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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똑바로 걸으려고 노력했다. 친위대원은 나를 살펴보면서 약간 망설이는 듯했다. 그는 자기 손을 내 어깨 위에 올려 놓았다. 나는 그에게 될 수 있는 대로 민첩하게 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러자 그는 내가 오른쪽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내 어깨를 돌렸다. (중략) 그날 저녁에야 우리는 그 손가락의 움직임이 가지고 있는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가 경험한 최초의 선별, 삶과 죽음을 가르는 첫번째 판결이었던 것이다. 우리와 함께 들어온 사람의 90퍼센트는 죽음 행을 선고받았다. - 39p

빤하다 생각했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일 거라 여겼다. 홀로코스트, 나치의 유대인 학살 이야기는 이미 너무 많이 다뤄져 낡고 낡은 주제가 아닌가. 영화만 해도 그렇다.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제이콥의 거짓말> <사울의 아들> <소비버 탈출> <존 오브 인터레스트> 등 강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작품과 숱하게 마주한다. 영화보다 몇 배는 족히 될 문학 작품까지 감안하면 많아도 너무 많다. 물론 모두가 훌륭한 건 아니다.

위에 언급한 영화들은 물론, 소설과 체험기까지 꽤나 많은 홀로코스트 이야기를 접했다. 처음 몇은 호기심이었으나 나중엔 직업적 이유로 보아야만 했다. 그런 내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지 않았단 건 의아한 일이다. 홀로코스트와 관련한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각급 학교는 물론, 군대에서까지 권장도서에 올라 있는 명저다. 그렇다. 군대까지도 말이다. 이 책을 읽자면 가장 현타가 올 이들이 징집된 군인들일 텐데, 어째서 이 영화가 권장도서에 올라 있는 건지는 지금도 의문이지만.

나와 같은 이유로 이 책을 읽지 않은 이가 많을 것이다. 너무나 유명한 나머지, 그 개성이 퇴색되고 진부하리란 편견이 쌓여서 말이다. 한국에선 정신과 의사인 이시형이 옮긴 청아출판사 판본이 벌써 20년 째 베스트셀러 자리를 공고히 했다. 2020년 영어 원제인 'MAN'S SEARCH FOR MEANING'을 강조해 새로 펴낸 책도 꾸준히 팔려나간다. 워낙 유명한 책이니만큼 절판되긴 했으나 한때 몇 개 출판사가 같은 원고를 다른 제목으로 번역해 펴내기도 했다. 2차 대전 종전 후 1년 만에 출간된 책이니 만큼 벌써 그 나이가 80살을 헤아린다. 고전의 요건을 모두 갖추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 표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책 표지 ⓒ 청아출판사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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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고전이 가진 미덕과 편견을 두루 확인케 한다. 고전의 미덕은 무엇인가. 하루키식으로 말하자면 고전은 '시간의 세례를 건너 살아남은 책'이다. 그 어느 비평가보다 냉엄하고 유능한 시간의 심판을 저만의 방식으로 견뎌냈다는 뜻이다. 100년 가게엔 그만한 생존의 비결이 있듯이, 고전에도 그만한 가치는 있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모두 세 장으로 구성된 246페이지 짧은 책이다. 절반쯤을 차지하는 전반부는 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이 나치에 의해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뒤 종전으로 석방될 때까지의 경험담으로 채워졌다. 두 번째 장은 석방 후 그가 직접 창안한 로고테라피, 즉 의미치료 기법의 기본개념을 다룬다. 마지막 세 번째 장에선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비극 속에서의 낙관'을 설한다.

말하자면 이 책은 단순한 수기나 체험기가 아니다. 절반을 넘는 분량을 경험담에 할애하고 있지만, 이는 철저하게 2장과 3장을 위해 존재한다. 프로이트나 아들러의 심리치료 기법과 근본적으로 분리되는 의미치료, 그것이 가진 가능성과 역할을 떠받치는 근거로써 활용한다.

