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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에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군."
가수 이상은씨의 <언젠가는> 가사 중 일부다. 지난 4월 만난 26살 현동빈씨는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로 이상은씨를 꼽았다. 돌아갈 수 없는 젊음과, 그 속에서 무엇을 사랑했는지는 훗날 추억이 되어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동빈씨는 자신에게 음악이 그런 존재라고 했다.
살면서 인디밴드 음악을 들어본 적도 없었던 나는 작년 여름, 홍대의 작은 펍에서 그의 노래를 처음 듣게 됐다. 불금,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며 시끄럽게 떠들던 술집 한켠에서 내 또래로 보이는 이들이 연주하는 음악이 울려 퍼졌고 젊은 열정이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잔잔하면서도 경쾌한 리듬과 직접 말을 건네는 듯한 솔직한 가사. '네모난구'를 알게 된 후 밴드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그때를 인연으로 그의 다른 공연들도 찾아갔고, 음악으로 젊음을 불태우는 이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어른이 건넨 진짜 위로, 노래로 기억되다
대한민국에서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 직업으로 삼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좋아하는 걸 쫓아 사는 청년이 있다. 무대 위에서 자유를 노래하는 26살, 동빈씨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동빈씨를 처음 만난 홍대 펍'네모난구' 밴드 공연 사진. 가운데가 동빈씨다. ⓒ @the_square_9
"저는 표현 욕구가 많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걸 말로는 잘 못해서… 음악이 제일 자연스러웠어요."
그는 5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당시엔 유행처럼 피아노 학원에 다녔고,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는 것도 좋아했다. 피아노를 치며 흥얼거리던 멜로디는 자연스럽게 그의 삶에 녹아들었고, 음악은 그렇게 그의 일상이 되었다.
어른들에 대한 반감이 있던 고등학교 시절, 동빈씨는 이상은씨의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았다. 그 후 그의 음악과 삶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상은 씨가 우울증을 앓던 친구를 위해 만든 노래가 있었어요. 그걸 들었을 때 진심이 느껴졌죠. 이분은 옆에 있는 사람을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구나, 멋있다고 느꼈어요."
그는 '멋있다'는 말이 단순히 음악을 잘하는 걸 넘어선다고 말한다. 음악을 들었을 때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 듣고 나서 '좋다'고 느껴서 플레이리스트에 담게 되는 그런 힘이 있는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진정성 있고, 꾸밈없는 사람이다.
"그땐 어른은 다 나쁜 사람이고 진심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분의 노래는 진짜 어른이 해주는 말 같았어요. 철학적인 가사였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해서 마음 깊이 와닿았죠."
네모난구, 모난 청춘들이 만든 음악 공동체
그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닌,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다양한 음악 수업과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시간이 지금의 음악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학생에게 많은 선택권을 주는 곳이었어요. 정해진 시간표보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들이 많았죠. 그 덕분에 나를 들여다보는 법을 배웠어요. 외롭기도 했지만,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게 됐어요."
혼자 곡을 쓰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외로움도 커졌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밴드였다. 이름은 '네모난구'. 둥근 공이 네모날 수 없는 것처럼 단점도 있고 각자의 모서리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는 의미다. 승우, 다현, 동빈, 금성. 네 사람은 모두 고등학교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이다.

