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산에서 즐기는 인문학적 붓장난’을 연재하는 까닭은 자연과 인간, 삶과 사유를 잇는 다리로서 글을 쓰고 싶기 때문입니다. 산을 오르며 만나는 풍경과 들꽃, 그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인문학적 질문과 깨달음을 붓글씨와 함께 풀어내며, 독자와 함께 마음의 결을 가다듬고자 합니다. 잠시 멈추어 자신을 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문득 바라본 장작더미 사이로, 오래전 산사에서 마주쳤던 수행자의 깊은 눈빛이 떠올랐다. 모진 풍파를 견뎌낸 늙은 나무의 옹이처럼, 삶의 고통과 인내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했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처럼 잊힐 수도 있었을 그 순간이 이토록 오랜 시간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는 것은 어쩌면 그때, 나는 고통을 묵묵히 견디는 '침지인(椹之忍)'과 같은 삶의 한 단면을 무의식중에 목격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슬바람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던 늦가을, 나는 절집 경내를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불교방송 '명상의 시간' 원고를 집필하던 때라서 마음의 풍경을 담을 소재를 찾고자 자주 들르던 산사였다. 그날도 발밤발밤 걷던 중, 장작을 패는 스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탄탄한 체구, 파르라니 삭발한 머리, 그리고 속세의 잘생김이 묻어나는 얼굴.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먼발치에서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스님은 아름드리 통나무 받침목 위에 나무토막을 세우고, 도끼를 높이 들었다가 나직한 기합과 함께 내리쳤다. 날 선 도끼가 나무를 가르자, "쩍" 하는 울림이 산사 마당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쪼개진 장작은 양옆으로 힘차게 튀어 나갔고, 단단한 나무가 힘없이 갈라지는 모습은 묘한 울림을 남겼다.
그의 동작에는 망설임도, 실수도 없었다. 능숙하다기보다 마치 번뇌를 끊어내듯, 도끼질 하나하나에 온 정신을 쏟는 듯했다. 군 복무 시절, 친구 집에서 장작을 패다 발등을 다친 적이 있다. 옹이를 치고 도끼를 놓치는 순간, 전투화 앞코가 찢겨 나가며 큰 부상으로 이어질 뻔했다.
장작 패기의 위험성을 직접 경험한 터라, 스님의 거침없는 도끼질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선 무언가로 다가왔다. 그의 능숙한 동작 하나하나가, 오히려 깊은 울림과 경외심을 남겼다. 한참 동안 장작을 패던 스님은 이마의 땀을 훔치더니 문득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차가운 듯하면서도 어딘가 슬픔이 묻어나는 눈빛이었다. 나는 합장을 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스님, 장작 패시는 솜씨가 정말 놀랍습니다."
가까이에서 마주한 그의 얼굴은 깊은 침묵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어떤 끌림에 나는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깊은 산중에서 겨울을 나려면 장작이 많이 필요하겠습니다."
내가 말을 붙여 보았지만, 스님은 일언반구 대꾸하지 않았다. 인사 한마디, 미소 한 조각 없이 그저 조용히 움직였다. 말을 받아주지 않아 살짝 민망한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통나무 받침목에 눈길이 갔다. 수많은 도끼질에 찢기고 파인 모양이 무차별 난도질당한 상처처럼 아파 보였다.
그때는 몰랐다. 스님의 도끼 아래 놓여 있던 그 낡은 받침목이 '모탕'이라 불린다는 것을. 그저 평범한 나무토막처럼 보였지만, 그 나무가 어떤 묵묵한 인내로 자리를 지켜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장작을 패는 자리에 가장 먼저 놓이는 받침목, 날카로운 도끼날이 연신 내리꽂히는 고통 속에서도 모탕은 묵묵히 장작을 받쳐 든다. 스스로는 상처투성이로 깎여 나가지만, 그 헌신 덕분에 장작은 비로소 따뜻한 불꽃으로 피어난다.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화려한 불꽃이 아닌, 불꽃을 피워내기 위해 묵묵히 자신을 내어주는 존재의 헌신 속에 깃든다는 것을. 드러나지 않기에 더욱 숭고한 그 침묵의 외침은, 오랫동안 가슴을 울렸다.
그 스님의 이야기는 몇 달 뒤 주지 스님을 통해 전해 들었다. 어린 시절 그는 장작을 패서 팔던 강도끼장이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랐단다. 장작처럼 날카롭고 마른 의붓아버지는 추운 겨울이면 장작을 지고 읍내를 돌았고,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엔 집 안을 장작 패듯이 쪼갰다. 아이에게는 무자비한 장작개비 매질이, 아내에겐 주먹과 발길질을 퍼부었다.
