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라는 선서를 한다. 그러나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을 무시하고 공화국을 공격했다. <오마이뉴스>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 이어 형사법정에서도 계속 되는 그의 '배신'을 기록으로 남긴다.

▲12·3 비상계엄을 선포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 앉아 변호인단과 대화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파면 뒤에도 윤석열씨는 여전히 법정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무대는 탄핵심판정에서 형사법정으로 달라졌고, 신분도 피청구인에서 피고인으로 바뀌었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 그의 '법 비틀기'다.
윤씨는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2차 공판에서 또 다시 발언권을 얻었다. 그는 "세세한 말씀은 드리지 않겠다"면서도 6분간 장황하게 말을 쏟아냈다. 그는 "이 내란 사건이라고 하는 것이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인, 대통령만이 쓸 수 있는 권한인 계엄 선포와 관련해서 '계엄이 내란'이라는 구조를 갖고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원래 담고 있는 헌법적 쟁점이 상당히 많다. 통상 있는, 통상 형사법정에서 다뤄지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라고 했다.
주장의 핵심 논리를 하나하나 따져보자.
① "
계엄은 칼… 칼 썼다고 무조건 살인인가"
→ 문제는 계엄 자체가 아니라 헌법과 법률 위반한 계엄
"계엄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인 것이고, 하나의 법적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칼하고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칼이 있어야 요리를 해먹고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서 땔감도 쓰고, 아픈 환자 수술하고, 칼을 갖고 협박·상해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그래서 이걸 내란이라는 관점에서 재판을 하려면 이 칼이라는 걸 썼다고 해서 '아 이것이 무조건 살인이다' 이렇게 도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만
윤씨는 계엄 선포만으로 기소되지 않았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요건을 전혀 충족시키지 않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헌법기관인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을 투입했기 때문에 법정에 섰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는 윤씨를 파면하면서 "피청구인은 헌법의 규정 또는 국가긴급권의 본질상 비상계엄 선포를 정당화할 수 없는 사정들을 들어 이 사건 계엄을 선포"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국회의 사무는 계엄사령관이 관장할 수 없으며", "(선관위 군 투입은) 선관위의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하는 우리 헌법의 취지에 반하는 것"임에도 윤씨가 군대를 동원했다고 판단했다.
② "사법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
→ 1981년 김대중 판결에서 업데이트 안된 윤... 1997년 전두환·노태우 판례 명확
윤씨는 또 "대통령은 어느 장관이나 일반 국민보다도 수백 배, 수천 배 외교·안보·국정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판단은
사법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1979년 10.27 비상계엄을 정당화한 1981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대법원 판결에 근거한 법리다.
하지만 이미
대법원은 1997년 전두환·노태우씨 내란 사건에서 '정당하지 않은 비상계엄은 사법심사 대상'이라고 했다. 이 판례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대통령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 행위는 고도의 정치적, 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행위라 할 것이므로, 그것이 누구에게도 일견하여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명백하게 인정될 수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라면 몰라도, 그러하지 아니한 이상, 그 계엄선포의 요건 구비 여부나 선포의 당, 부당을 판단할 권한이 사법부에는 없다고 할 것이나, 이 사건과 같이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고 할 것이고, 이 사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조치가 내란죄에 해당함은 앞서 본 바와 같다.
(96도3376 판결문 49쪽)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 연합뉴스
③ "장기독재를 위한 친위쿠데타가 증명돼야 내란죄"
→ 내란죄 핵심은 '독재'가 아니라 '국헌문란 목적'
윤씨는 또 "'계엄과 내란이 같은 것이다'가 아니라 장기독재를 위한, 그야말로 헌정질서를 파괴하기 위한 것이라면 정무계획, 집권계획, 또 그걸 실현하기 위해서 군을 도대체 어떻게 활용하려고 했는지 이런 것이 보다 근본적으로 다뤄져야 이 재판이 제대로 된 내란죄에 대한 진상규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으로 인정되려면 헌정질서를 파괴해 독재를 실현하려고 했다는 의도와 계획의 존재가 입증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결국 이것이 민주헌정질서를 무너뜨리고 대통령의 어떤 독재, 국회만 그야말로 영구적이거나 상당기간 기능을 정지시켜서 되겠나? 그렇게만 해갖고 되는 게 아니라 사법기관이나 모든 헌법기관을 동시에 그야말로 무력화시키고 장악해서, 어떤 독재적인 헌정 문란을 일으키고 (그 대통령이 5년) 임기를 마치고 조용히 퇴진할 수 있겠나? 이건 결국 장기독재를 위한 친위쿠데타라는 것이 증명되고 그런 관점에서 다뤄져야 하고, 계엄은 거기에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독재'는 내란의 결과일 수 있어도, 내란죄 구성요건은 아니다.
