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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와 그의 동지들이 도착한 산정은 중국군 왕정위 부대의 영역이었다. 한시 바삐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부대에서도 비상이 걸렸을 터이다. 범의 소굴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들은 돌부리 나무뿌리에 걸리고 자빠지고 넘어지고 하면서 능선을 내려왔다. 앞길을 가로질러 운하가 흐르고 있었다. 한밤중에 거대한 운하 앞에서 청년들은 막막함을 느껴야 했다.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어디에 건널목이라도 있는가 살폈지만 아무런 징표도 없고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수영에 익숙하다는 윤경빈이 물에 들어가 수심을 재어보았다. 다행히 그리 깊지 않고 가슴까지 찼다. 일행 중 키가 가장 작은 장준하는 가장 큰 김영록이 줄곧 보호하여 무사히 운하를 건넜다. 언덕으로 올라 나침반을 보려 하였으나 군복을 입은 채 강을 건너느라 성냥이 모두 젖어버렸다.

한밤중에 일망무제의 허허벌판에 선 네 청년은 다시 한번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구름까지 끼어 북두칠성을 찾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동서남북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처지에서 동북방향으로 짐작되는 방향으로 무작정 달렸다. 수수밭을 택해 질주했다.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광막한 길이었다. 어느새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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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으면 추적자들에게 들키기 쉽다. 하여 장방형의 넓은 조밭을 골라 은신하기로 했다. 지칠대로 지친 동지들은 곧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러나 장준하는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조 포기를 뽑아다 잠든 동지들 위에 덮어 위장을 시키고 나서, 자신도 그렇게 하고서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자동차의 크랙숀 소리가 들렸다. 추적해온 일본 군인들이었다. 바로 옆에까지 나타난 것이다. 햇볕은 여전히 이글거리고 있었다.

장준하는 불현 듯 땀에 흠뻑 배인 주머니 속의 성경을 꺼내들었다. 입영할 때 가지고 온 네 권의 책 중에서 내무사열 때 적발되어 모두 아내에게 보내고 간신히 성경 한 권만 품에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 곳이나 책장을 넘겨 읽었다.

"하느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린도전서 2장 9절이었다. 성경의 내용을 가슴에 새기면서 주위를 살폈다. 동지들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주위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메율라! 메율라!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어!)"

이런 소리가 바로 청년들이 누워 있는 조밭 다음의 수수밭 너머에서 들려왔다. 이 '메율라'라는 말은 '없다'라는 뜻이다. 장준하가 알고 있는 중국말의 몇 마디 가운데 하나였다.

장준하는 눈을 감았다 떳다 하는 작업으로 이 소름끼치는 시간을 재어 보고 있었다. 수수밭으로 들어서는 인기척이 들렸다. 수숫대를 헤치는 소리가 맞부딪치며 들렸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이 하늘에 구름처럼 깔리어 그는 그것을 허공에서 읽었다. 가려진 조 포기 사이로 수수밭을 나와 이쪽을 바라보는 중국청년 두 서너 명의 모습이 드러났다. 우선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들은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았고 몽둥이도 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수도 많아야 세명 정도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약의 경우엔 수적으로 대결해서 목을 졸라 질식시켜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군은 부대에서 탈영병이 생기면 관내의 중국인들을 동원하여 수색케 하였다. 장준하가 부대에 있을 때 가끔 들었던 대로였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중국의 농부들을 동원하여 수수밭을 뒤지며 이들을 찾도록 했다. 다행히 농부들은 수수밭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밤을 세워서 질주해온 것이 일본군 관할지역을 맴돌고 있었음을 알고는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캄캄한 밤이다보니 방향감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밤을 새워서 걷고, 화씨 1백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아래 바람 한 점 없는 조밭 속에서 누워있으려니 우선 갈증으로 목이 타서 죽을 것만 같았다. 복사열로 대지가 온통 가마솥과 같았다.

타는 것은 비단 목 뿐이 아니었다. 온 몸뚱이가 모두 불붙어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 했다. 청년들은 모두 군복을 벗어버리고 홀랑 알몸이 되어 수수밭의 고랑 속 햇볕이 조금이라도 가리워진 축축한 곳을 찾아다니며 마치 지렁이들처럼 엎드렸다 누웠다 하며 한낮의 시간을 보내었다.

밤이 되면서 기온이 조금 내려가고 서늘해졌다. 다시 걸었다. 마을을 피하고 사람이 다니는 도로를 피하여 수수밭 가운데로 몸을 숨겨가며 걸었다. 길은 사람이 걷도록 만들었는데, 그런 길을 두고 보통 사람의 키보다 훨씬 더 자란 수수밭, 그 가이 보이지 않는 밭속을 칠흑 속에 터벅터벅 걸으면서 장준하는 "등불이 없는 이 길을 걸어야 하는 운명은 나라없는 조국에 살아야 하는 운명과 같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의 모태이다.

그때 뒤에서 따라오던 홍석훈이 갑자기 쓰러졌다. 모두들 달려들어 팔다리를 주무르며 흔들어 깨우려고 발버둥쳤지만 그는 쉽게 깨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홍석훈은 일행중 가장 몸이 약하고 치질까지 갖고 있었다. 그런 몸에 강행군을 하고 이틀 째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한 채 걷다가 쓰러진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그냥 가라는 홍석훈을 세 사람이 번갈아 껴안고 얼마쯤 가는데 멀리서 우물 같은 것이 보였다. 사막의 오아시스가 따로 없었다. 모두 달려가 물을 마시고 물통에 담아와 홍석훈에게 먹이니 그도 조금 원기를 되찾게 되었다. 하지만 마실 때는 갈증 때문에 미처 몰랐는데 마시고 나니 입에서 구린내가 나고 입안에서 모래까지 씹혔다. 마을의 구덩이에 고인 오물을 모르고 마신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했다. 장준하와 윤경빈은 어디로 가서든지 먹을 것을 구해오고 김영록이 홍석훈을 지키기로 역할분담이 이루어졌다. 장준하와 윤경빈은 어둠 속을 헤매다가 원두막을 발견하고 주변에 있는 밭에서 참외를 몇 개 따가지고 나오다가 원두막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중국 사람은 어둠 속의 청년들이 두려웠던지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서리해 온 참외(사실은 어린 수박)를 나눠 먹었다. 홍석훈도 이것을 먹고 약간의 활력을 되찾게 되었다.

꼬박 이틀을 굶은 빈 속에 아직 덜 익은 수박이기는 하지만 싱싱한 청과일을 먹고 나니 이번에는 졸음이 몰려왔다. 한참을 걷다가 홍석훈이 다시 넘어졌다. 그를 따라 일행은 모두 펄썩펄썩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이들은 사람의 눈에 띠지 않도록 수수밭으로 가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덧붙이는 글 |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실록소설 장준하]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실록소설장준하#장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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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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