그 지옥을, 어린아이는 찍소리도 못 내며 견뎠다. 그 속에서 오직 어머니만이 곁을 지켜주었다. 어머니는 도끼날 앞의 모탕처럼, 감정의 동요 없이 고통을 견뎠다. 울음소리조차, 하소연조차 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린 아들이 처참하게 매 맞는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 오래 억눌려 있던 감정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부엌칼이 아닌, 삶의 고통을 상징하는 듯한 무거운 때림도끼였다. 그날, 어머니의 절망과 분노는 멈출 수 없는 파도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그날 이후, 아이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여러 해 뒤, 그 아이는 깊은 산속 사찰의 스님이 되어 있었다. 주지 스님의 은사 스님이 그 아이의 딱한 사정을 알고서 거두어 불가에 귀의시켰다고 하는데,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근 듯, 말수가 극히 적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해마다 자청해서 힘든 장작 패는 일은 도맡아서 하고 있다고 했다.
"도끼를 든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사랑의 깊은 의미를 깨달았다고 하더군. 사랑은 자신을 깎아 내는 고뇌와 헌신이 그 밑바탕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뭐 그런 얘기였어."

▲묵묵히 장작을 떠받치는 모탕. ⓒ de on Unsplash
그 스님이 말했다는 이 얘기가 긴 여운으로 남았다. 날마다 도끼에 찍히며 쪼개지는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묵묵히 장작을 떠받치는 모탕. 날카로운 도끼날을 무디게 하고, 장작을 안정적으로 지탱해 주면서 자신은 서서히 깎여 나가는 존재. 드러나지 않지만,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내는 그 모양새에서 나는 삶의 진실 하나를 마주했다.
중생의 운명이란 것이 때로는 숙명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의사와는 하등 상관없이 태어날 때 이미 성별이 주어지고, 가문이 정해지며, 부모와 형제가 정해져 있다. 인간의 의지로는 거스를 수 없는 이러한 경계 앞에 우리는 종종 무력해진다. 아무리 힘들어도 멈출 수 없는 일들이 있고, 아무리 하기 싫어도 감당해야 하는 무게들이 있다.
어떤 업보가 있기에 하필이면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 등에 삶의 고단함을 짊어진 낙타처럼, 험준한 차마고도를 오르는 당나귀처럼, 덧없는 삶의 무게를 감내하는 수많은 존재의 삶이 모탕을 닮지 않았는가? 모탕의 묵묵한 헌신을 보며, 고통을 감내하는 땅이라는 의미의 불교 용어 '감인토(堪忍土)'에서 영감을 받아, 나는 모탕을 '침지인(椹之忍)'이라 이름 붙였다.

▲침지인(?之忍)화가 치밀어오를 때 나를 지키는 주문 침지인(?之忍)-참고 견딤이 필요할 때 생각하라. 도끼날을 견디는 모탕의 인내를! ⓒ 이명수
모탕[椹]의 굳건함과 인내[忍]를 합친 이 이름에는, 모진 고통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모탕의 숭고한 정신을 담고 싶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격한 감정에 휩싸일 때마다, 마음속으로 이 세 글자를 되뇌면서 도끼날에 찍히는 모탕을 떠올렸다. '참아야 할 때는 모탕처럼 굳건하게 견뎌내야 한다.' 마치 주문과 같은 이 소리 없는 외침은, 거짓말처럼 요동치던 감정을 잠잠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그날 마당 한쪽에서 듬직하게 버티던 모탕.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오랜 세월 도끼날에 깎이고 패여, 개미허리처럼 가늘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앙상하게 남은 몸통에는 깊은 옹이 자국만이 훈장처럼 남아, 그의 헌신적인 삶을 증명하는 듯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많은 무게를 버텨낸 존재. 도끼 자국처럼 패인 옹이는 누군가의 온기를 위해 헌신한 흔적이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삶 또한 그 묵묵한 모탕과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화려하게 타오르는 장작처럼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굳건히 도끼날을 받아내며 누군가의 따뜻한 온기를 위해 헌신하는 수많은 이름 없는 존재들.
부모님의 굽어진 허리, 일터에서 묵묵히 흘리는 노동자의 땀방울, 굳게 다문 수행자의 입술 뒤에 숨겨진 침묵의 헌신이야말로, 세상을 따뜻하게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닐까. 나는 인내가 필요한 순간이면 마음속으로 붓을 들어 '침지인(椹之忍)' 세 글자를 힘껏 쓰고, 그 아래 이렇게 적으리라.
참고 견딤이 필요할 때 생각하라.
도끼날을 견디는 모탕의 인내를!
덧붙이는 글 | - 강도끼장이 : 예전에, 서울 주변 강가의 마을에서 뗏목이나 장작을 패는 일을 업으로 하던 사람.
- 때림도끼 : 강도끼장이가 사용하던 도끼. 볼이 좁고 자루가 길다.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 '축성여석의 방'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