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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파면'으로 조기 대선 정국이 열렸습니다. 전문가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지속가능한 우리 사회를 위한 온라인 포럼'이 차기 정부 혁신과제를 연속 기고합니다. 이 제안은 오마이뉴스와 굿모닝충청에 게재됩니다.

 2004년 발간된 <창의한국> 중 일부.
2004년 발간된 <창의한국> 중 일부. ⓒ 문화관광부

한국의 문화정책은 근본적으로 지난 20년간 2000년대 중반 참여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정책 비전 '창의한국'의 기본 골격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워낙 정부가 야심적으로 중장기적 국가 문화정책을 수립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주무 부처인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100명이 넘는 현장 전문가, 학계 인사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진행했던 유례없는 정책 비전서이기 때문에 이후에 비슷한 시도가 몇 차례 있었음에도 근본적으로 "창의한국"에서 제시한 프레임을 넘어서는 문화정책의 전망과 계획이 입안된 바가 없습니다.

매우 유의미한 시도였고 현재의 문화정책에도 큰 영향을 끼친 시도였지만 문제는 '창의한국'이 입안된 시기가 현시점과 20여 년의 시간적 간극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문화정책이 사회적 변화와 긴밀하게 대응하여 변화해 왔다는 점에서 이제는 다소 시대적 상황과 맞지 않게 됐거나 이미 진행이 완료된 정책들이 존재합니다. 특히 국내외적인 산업환경과 경제적 여건이 달라졌고 만성화된 저성장구조, 기후위기, 인구절벽 등 완연히 달라진 조건들은 문화정책에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문재인 정부 시절 그리고 현 정부에 들어서도 각 정권의 문화비전을 다시 만드는 시도를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산하기관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등에서 진행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도들이 모두 참여정부의 '창의한국'처럼 폭넓은 거버넌스를 기반으로 한 중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되지 못했고 주무 부처와 기관의 내부적 작업으로 진행되는 것에 그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꽤 유의미한 내용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문화정책의 패러다임 자체를 전면 재검토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고 사회정책으로서 문화정책이 갖는 규범적 역할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보다는 당면 현안에 대한 방법론적 대안 제시에 그친 측면이 있습니다. 새로운 정부에서는 이런 한계를 넘어서 향후 20년 정도를 내다보는 장기적 문화적 전망에 대해 깊은 검토를 해야 합니다. 이 방법론은 역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집단과의 개방적 협업을 전제로 해야 할 것입니다.

1. 예술지원 체계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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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예술지원 체계는 1970년대 초반 만들어진 '문화예술진흥법(제도)–한국문화예술진흥원(기관)–문화예술진흥기금(재정)'의 삼각 틀 안에서 50년 이상 지속되어 왔습니다. 참여정부 시기 문예진흥원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로 개편되면서 민간합의제 지원기구를 통한 예술지원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자 했으나 2000년대 후반 아르코가 정치적 외압 속에 김정헌 위원장이 부당 해임되는 사태를 겪으며 사실상 민간기구로서의 자율성에 심각한 훼손을 겪어야 했습니다.

또한 아르코 출범 당시 2004년 적립금 5273억 원에 이르던 문예진흥기금은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 2024년 말 기준 남은 금액은 626억 원에 불과합니다. 예술지원의 유일한 재원인 문예진흥기금은 1973년 공연장·영화관·문화재 등의 입장료에 일정 비율의 금액을 부가해 징수하는 방식으로 조성되기 시작했으나 2003년 말 헌법재판소가 문예기금 모금에 대해 "관람객에게 예술 발전의 책임을 전가해 헌법상 명시된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위헌"이라고 결정했고, 결국 폐지된 바 있습니다.

이후 문예진흥기금은 재원 확보를 위해 관광기금과 체육기금 전입(2016년~) 및 일반회계 전입(2018년~) 그리고 복권기금('복권 및 복권기금법' 제23조 제3항 제4호에 근거) 전입 규모를 확대하며 유지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단년도 예산심의 과정에 의존하는 정부 내부 수입(전입금) 위주의 불안정한 재원 구조로 고착화됐고, 기금 관리 기구인 아르코의 자율성은 떨어지고 예술지원의 재정구조는 매우 불안정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나마도 2년 정도 안에 적립된 기금이 모두 소진될 것이란 불안한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술지원에 대한 국가 책임이 헌법상의 의무로 남아있고 문화기본법 같은 상위법에서도 이를 명시하고 있는 바, 개방적 민주공화국에 어울리는 자율성과 책임성이 보장되는 예술지원 체계의 정비가 필요합니다. 우선적으로 아르코가 자율성을 갖고 민간합의위원회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체제 정비가 이뤄져야 하며 기금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재원대책이 시급하게 마련돼야 합니다.

