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예산 편성은 '정치적 과정'"이라며 "대통령이 약속한 공약을 지키려면 돈이 뒷받침돼야하고, 이후 견제는 관료가 아닌 국회가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정민
6.3 조기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기획재정부 개편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예산 편성권을 쥐고 있는 기재부의 권한이 너무 비대해 모든 부처의 옥상옥 역할을 하고 있으니 예산 편성기능을 떼내 다른 부처로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기획예산처를 신설해 예산 편성 기능을 담당하게 하고, 세입·외환관리·국유재산 관리 등 국고 기능만 남겨 재정경제부로 재편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런데 예산 편성권을 대통령실이 직접 행사해야 한다는 논쟁적인 주장이 제기됐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29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에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라며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려면 돈이 뒷받침돼야 한다. 예산 짜는 과정은 '행정 절차'가 아니라 '정치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예산 편성은 대통령이 공약 추진 동력의 핵심이고, 국민들로부터 평가받는 '정치 과정'이기 때문에 대통령실이 직접 예산 편성을 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대통령실 정책실장 아래 '예산 수석'이 편성을 맡도록 하고 기재부는 금융위원회에서 일부 기능을 떼어내 재무부로 통폐합하자"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역대 정부에서 대통령실이 기재부를 앞장세운 것에 대해 "책임 회피를 위한 일종의 환관 정치"라며 "예를 들어 윤석열 정부에서 발생한 세수 펑크가 문제가 됐을 때 모든 비판은 기재부로 향했는데 만약 대통령실이 직접 예산 편성의 키를 쥐고 있었다면 책임은 대통령이 직접 져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박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기재부가 대통령실까지 쥐락펴락? 사실 아냐"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자료사진) ⓒ 이정민
- 정치권에 '기획재정부 쪼개기' 논의가 한창이다. 기재부에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돼 대통령실까지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인데 어떻게 평가하나?
"관료가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의 정책을 반대한다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실제 문재인 전 청와대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시 기재부를 통제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정부가 원하는 것들은 기재부가 다 해준다."
- 기재부가 대통령실까지 쥐락펴락한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인가?
"맞다. 기재부는 '재정 건전성'을 우선시하는 집단인데 윤석열 정부가 불러온 세수 펑크에 대해 관료들이 반대를 한 적이 있었나? 없다. 소신에 어긋난다고 사퇴하는 관료를 봤나? 심지어 대부분의 관료들은 자기 승진이 최우선이다. 계엄 때처럼 듣지 말아야 할 명령이 상부로부터 내려오면 문제제기를 해야 하지만 그런 불법적인 일이 아니고서야 어떤 정책에 얼마를 쓰는지에 관료가 불복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그럼 왜 기재부의 예산 편성 기능을 떼 내야 하나.
"대통령제에서라면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이 예산 짜는 과정을 '행정 절차'라고 생각한다.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예산 편성은 '정치적 과정'이다. 대통령이 약속한 공약을 지키려면 돈이 뒷받침돼야 하지 않나. 이후 견제는 관료가 아닌 국회가 해야 하는 것이다."
- 그럼 왜 역대 대통령들은 기재부를 앞장 세웠다고 보나.
"책임 회피를 위해서라고 본다. 대통령들이 자기 앞에 '총알받이' 하나를 세워둔 셈이다. 예를 들어 윤석열 정부 때 세수 펑크에 대해 비판이 기재부로 향했다. 만일 대통령실에서 직접 예산 편성에 키를 쥐고 있었다면 책임은 대통령이 직접 져야 했을 것이다."
또 대통령이 된 다음 생각해 보면 기재부에 일을 시키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에서 일일이 예산 정책을 조정하는 것보다 기재부 장관을 불러 원하는 걸 '해 와라'라고 하면 기재부가 공무원을 쪼아붙여서 결과물을 만들어온다. 일종의 '환관 정치'를 하는 셈이다. 내 눈에 지금까지 대통령들은 기재부라는 환관들을 데리고 정치를 해 왔다. 잘못하면 책임도 비난도 환관에게 돌아간다."
"예산 편성은 '정치적 과정'... 대통령, 예산 편성권 쥐고 책임 다해야"
- 민주당도 기재부의 예산 편성 기능을 분리하는 데는 대부분 공감대가 있는 것 같은데 이를 어느 부처에 주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대통령실에 주자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또 대통령실 권한 비대화에 대한 우려도 있다.
"사람들의 걱정은 이해가 간다. 일부에서는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의 확장적 재정 정책 기조에 대해 재정 악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예산 편성권을 대통령실이 쥔 상태에서 문제가 생기면 당장 화살이 어디로 가겠나. 정말로 재정이 악화된다면 책임은 대통령이 직접 져야 한다. 또 재정 실패로 선거에서 심판을 받을 것 같다면 여당 내에서도 제동을 거는 움직임이 나오는 등 견제가 이루어질 것이다."
- 기재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박 교수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조직개편은 어떻게 이뤄질까?
"기재부의 예산 편성 기능은 대통령실로 보내 정책실장 아래 '예산 수석'이 맡도록 한다. 정책실에서 정책 총괄과 예산 조정까지 맡는 셈이라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책실장의 지위가 동등해진다. 또 현 기재부는 재무부로 바꾸고 지금까지 금융위원회가 맡았던 '국내외 금융 정책' 역할을 재무부로 옮기면 된다.
또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금융감독위원회로 통합하되 감독 기능을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 두 개로 쪼개 독립된 부처 2개를 둬야 한다. 현재 금감원이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감독 기능을 동시에 맡고 있다 보니, 문제가 생겼을 때 소비자 보호보다 건전성을 우선시하는 문제가 생긴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장관급 위원장을 세우고 직원 20여 명 규모의 사무국으로 운영하면 된다."
- 박 교수 말대로 조직을 개편한다면 매년 있던 예결산 절차는 어떻게 달라질까?
"국회의 예산 감독 기능이 커질 것이다. 현재는 법적으로 국회 상임위원회가 예산안을 미리 심사하게 돼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안 한다. 그 대신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활용하지만 심사 기간도 짧다. 반면 제도가 바뀌면 대통령에 책임이 직접 돌아가고 그 견제는 국회가 하게 된다. 예산 통과를 두고 그동안은 기재부와 국회가 마찰했다면 앞으로는 대통령과 국회가 직접 조율에 나설 것이다. 미국처럼 대통령이 의회 지도자들을 불러 설득하고 로비하는 구조다.
여당이라 하더라도 재정 적자가 너무 심해 다음 선거에서 불리해질 것 같다면 반대표를 던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정치가 제대로 돌아갈 것이다. 제대로 안 하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번지면서 대통령과 국회에 모두 책임성과 투명성이 강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