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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덕다방 외관 ⓒ 박지우
골목을 꺾어 들어가면 보이는 한 건물. 문 앞에는 여러 화분이 놓여 있어 소박한 생기를 더한다. 노란색 세로 간판에 이름이 또렷하게 적혀 있다. 오래된 동네 골목의 정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곳은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복덕다방'이다.
가게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테이블에 모여 실을 꺼내 놓고서 저마다 현란하게 뜨개질을 하고 있다. 벽면을 둘러보니 뜨개와 관련한 여러 명언이 보인다. 마치 뜨개 교습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카페는 언제부터 뜨개를 위한 공간이 된 것일까?
평소에 뜨개를 좋아해서 동네 뜨개 모임이나 공간들을 찾아보던 나는 '복덕다방'이라는 이름이 인상 깊어 지난 4월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사람들이 모여 뜨개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한 차례 더 방문해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뜨개 ⓒ 박지우
- '복덕다방'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지으셨나요?
"원래는 '21세기 복덕방'이었어요. 동네 부동산에서 어르신들이 믹스커피 마시면서 담소 나누는 모습을 좋아하거든요. 사랑방처럼 되길 바라는 의미로 지었는데 이 동네는 '복덕방'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는 부동산도 있기도 하고, 여러 사정으로 '복덕'만 떼어왔습니다. 저 스스로를 칭할 때는 '복주'라는 이름을 쓰는데 예상하는 것처럼 '복덕다방 주인'이라는 뜻이랍니다."
- 복덕다방은 언제부터 '뜨개 카페'가 되었나요?
"개업 후 혼자 뜨개를 하는 것이 심심해 당근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함께 할 사람을 모으면서 뜨개인의 사랑방 같은 곳이 됐어요.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알려지다가
한 뜨개인이 SNS에 이곳을 소개하며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자재도, 실도 팔지 않는 곳에 뜨개와 관련 있는 건 뜨개질을 하고 있는 저 뿐이에요. (웃음) 공간만 제공할 뿐인데도 사람들이 찾아준다는 게 감사하고 신기합니다."

▲복덕다방에 붙어있는 인쇄물 ⓒ 박지우
- 사람들과 같이 떠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대바늘은 한 코가 길잖아요. 한 줄 한 줄 떠야 다음 단으로 넘어가고 옷이 늘어나요. 그 과정이 지루하기도 하고, 집에 있으면 다른 일 때문에 집중이 안 되는데 가게에서 사람들이랑 얘기하면서 떠야 빨리 뜰 수 있어요. 모여서 뜨면 더 재밌어요. 그리고 뜨개인들은 모두 긍정적이에요. 누군가 "이거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하면 모두가 "그럼요, 할 수 있어요"라고 해요. 안 된다고 하는 뜨개인은 없어요. '뜨개 모임이 아니라 긍정모임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요."
- 뜨개질의 특성상 오래 머물러야 해서 회전율이 낮을 텐데, 경영에 대한 고민은 없으세요?
"저는 손님 한 분이 오셔서 넓은 테이블에 앉아 계셔도 상관없어요. 주변에서 '시간 제한 걸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도 하는데, 제가 내키지 않아서 하고 싶지 않아요. 뜨개 하다 보면 2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거든요. 손님들이 이곳에 와서 온전히 즐기는 게 더 중요해요. 가게 운영도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서 이 공간을 언제 닫을지 예상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당장은 방문한 분들이 마음 편히 있다가 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뜨개하는 분들은 많이 드세요. '오래 있었던 것 같다'면서 또 시키기도 하고요. 이곳이 오래 유지되기를 바라는 손님들이 많이 배려해주시는 것 같아요."

▲복덕다방 내부 벽면 ⓒ 박지우
- 벽에 붙어 있는 '뜨개수련'이라는 문구가 인상 깊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마음이 힘들 때 요가나 명상을 해봤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잘 잡히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뜨개는 달랐어요. 손을 움직이니까 집중도 잘되고, 마음 속 응어리가 해소되더라고요. 그때부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수련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저에게 뜨개는 마음을 다듬는 과정이에요."
- 그렇다면 뜨개를 하면서 새긴 사장님만의 인생 교훈이 있으세요?
"'틀린 걸 알았으면 빨리 풀자', 그리고 '그냥 하자'. 뜨개는 꼼수를 부릴 수 없어요. 틀리면 틀리는 대로 모양이 다르게 나와거든요. 정말 솔직해요. 내가 한만큼 그대로 드러나요. 틀렸으면 바로 잡고, 아니면 틀린 걸 인정하고 그냥 하던지. 그 두 가지가 인생과 맞닿는 지점이에요."

▲복덕다방 전경 ⓒ 박지우
- 뜨개가 새로운 취미생활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런 변화를 지켜보며 바라는 점이나,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1등만 인정해주잖아요. 근데 저는 잘못해도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수련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쉼을 알아가는 게 진짜 수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잠깐 쉬어도 돼요. 중요한 건, 그때 불안해하지 않는 거예요. 요가나 명상은 몸이 아프면 멈추잖아요. 마음이 힘들면 잠깐 쉬고, 괜찮아지면 다시 돌아오는 것. 뜨개는 저에게 그런 존재예요. 못해도 괜찮아요. 뜨개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 자체를 즐겼으면 좋겠어요."
사람과 가까워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인데도 이상하게 사장님과는 금방 편해졌다. 좋아하는 게 비슷해서였는지, 생각이 닮아서였는지. 말보다 먼저 실이 우리를 이어준 것 같았다.
뜨다가 만 실타래를 정리하며 사장님과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자연스럽게 인근에 위치한 치킨집으로 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가게에서보단 조금 더 느슨한 마음으로, 가볍지만 진심이 담긴 말들을 주고받았다. 조용히 엮인 인연이 반가웠다.
복덕다방은 그저 뜨개 카페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뜨개를 하며 서로 마음을 나누는 이곳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소소한 위로를, 뜨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준다.
편안하게 앉아 실을 떠가며, 그동안 마음에 쌓인 응어리를 풀어갈 수 있는 곳. 단순한 취미를 넘어 일상 속 작은 수련을 선사한다. 오래된 골목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오아시스, 복덕다방. 마음을 가볍게 하고, 실처럼 촘촘하게 엮은 것 같은 소중한 인연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뜨개가 처음이라 해도, 실이 헝클어져도 괜찮다. 마음을 여유롭게 놓고, 새로운 인연과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복덕다방, 그곳에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따뜻한 기운을 느껴보길 추천한다.

▲복덕다방에 꽂혀있는 책 ⓒ 박지우
덧붙이는 글 | ‘뜨개질’의 ‘-질’은 ‘잔소리질’, ‘허세질’처럼 부정적인 뉘앙스를 띠는 경우가 많습니다. 행위 자체를 낮춰 보이게 할 수 있는 ‘뜨개질’ 대신, 더 따뜻하고 중립적인 느낌의 ‘뜨개’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