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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 시절의 장준하 1945년 8월 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미군 OSS 특수훈련을 마치고 산동성(山東省) 유현(維懸)의 어느 사진관에서 찍었다. 오른쪽부터 장준하,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노능서 선생이다.
광복군 시절의 장준하1945년 8월 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미군 OSS 특수훈련을 마치고 산동성(山東省) 유현(維懸)의 어느 사진관에서 찍었다. 오른쪽부터 장준하,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노능서 선생이다. ⓒ 장준하기념사업회

어쩌다가 비오는 날에 태어난 하루살이….

하필이면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은 비극적 삶을 숙명처럼 안고 출생하였다. 더욱이 그 중반기에 출생한 이들은 스무 살을 전후하여 징병·징용·성노예를 당하고, 해방을 맞았으나 곧 6.25전쟁 그리고 이승만과 이어진 박정희 독재를 겪었다.

많은 사람이 시대적 희생양이 되고, 용케 살아남았어도 빈곤과 압제에 시달리면서 생명을 부지해야했다.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타고난 재능을 갈고 닦아서 인류의 발전과 역사의 진행에 보탬이 되었을 텐데, 그저 포말처럼 생겼다가 사라졌다. 마치 비오는 날에 태어난 하루살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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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는 탈출을 결행했다.

스물여섯의 팔팔한 청춘을 더 이상 일본군에 군적을 두고 살 수는 없었다. 뜻을 같이하는 김영록·홍석훈·윤경빈과 함께였다. 원래는 5명이었는데, 한 명이 겁을 먹고 변심하여 4명이 되었다.
1944년 7월 7일, 중국 강소성 서주에 있는 일본군 부대, 신병을 훈련시키는 보충부대였다.

일본제국주의는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을 일으켜 파죽자세로 중국대륙을 침략하였다. 그리고 서주에 신병훈련소를 설치하고 훈련된 병사를 각 부대로 파송하는 역할을 맡겼다. 그래선지 어느 부대보다 규율이 엄격해서 탈영이 쉽지 않았다. 그동안 이 부대를 탈영한 한인 병사가 드물었다.
7월 7일을 탈주의 난로 정한 데는 까닭이 있었다. 중일전쟁 7주년이 되는 이날 일왕의 이름으로 술과 담배, 음식으로 병사들을 격려한다는 소문이 있었고, 실제로 푸짐한 음식과 술이 나왔다. 밤 늦게까지 병영안에서는 모처럼 거나한 취흥이 감돌았고 점호도 쉽게 끝나 모두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취하지 않은 병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잠들 수 없었다. 이런 기회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호가 끝난 후 네 사람은 각자 부대 담장을 넘어 9시 15분까지 철조망 밖의 느티나무 아래서 만나기로 약조되었다.

장준하는 약골이다. 이틀 전 제식훈련을 받다가 졸도할 정도로 지병인 심장병이 있어 수만리 험난한 장정에 나서는 것이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탈출을 제안했던 그로서는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붙잡히게 되면 사형까지는 몰라도 반신불수가 되는 혹독한 고문을 당하게 되는 모험을 감행하기로 자신 그리고 동지들과 다짐했던 터다. 누구에게나 목숨에 여벌은 없다.

장준하는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낮에 봐두었던 장소를 찾았다. 밤은 깊어 사위가 캄캄했다. 곳곳에 보초가 총을 들고 서 있고 곳곳에 외등이 불을 밝혀 탈출병을 감시하고, 3미터 높이의 철조망으로 부대는 완전 포위되어 있었다. 산짐승 한 마리도 얼씬거리기 어려운 구조였다.

나는 내가 보아 둔 서쪽 구석바지로 몸을 굽혀 달려갔다. 누가 지금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가 지금 나를 따라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쯤 다른 세 동지는 어디에 있을까. 철조망을 넘다가 걸려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쯤 누가 주번사관에게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상이 걸리는 찰라가 아닐까.

보초와 보초와의 중간지점, 그리고 외등과 외등 중간 지점, 이 두 가지가 일치되는 서쪽 구석으로 나는 두꺼비 걸음으로 포복을 했다. 땅이 내 복부를 자석처럼 잡았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여유 있게 훑어 본 다음 난 목욕대야를 버리고 행장을 허리에 잡아매었다. 어릴 때 고향에서 20리 길의 학교를 다니던 버릇대로 질끈 행장을 잡아매고 철조망 앞 3미터에까지 기어갔다. 밤이, 하늘이, 별이 모두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지 않으려고 심호흡을 했으나 겨우 반쯤 밖에는 숨이 쉬어지지 아니했다.(장준하, <돌베개>)

덧붙이는 글 |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실록소설 장준하]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실록소설장준하#장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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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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