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남준 I '필름을 위한 선' 뉴 시네마 페스티벌 필름 메이커스, 시네마 테크. 1965 / 사진: 피터 무어 ⓒ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아트센터(관장 박남희)' 1층 제1전시실에서 '전지적 백남준 시점(Play It Again, Paik)' 전시가 열린다. 영상과 설치, 백남준과 같이한 공연 등을 카메라에 담은 '피터 무어' 사진도 볼 수 있다. 그는 "내가 이걸 기록하지 않으면 이 모든 게 사라질 거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그가 평생 관심을 둔 시간과 시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추상적 시간의 시각화
백남준의 1963년 첫 전시 제목은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이다. 음악의 전시라니 낯설다. 그만큼 음악 즉 '시간'에 초점을 둔 전시였다. 여기서 13대 TV를 통해 13가지 시간을 펼쳐 보인다. 쏜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또는 단 몇 초가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지는 시간도 있다, 또 기억하는 플러스 시간도 동시에 망각하는 마이너스 시간도 있다.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열린 백남준의 첫 전시 장면 중 하나. 전시장에 13가지의 시간을 표현한 13대의 텔레비전을 전시했다. 그중 1대가 고장이 나다 ⓒ 백남준아트센터
칸딘스키가 '추상적 공간'을 창안했다면, 백남준은 '추상적 시간'을 발굴했다. 백남준은 프랑스 출신 백남준 학자 '블로흐(Bloch)'와 인터뷰에서 불로흐가 "당신에게 추상적 시간은 뭐냐?"고 묻자, 백남준은 "그건 내용 없는 공허한 시간이다. 선(Zen) 철학이 발전시킨 종합적 사상이다. 음악처럼 영상은 우리의 의식을 멈추고 과거와 현재를 함께 공식화하는 기술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선보인 백남준의 '달은 가장 오래된 TV(1965)'도 시간이 주제다. 그냥 밤하늘의 달을 촬영한 비디오가 아니다. TV에 전자석을 부착해 전자빔을 조작하는 독창적 방식이다. 이는 달 그 자체를 담기보다는 달의 변화를 통해 '추상적 시간'을 경험하도록 한 작품이다.
백남준은 결국 시간으로 작곡하는 예술가였다. 비디오가 시간을 깊이 탐구하고 이를 예술로 표현하는 가장 좋은 매체로 본 것이다. 그러면서 백남준은 자신의 실험을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Time Based Art)'임을 강조했다.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전방위 예술

▲백남준 I '3대의 카메라 참여' 1969. 독일 브레멘 미술관 소장 ⓒ 김형순
백남준이 전시에서 일관되게 중시한 것은 바로 전시장에서 관객의 참여다. 전시의 주인공을 작가보다 관객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쌍방소통'을 중시했다. 1963년 첫 전시에 선보인 'TV 자석'도 그렇다. 1969년 뉴욕 '하워드 와이즈 갤러리'에서 열린 '창조적 매체로서의 TV' 전에서도 그게 반복된다. '3대의 카메라 참여'가 그런 작품이다. 초기작보다 규모도 크고 색도 컬러풀하다.
"여기 12개의 달이 있죠? 시간은 보이지 않지만 나는 시간을 눈으로 보게 하고, 손으로 만지게 하고 느끼게 하고 싶다"(1976년 WNET 방송국 인터뷰). 백남준은 이렇게 신처럼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하면서 그것과 함께 놀고자 했다. 예술영역의 확장이었다.
이런 발상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눈으로 듣고 귀로 본다"라는 개념에서 온 것이다. 서양으로 치면 서구 현대시의 아버지 '보들레르'가 <인공천국> 등에서 언급한 미학과 유사하다. "소리에 색채를 섞고, 색채로 소리를 담는" 그런 공감각의 예술 다시 말해 그런 퓨전과 융합의 미학적 시도였다.

▲백남준 I 'TV 피아노' 1998. 애경산업 소장 ⓒ 김형순
비디오아트는 흐르는 시간을 음악적 감성으로 담는 예술이다. 백남준은 기존의 시각언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간을 경험케 하려 했다. 시시각각 흐르는 시간을 비디오아트로 보고, 듣고, 감지하게 하려 했다. 그런 면에서 비디오는 시공간을 통합해 음악과 미술을 동시에 감상하는 게 정상이다. 이건 그의 비빔밥 미학의 한 단면이다.
이렇게 백남준은 TV와 비디오 등을 활용해 관객에게 시간의 속성을 몸으로 느끼고 사유하고 즐기게 하려 했다. 1990년대 위 'TV 피아노'도 그런 작품이다. 비디오 조각으로도 불린다. 우리가 인간을 이해할 때 시공간을 같이 봐야 하듯, 비디오아트를 감상할 때도 시공간을 같이 봐야 한다.
12대 TV가 피아노 위에 그리고 바닥에 뒤죽박죽 놓여있다. 한쪽은 TV에 카메라가 촬영한 피아노를 실시간으로 송출하고 있고, 다른 쪽은 비디오를 손가락처럼 건반을 연주하는 백남준 모습이 보인다. 비디오로 우리가 예측하기 힘든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피아노 내외부를 보게 한다.
시공간 넘나드는 '천왕성'