수용소에서는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는 원시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지만 영적인 생활을 더욱 심오하게 하는 것은 가능했다. 밖에 있을 때 지적인 활동을 했던 감수성 예민한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는 더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 내면의 자아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적게 손상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혹한 현실로부터 빠져나와 내적인 풍요로움과 영적인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도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 75,76p

적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주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반면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예술, 혹은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충족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 두 가지가 거의 메말라 있는 삶에도, 외부적인 힘에 의해 오로지 존재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지고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삶에도 목적은 있다. (중략)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 122p

지옥에도 희망이 있다... 의미만 찾는다면

빅터 프랭클이 묘사한 수용소의 풍경은 가혹하기 그지없다. 종전 직전 몇 개월을 제외하곤 주로 건설노동에 투입된 수감자였던 그다. 겨우 콩 몇 알을 넣고 끓은 희멀건한 스프와 아주 약간의 빵만으로 연명하면서 그는 고된 육체노동 현장에 투입됐다. 수많은 동료 수감자들이 영양실조로, 질병으로, 사고로, 이따금은 처형돼 죽었다.

운과 어쩌면 운명이 작용한 탓으로 그를 비롯한 소수는 살아남았다. 길게 늘어선 줄의 9할이 죽은 첫 구분작업부터 운명을 가르는 수많은 순간들을 그는 수도 없이 겪어낸다. 이따금은, 아니 그보다는 자주, 그의 선택이 그를 살릴지 아닐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 모두가 살리라 여긴 길이 죽음으로 연결되고, 죽겠구나 여긴 선택이 삶으로 이어진다.

모두가 죽음의 길이라 여겨 악착 같이 거부했던 다른 수용소로의 이송이 가스실 없는 더 나은 환경으로 연결된다. 적십자가 수용소를 접수한 후 이제는 살았구나, 먼저 이송됐던 이들이 폭탄을 맞아 떼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다. 삐끗하면 죽는 수용소에서의 삶조차도 그러하다.

수용소에서도 삶이 있기는 하다. 수용소장과 나치 친위대원, 하급 감시원들, 유대인 중에서 선발되는 카포들이며 일반 수용자들까지, 수용소 안에는 온갖 부류의 인간들이 공존한다. 지위와 환경에 따라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나뉘고, 선택지가 있는 것과 없는 것도 갈라진다. 빵 약간, 담배 한 대가 재화가 되어 시장 아닌 시장이 형성되고, 기도회나 예술회, 캬바레까지도 막사 안에 설치된다. 누군가는 영양실조를 겪으면서도 하루치 빵을 팔아 연극을 보고 음악을 들으려 한다. 다른 누구는 담배 한 대에 수용소를 나갈 희망을 전부 태워버리기도 한다.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산다. 더 건강한 이가 죽기도 하고, 훨씬 병약한 이가 살기도 한다. 누구는 선을 지키고 다른 누구는 악에 빠져든다. 더 배운 이가 악해지기도 하고, 더 못배운 이가 선을 행하기도 한다. 무엇도 풍족하지 않은 수용소란 환경에선 그와 같은 구분이 더욱 선명해진다. 빅터 프랭클은 이 같은 경험 속에서 의미를 길어낸다. 죽고 사는, 선하고 악한 차이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의미다.

빅터 프랭클은 희망을 놓아버린 이가 살아남지 못한단 걸 눈앞의 수많은 사례로써 깨닫는다. 꼭꼭 감춰두었던 담배 한 대를 꺼내 피는 이를 보면 모두가 그가 48시간을 넘기지 못하리라고 여긴다. 그리고 대개는 그것이 현실이 된다. 수용소에서 허망하게 죽는 많은 이들이 그 직전에 희망을 놓아버렸단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그 반대편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희망을 간직한 이들이 있다. 그 희망의 근간에 의미가 있다. 제 삶 가운데 의미를 세우고 지켜낼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희망이 된다. 수용소에서조차도 그렇다.