▲ 아르코 위원장과 위원 선임 및 임기, 역할 등에 대한 제도 정비
▲ 문예진흥기금의 재원 대책 및 자율성을 위한 제도적 개선
▲ 복권기금 전입금의 법정배분 제도화
▲ 문화예술세(가칭) 도입 검토

2. 문화예술교육 정상화 및 확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누리집.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누리집.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누리집 갈무리

한국에서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1990년대 말 국악강사풀제를 도입하며 시작됐습니다. 국민들의 문화 역량 강화와 예술인들에 대한 일자리 제공이란 두 가지 목적을 함께 갖고 시작됐으며 2000년대 초반에는 이를 확대해 예술강사제도로 확대되면서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게 됐습니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이 만들어지면서 제도적 근거가 마련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아르떼)을 문화부 산하기구로 만들어 이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크게 학교문화예술교육과 사회문화예술교육이라는 두 가지 축에서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이후 문화예술교육 지원 정책은 크나큰 위기에 봉착한 상황입니다. 정부가 문화예술교육 예산 중 학교문화예술교육 예산을 2024년에 50% 삭감한 데 이어 2025년에 다시 72%를 삭감하기로 하여 커다란 우려를 낳았습니다(2023년 574억 → 2024년 287억 → 2025년 80억).

문화예술교육 예산은 아르떼가 출범한 2005년에는 국고로만 편성했으나 2007년부터 지방비가 투입되기 시작했고 2009년부터는 학교문화예술교육을 위해 국고 대응 형식의 지방교육재정이 큰 비중으로 투입돼 왔습니다. 국고에서 지방교육재정과 지방비를 더한 학교문화예술교육지원 총예산은 2023년에 951억 2600만 원이었는데 국고의 급격한 삭감으로 2024년에는 653억 2200만 원으로 31% 감소했습니다. 2025년에는 설령 지방교육재정이 현재 상태를 유지한다 해도 총예산은 2024년 대비 32%가 감소한 446억 4300만 원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즉 2023년 대비 2025년 예산은 국고로는 86%(574억→80억), 총액으로는 53%(951억→446억)가 감소되는 셈입니다.

정부는 이러한 삭감에 대해 "학교 관련 예산의 지방교육재정으로의 단계적 이관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 설명이 타당성을 얻으려면 국고를 50% 삭감한 2024년에 지방교육재정이 그만큼 증액됐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곳은 강원도뿐이었고 나머지 지역은 아주 소액을 증액한 울산 말고는 모두 동결됐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의 정책적 지원에 대한 중앙정부, 지방정부, 교육청, 국회, 지방의회 등의 정책적 컨센서스(consensus)가 부재한 상태에서 일방적인 재정 감액만 진행한 결과로 현재 학교문화예술교육은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따라서 일단 2023년 수준으로 예산과 사업 내용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 마련이 필요하며 장기적인 재원 대책과 역할분담에 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 학교예술교육 강사에 대한 처우 개선
▲ 문화예술교육 지원을 위한 전국 단위의 기관 협의체 실질화
▲ 문화예술교육 지원 예산의 회복 및 장기적 대책 마련
▲ 사회문화예술교육 확대를 위한 문화교육 바우처 제도 도입

3. 지역문화 지원 체계 정비

2013년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되고 분권과 자치를 기본지향으로 삼는 지역문화지원정책이 지속적으로 시도돼 왔습니다. 이제 전국의 광역지자체는 모두 광역문화재단을 설립했고 기초지자체도 절반 이상이 문화재단 설립을 완료하여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산하기구인 아르코, 아르떼, 지역문화진흥원 등의 중앙단위 문화지원기구와 광역문화재단, 기초문화재단 등 지역단위 문화지원기구가 형식적으로는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춘 셈입니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서 오히려 지역문화에 대한 위기 담론이 지역 현장에서는 팽배하고 있습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지방정부에서 문화에 대한 재정지출은 축소되는 상황인데 중앙정부는 지역문화정책이 지역이양사업이란 것을 근거 삼아서 지역문화 관련 정책지원사업을 지속적으로 축소하고 있습니다.

2023년 결산 기준으로 476억 원에 달했던 지역문화진흥 정책사업은 2024년에 22억 원으로 줄었다가 다시 2025년에는 16억 원으로 감소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없어진 지역문화진흥 사업들이 어디로 옮겨 갔는지 찾기가 어렵습니다. 2025년 예산안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에서는 명시적으로 '지역문화 정책'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지방이양사업인 것은 사실이며 지방정부의 책임성이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문제는 그 속도입니다. 지역문화의 분권과 자치를 위한 기반이 여전히 불충분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손을 떼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으며, 설사 지방정부로 그 정책의 중심이 이동한다고 해도 중앙정부가 지역문화에 대한 책임성을 갖고 지원할 의무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장기적인 지역문화 지원을 위한 정책 체계가 재정비될 필요가 있습니다.

▲ 지역문예진흥기금 조성의 실질적 방안 마련 및 제도화
▲ 지역문화 관련 표준지표 개발 및 활용방안 마련
▲ 지역문화정책 가이드 마련 및 평가체계 개선
▲ 문화도시 후속 지원체계 마련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염신규씨는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입니다.


#문화예술#창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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