▲'달' 앨범의 표지환한 달빛이 꿈을 쫓아 가는 청년들을 비추고 있는 것 같다. ⓒ @the_square_9
"우리는 어디 하나 하자가 있고, 각자의 모서리를 가진 존재들이에요. 그걸 밴드 이름에 담았어요. 예고도 실용음악과도 아니었던 저한텐 음악하면서 늘 외로움이 있었는데 밴드는 그걸 이겨내게 해줬어요. 같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음악을 더 즐겁게 만들어요."
그의 첫 앨범 '달'은 고등학교 기숙사에 가는 길에 달을 보며 작곡한 곡이다. 이 노래로 네 명의 멤버가 처음 모였기에 그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고등학교가 워낙 시골이라 별도 달도 잘 보였어요. 다 같이 산책하던 길에 가로등 대신 달빛이 환하게 비췄죠. 그 순간 달이라는 존재가 소중한 사람과 같은 존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원달빛축제 때 공연하는 '네모난구'가제트공방이 작업한 공연장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동빈씨와 멤버들 ⓒ 동빈제공
지난해 가을, 동빈씨가 이끄는 밴드 '네모난구'는 노원구에서 열린 '달빛산책' 축제에 지역 창작공방인 가제트공방과 함께 참여해 특별한 무대를 선보였다. 공방에서 일하던 밴드 멤버 금성 씨와의 인연으로 성사된 이 프로젝트는 나무로 만든 설치 예술과 따뜻한 밴드 사운드가 어우러져 산책길을 지나던 시민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그 순간, 사람들은 잠시나마 음악에 귀를 기울였고 쉬어가는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목공과 음악이라는 서로 다른 예술이 만나면서 밴드 음악도 다른 예술 장르나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지역사회에 따뜻한 울림을 남겼다.
"너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 아픔과 진심을 담은 노래

▲음악 작업 중인 동빈씨피아노와 모니터 앞에서 음악 작업 중인 동빈씨의 모습 ⓒ 한시온
그의 노래에는 진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너에게 말해주고 싶어요'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할머니를 위해 쓴 곡이다. 사촌 형 결혼식장에서 눈물을 흘리던 할머니의 모습에서 그는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떠올렸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넨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아요. 제목이 문법적으로는 어색한 문장이지만 그게 진심 같았어요. 그래서 '너에게 말해주고 싶어요'라는 제목도 그대로 두었어요."
또 다른 곡 '표류'는 군대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사람들을 케어 해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는 감정적 소모가 컸다. 그 때 느낀 고립감과 지침을 바다 위를 떠도는 감정으로 표현했다.
"기지가 바닷가 근처였는데 어디로 갈 수 없고 정처 없이 헤매는 기분이었어요. 그 상황 자체가 '표류' 같았죠."
그의 곡에는 자신의 경험뿐 아니라 친구들의 감정도 담겨 있다. 방황, 짝사랑, 외로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이야기들이다.
"빛을 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청년 음악인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단연 '경제적인 문제'다. 동빈씨는 부모님의 지원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다.
"음악과 일을 병행하다 보니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요.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벌려면 작업 시간이 줄어들고, 팀원들과도 시간 맞추기가 어렵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냉정하게 말하면, 실력이 압도적으로 좋았으면 이렇게까지 어렵진 않았을 수도 있어요. 근데 음악을 한다는 것보다 청년으로서 사는 게 더 힘든 것 같아요. 다들 지방에서 서울로 왔지만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거든요. 결국 음악에 100% 집중하긴 어려워요."

▲동빈씨의 작업실 내부벽에 각종 음악 장비와 포스터가 걸려있다. ⓒ 한시온
음악 작업 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그는 매일 작업실로 향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루 종일 있는 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피아노를 켜고 손을 올린 채 앉아 있는다.
"그냥, 저인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이 음악이 우리 밴드 '네모난구' 자체를 드러내는 음악이면 좋겠어요. 저는 음악이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이 음악인 아티스트를 좋아해요. 저도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언제까지 음악을 할 거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정해놓은 건 없어요. 하고 싶을 때까지 할 것 같아요. 나중에 가정을 꾸리고 직업으로 못 하게 되더라도 피아노는 계속 뚱땅거리며 살고 싶어요."
10년 뒤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도 음악하고 있지 않을까요? 건물 하나 사서 멤버들 방 하나씩 주고, 옆방에서 다 같이 음악하면 좋겠어요(웃음). 그렇게 그냥 좋아하는 것 하면서 살고 싶어요."
한때 그는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빛을 내지 않아도 괜찮으며, 있는 그대로의 나로도 충분하다는 걸. 그래서 그의 음악은 화려하지 않아도 따뜻하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 듣고 싶은 음악은 그렇게 반짝이지 않아도 진심이 담긴 노래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