를 현장을 찾아 들여다보고 싶은 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