▲백남준 I '천왕성' 1991 리움미술관 소장품 ⓒ 김형순
이번에 특별한 작품도 전시되었다. 흔히 보기 드문 백남준의 행성 작품이다. 한국을 상징하는 명사 중 하나인 조선이라는 단어에 '조(朝)'를 보면, 왼쪽에 별이 2개, 해가 1개, 오른쪽에 달이 1개 있다. 우리가 천문학의 민족임을 알 수 있다. 백남준에게도 그런 DNA가 있다. 그가 달과 위성이나 행성에 관심이 높은 건 당연하다. 1990년대 행성 연작도 그래서 나왔다.
이는 1980년대 백남준이 전 지구적 소통을 위해 만든 위성 오페라 만든 '굿모닝 미스터 오웰'도 같은 맥락이다. 이 연작은 1982년에 처음 시작해, 3부작으로 백남준의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해 창공에 그런 것이다. 1990년대 와서는 행성 연작과 연결된다. '천왕성'이 그렇다. 미국 '신시내티'시 백남준 공장에서 만든 것인데. 이밖에도 '해와 달', '금성', '화성', '해왕성' 등이 있다.
천왕성은 태양계의 7번째 행성이다. 대기 중 메탄 성분으로 인해 청록빛을 띤 채 희미한 얼음 고리를 품고 있다. 이런 특징을 살려 화려한 네온과 24개의 모니터로 만들었다. 많은 영상이 들어가다 보니 다채롭고 찬란하다. 우주의 찰나와 영원을 담아 그린 시적 초상화다.
전지적 시점, '오감 동시 만족'

▲백남준 I '모음곡(212)' 중 '뉴욕 판매' 1995 ⓒ 김형순
백남준은 동서문화의 교류를 위한 통로를 지구촌 전역에 소개했다. 사회적, 예술적, 미학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뉴욕 WNET 방송국에서 제작한 '뉴욕 판매'에도 동서의 다양한 삶을 유쾌하게 조망했다. '모음곡 212'는 그중 하나로, 212는 뉴욕지역 (앞) 전화번호다.
1975년 작으로 그해는 유례없이 콜레라, 인플루엔자, 천연두, 유행성 뇌막염, 말라리아, 결핵 등이 유행했다. 당시 이에 지친 사람들에게 안식을 줬다. 국제적인 뉴욕시의 다문화성과 빠른 편집과 유쾌한 전자 음악 콜라주 방식으로 조합했다. 마치 뮤직비디오 같다.
백남준의 휘황찬란한 '감각적 전자화면'이 처음 나왔을 땐 낯설었지만 지금은 익숙하다. 전자적 신호에 따라 변화무쌍한 화면도 흥미롭다. 백남준은 이런 자극이 인간의 뇌 신경에 인간의 상상력을 높여주고, 오감이 동시에 작동하는 감성 시대에 활력을 준다고 봤다. 이밖에도 프랑스 백남준 전문가 '장 폴 파르지에' 연출작인 '남준, 한 번 더'가 이번 전시 제목인데 이도 감상할 수 있다.
나의 실험TV는 '물리적 음악'!

▲백남준 I 인터뷰 영상. 백남준아트센터 소장품 ⓒ 김형순
백남준은 예술에서 변화와 재미를 매우 중시했다. "나의 실험 TV는 (…) 단지 물리적 음악일 뿐이다"라고 했다. 예술은 즐거운 음악이라는 것, 그리고 고체가 액체를 넘어 기체가 되는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TV 촛불'도 선보였다. 우리에게 만지지도 보지도 못한 시간을 감지하게 한다.
그러면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는 시공간이 뭔가를 물어왔다. 백남준도 예외가 아니다. 16세기 유학자 '서경덕'은 이 질문을 하다가 시공간을 대변하는 '태허(太虛)'라는 개념도 찾아냈다. 백남준 생각에 인간이 20세기에는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났지만, 시간의 굴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 했다고 봤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하다 비디오아트를 창안한 것이다.
"모든 과거가 자신의 주머니 안에 있다"라는 백남준 말처럼 과거 시간을 언제든 불러낼 수 있는 게 예술가의 특권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과거의 시간'을 현재화하고 그걸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면 우리도 미래 비전을 꺼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피드백'이 바로 그런 연결 고리인 셈이다. 또 영상 녹화도 '플라스틱 기억'이라고 칭하며 기억과 망각을 통제할 수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