내란죄는 ①대한민국 영토 전부 또는 일부에서 ②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③폭동을 일으킨 경우를 뜻한다. 이때 국헌문란은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거나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형법 91조).
대법원도 전두환·노태우씨 사건 판결문에서 '독재'라는 단어를 아예 쓰지 않았다. 다만 12.12 군사반란부터 '시국수습방안', '국가문란자 수사계획', '권력형 부정축재자 수사계획'과 비상계엄 전국 확대, 5.18 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 등을 종합해 국헌문란 목적 여부를 판단했을 뿐이다. 대법원은 또 신군부 세력의 국회의사당 점거·폐쇄와 정치활동 규제 등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권한도 침해했으므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고 봤다.
원심은 피고인들이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외부적으로 드러난 피고인들의 행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및 그 행위의 결과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전제하고는, 피고인들이 이른바 12․12군사반란을 통하여 군의 지휘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함과 아울러 국가의 정보기관을 완전히 장악한 뒤, 1980. 5월 초순경부터 이른바 '시국수습방안', '국기문란자 수사계획', '권력형 부정축재자 수사계획'을 마련하여 이를 검토, 추진하기로 모의하고, 그 계획에 따라 1981. 1. 24. 비상계엄의 해제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예비검속,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국회의사당 점거․폐쇄, 보안목표에 대한 계엄군 배치, 광주시위진압, 국가보위비상태책위원회의 설치․운영, 정치활동 규제 등 일련의 행위를 강압에 의하여 행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피고인들이 행한 위와 같은 일련의 행위는 결국 강압에 의하여 헌법기관인 대통령, 국무회의, 국회의원 등의 권한을 침해하거나 배제함으로써 그 권능행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므로 국헌문란에 해당하며, 위 일련의 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 그 경위 및 결과 등을 종합하여 볼 때, 피고인들이 1980. 5. 17을 전후한 이 사건 범행 당시에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 및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채증법칙 위반, 자유심증주의 위반, 심리미진으로 인한 사실오인 또는 목적범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96도3376 판결문 45쪽)
④ 국헌문란 목적을 어떻게 증명할까
→ '말'로도 인정됐는데 '군'까지 동원하면?... 2015년 이석기가 2025년 윤석열 잡다

▲내란음모와 내란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2015년 1월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게다가 대법원은 2015년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에서
전시 상황을 가정한 '말'만으로도 국헌문란의 목적이 성립한다고 했다.
피고인 이석기, 김홍열은 이러한 주요 기간시설 파괴행위 등이 한반도 내 전쟁 발발시 미 제국주의의 지배질서를 무너뜨리고 통일과 민족 자주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전쟁 상황에서 위 피고인들이 촉구한 행위가 실행되었을 경우에는 주요 기간시설 파괴로 인하여 해당 지역의 통신·유류·철도·가스 등의 공급에 장애가 생기고 이에 따른 혼란 등으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의 전쟁에 대한 대응 기능이 무력화되어 대한민국 체제의 전복에 이를 수 있으므로 위 피고인들이 발언의 목표로 한 것은 헌법이 정한 정치적 기본조직을 불법으로 파괴하는 것에 해당하여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14도10978 판결문 33쪽)
윤석열씨는 '말'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국회 등에 무장한 군인을 투입했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국가를 방위하는 육군의 사명(조성현 대령)"과 동떨어진 명령으로 군과 시민의 대치를 야기했다. 야당의 전횡을 알리기 위한 계엄이므로 문제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헌재의 명확한 선언에도 윤씨는 "법리와 로직" 운운하며 형사법마저 오염시키려고 시도 중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