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는 탈출하기 전에 나름의 준비를 하였다. 부대 안이라 많은 정보를 접하긴 어려웠지만 일본인 내무반장이 무심코 뱉는 말도 귀담아 들었다. 120리 거리에 중국군부대가 있다는 것이다. 대원들에게 경각심을 주느라 한 말이지만 소중한 정보였다. 그리고 전투훈련을 나갈 때는 주변의 지형지물을 세밀하게 관찰, 탈출할 때의 방향에 대비했다.
며칠 전 고향에 두고 온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군사우편 엽서이다. 엽서는 공개된 지면이라 긴 사연을 쓸 수 없어서 떨리는 손으로 로마서 9장 3절을 인용했다. "나의 형제 곧 굴욕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라는 구절이다.
아버지가 목사이기에 그는 어려서부터 기독교신도였다. 일본군에 지원할 때에 4권의 책 중에 성경에 들어 있었다. 입소할 때 다른 3권을 압류당하고 성경만 챙길 수 있었다. 탈출할 때도 호주머니에 간직하였다.
장준하는 조심 조심 걸어 보초가 서 있는 곳에서 한참 떨어진 장소에 이르렀다. 낮에 봐둔 곳이다.
나는 시계를 볼 초조를 떨쳐버리고, 철조망에 두 손을 대었다. 차디찬 철조망의 냉기가 오싹 등골까지 전달되었다. 철조망 쇠꼬챙이를 피하여 붙잡으려니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다.
철조망을 흔들어 보았다. 좀 흔들리기는 했으나 심한 파동이나 무슨 소리는 나지 않았다. 턱걸이 하듯 두 손을 뻗어 잡고 몸을 솟구쳤다. 마치 물속에서처럼 몸이 쑤욱 올라갔다. 발을 걸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철조망은 상상보다도 높았다. 이렇게 3미터 높이의 철조망에 매달린 채 나는 나의 조국을 비로소 잊을 수가 있었다. 왜 나는 이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앞의 책)
보통 키 정도의 장준하가 3미터 높이의 철조망을 단번에 뛰어 넘을 수 있었던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것도 소리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날카로운 철조망에 손을 얹고 뛰어내린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에 창경원이 있을 때이다. 어느날 젊은 엄마가 아기와 함께 호랑이 구경을 하던 중 잠깐 방심하던 순간 아기가 호랑이 우리 철창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를 본 호랑이가 달려들려는 순간, 젊은 엄마가 쇠창살을 밀어 아기를 꺼내왔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평상시 여성의 힘으로는 도저히 팔뚝만한 쇠창살을 밀치기는 불가능한 일, 오로지 아기를 살리겠다는 엄마의 지극한 모성이 초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이때 장준하와 그 동지들의 철조망 월담도 이와 유사한 의지의 소산이 아니었을까.
장준하가 천신만고 끝에 약속장소에 다가갔을 때 이미 세 동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느티나무 아래.
아아 하나님. 거기엔 세 동지가 이미 모여 있었다.
우리들은 겨우 서로 어깨만을 한 명씩 감싸 안고는 다시 눈에 불을 켰다. 야수처럼 빛나는 눈빛이 어둠을 꿰뚫었다. 이내 앞에 우뚝 버티어 선 험준한 석산(石山)을 기어오르기로 이심전심으로 결정했다.
일본군 부대를 탈출한 것은 고난에 찬 장정의 이제 막 출발에 불과하다. 사전에 계획된 작전대로라면 석산의 산정까지 두 시간 안에 올라가야 했다. 곧 부대에서 비상이 걸리고 추격대가 뒤쫓을 것이기 때문에 죽을 힘을 다하여 올라 가야 한다.
한 시간이나 무의식 속에 산을 기어 올랐을까, 비로소 사방이 훤하게 터졌다. 우리가 그 산의 중턱까지 거의 도달된 것이 분명했다. 역시 필사의 힘은 우리에게 더욱 빠른 걸음을 준 모양이다. 그곳 나무 그늘에서 일단 우리는 모여 앉아 발을 주무르며 숨을 돌렸다.
마주 마주 돌려 앉은 네 청년. 이제 우리들은 한 마리 짐승의 네 발처럼 느껴졌다. 잠시 숨을 돌리자 등골의 식은 땀이 식으면서 허리가 괴어들었다. 버리고 온 병영의 불빛이 눈앞에 내려다 보였다.
한 뼘씩의 거리를 두고 달린 외등의 희뿌연한 불빛이 빙 둘리워져 마치 그것은 끔직한 복마전처럼 밤 안개 속에 묻혀 있었다. 시커먼 병영의 윤곽이, 파충류의 물짐승처럼 음흉하게 우리를 손짓하는 듯 했다. 오싹 소름이 끼쳤다.
덧붙이는 글 |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실록소설 장준하]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