물론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렇게 지고한 도덕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수감자 중에서 아주 적은 사람만이 충만한 내면의 자유를 지키고, 시련을 견딤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얻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예만으로도 인간이 지닌 내면의 힘이 외형적인 운명을 초월해 그 자신의 존재를 높인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비단 강제수용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처에서 인간은 운명과, 그리고 시련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와 만나게 된다. -123p

강제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는 자기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삶의 지침을 돌려 놓았던 그런 경험의 승리를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그런 도전을 무시하고,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들처럼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었다. -131p

삶 가운데 의미를 찾는 방법... 지금도 유효하다

로고테라피의 기본적 개념을 설하는 2장에 돌입해 책은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일깨운다. 의미가 없는 삶의 허망함과 취약함을 앞선 경험을 통해 내보였던 저자는, 모든 것이 풍족하여 삶이 근본적으로 위협받는 일이 얼마 되지 않는 상황에서 더더욱 의미가 소외되는 현실을 개탄한다. 그로부터 로고테라피의 근간인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법을 알기 쉽게 서술한다.

어떤 때는 그 자신조차도 자기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거나(동조주의) 아니면 남이 시키는 대로(전체주의)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최근에 조사를 해보았더니 내가 가르치고 있는 유럽 학생들 중 25퍼센트가 크든 작든 실존적 공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학생들은 25퍼센트가 아니라 무려 60퍼센트가 이런 공허감을 느끼고 있었다. - 178p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설 수 있다. (중략)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두번째 방법은 어떤 것–선이나 진리,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것, 자연과 문화를 체험하거나 다른 사람을 유일한 존재로 체험하는 것, 즉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 184p

중요한 일을 하고 중요한 경험을 갖고 중요한 관계를 맺는 것, 그것이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이라고 그는 말한다. 삶의 의미를 찾아야만 그를 지탱할 힘, 즉 희망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이 이론의 핵심을 이룬다. 그러나 인간은, 심지어 수용소를 벗어나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현대인조차도 쾌락을 얻거나 고통을 피하는 방식으로 제 삶을 이끌고 있다는 게 빅터 프랭클의 지적이다. 중요한 무엇과 마주하여 자연히 파생되게 마련인 시련과 고통을 피해야 할 것으로만 여기니, 그로부터 태어나는 의미를 아예 마주할 수조차 없다는 분석이 이어진다. 악순환이다.

그의 지적이 참으로 옳다.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이론을 단순히 보완하는 정도로 받아들여졌던 의미치료가, 오늘날에 이르러 긍정심리학 등 최신 경향에 상당한 이론적 뒷받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다. 인간에겐 감성 뿐 아니라 이성과 지성이 있고, 그로부터 스스로를 고양시킬 수 있는 존재인 때문이다.

책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단순한 의미를 넘어 사상과 철학을 구축하고 나아가 이념과 닿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인간은 그 전과는 비견되지 않는 강함을 얻는다. 니체가 말했듯,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는 법이다. 인류는 그와 같은 인간을 수없이 배출해왔다. 성인이라 추앙받는 석가모니와 공자, 소크라테스와 예수가 모두 그러했고, 이순신과 같은 성웅이며 최재형과 안중근 등 일신의 안위를 내던진 독립운동가들 또한 그러했다.

책의 원제는 'Man's Search for Meaning', 번역하자면 '의미를 찾는 인간' 쯤이 될까. 모든 인간이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니지만, 의미를 찾는 인간이 더 강해진다는 게 이 책의 중심을 흐른다. 죽음의 지뢰가 자갈처럼 널려 있는 수용소에서 의미만이 인간을 강하게 한다는 걸 깨달은 저자다. 그래서 책은 설득력이 있다. 심지어 친절하기까지 하다. 나는 빅터 프랭클의 주장에 십분 공감한다. 그리하여 그의 안내를 기꺼이 따르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빅터 프랭클 (지은이), 이시형 (옮긴이), 청아출판사(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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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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