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 주거기본법 제2조에 명시된 ‘주거권’이다. 주거야말로 인간의 기타 기본권의 토대다. 사는 곳이 안전하지 않으면, 깨끗하지 않으면 건강이나 사회 참여는 위협받는다. 게다가 옥천은 초고령화 농촌지역이다. 돌봄 수요가 월등히 높다. 사는 곳에서 돌봄을 받는 통합돌봄이 자리 잡으려면, 무엇보다 사는 곳이 안전해야 한다. 옥천신문이 공공돌봄에 이어 ‘주거복지’를 조명하는 이유다. 이번 기사에선 화재, 수해 등 재난재해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불이 나면 사람들은 그 불이 꺼진 장면에서 멈춘다. 화재 이후 살 곳을 잃은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잿더미에 쉽게 묻혀버린다. 주거 위기에 빠진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들이 떠난 곳으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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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수해, 강풍 등 최근 연이은 재해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공동체에도 흠집을 낸다. 집을 잃은 사람은 결국 마을과 지역을 떠나고, 폐허가 된 집은 마을의 흉물로 남는다. 재해로 무너진 집을 재건하고 사람을 지키는 일은 곧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이다.
재해 현장에서는 개인이 입은 피해를 회복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그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는 '주거 공간'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혹자는 마을회관이나 자녀의 집을 쉽게 언급한다. 하지만 기나긴 복구 기간 이웃과 가족이 져야 할 돌봄 부담은 말하지 않는다.
재난재해로 사는 곳을 잃은 이들에게 재건과 재기에 충분한 시간을 부여할 안전한 주거 공간이 절실해 보인다. 도내 청주시나 충주시는 일찍이 이 같은 문제를 직시했다. 2018년부터 청주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임대차 협약을 맺고 주거 위기 가구에 긴급지원주택을 운영하고 있다. 충주시는 재해 발생 시 수요를 파악해 임시 조립주택을 제공하고 있다. 옥천군은 화재나 수해를 입은 주민에게 재난지원금, 구호품 등을 지급하지만 주거지 지원은 없다. 같은 재난재해를 입어도 사는 곳에 따라 재기의 속도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화재 이후 마을회관에서 1년 지내거나, 요양원 입소, 지역 떠난 사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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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옥천읍에 사는 1937년생, 1941년생 노부부의 집에 화마가 들이닥쳤다. 노부부의 의식주를 순식간에 모조리 태워버렸다. 까맣게 타들어 간 집과 마음을 복구하고 치유하려면, 당장 살 곳이 필요했다. 사람이 많은 마을회관은 불편했다. 해외, 타지에 나간 자녀들에겐 짐이 되기 싫었다. 잘 알고 지내던 이웃집의 방 한 칸을 빌렸다. 화장실도 없는 2~3평에 불과한 집에서 인스턴트 미역국을 데워 먹으며 버텼다. 다행히 이틀 뒤 소식을 들은 며느리가 찾아와 인근 모텔방을 구했다.
자녀가 있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다. 돌봄 부담을 자녀에게 떠넘기기 싫어 마을회관을 전전하거나 요양원, 이사를 택하기도 한다.
안내면 한 마을의 주민 A씨(89)도 지난해 화재로 집을 잃었다. 인근에 아들이 살고 있지만, 지금껏 마을회관에서 지내고 있다. 부양에 부담을 느낄 아들의 집보다 수십 년간 청소하고 밥하고 지낸 마을회관이 나아서다. 집은 다시 짓고 있다. 같은 마을 또 다른 주민은 전소된 집을 다시 지을 여력이 안 돼, 자녀의 집으로 갔다가 결국 요양원에 입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6월 청산면에서 화재 피해로 마을 주민의 도움을 받아 마을회관에서 지내던 B씨(82)는 결국 집을 다시 짓지 못 하고 경기도로 이사했다. 당시 B씨는 희망을 잃었던 동시에 이웃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다며 미안한 마음을 안고 있었다.
화재 피해뿐만 아니다. 지난해 여름 집중호우로 주택 침수 피해를 입었던 군서면 C씨(77)는 여전히 집으로 복귀하지 못 하고, 안내면의 한 교회에서 제공한 원룸에서 지내고 있다.
한편 군은 올해부터 화재 피해 주민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옥천군의회 송윤섭 군의원은 지난 3월 '옥천군 화재피해주민 지원 조례 전부개정 조례안'을 대표발의했고, 지난 임시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에 주택복구비용이 ▲전소 500만 원 ▲반소 300만 원 ▲부분소 200만 원으로 각각 100만 원씩 인상됐고, 주민이 임시 거처를 이용하는 경우 소요 비용이 지원된다. 아울러 식비, 심리회복 지원도 포함됐다.
긴급지원주택 운영하는 청주시, 주거복지센터 통해 퇴거 이후 공공임대주택 연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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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재난재해로 인한 피해는 다층적이다. 개인의 집 복구나 심리치유도 문제지만, 공동체에도 금이 간다. 그렇기 때문에 회복도 장기간 소요된다. 문제는 충분한 회복기를 가질 수 있도록 안전한 주거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청주시는 2018년 LH가 보유하고 있는 빈집을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조건으로 제공받아 긴급지원주택 '디딤하우스' 시범사업을 시행했다. 디딤하우스는 재난재해로 살 곳을 잃은 가구나, 쪽방이나 노숙인 시설 등 비주택 거주자들이 안정적으로 주거할 수 있도록 고정적으로 확보·관리하는 임대주택이다. 디딤하우스를 운영·관리하는 청주시주거복지센터(센터장 정주남)에 따르면 현재 총 25호를 운영 중에 있고, 평균 15~20호가 입주한다. 센터가 운영 위탁받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 180호가 입주했는데, 이 중 46가구가 재난재해 피해를 입은 가구였다.
청주시주거복지센터 정주남 센터장은 "시가 자체 예산을 세워 보증금과 임대료를 내는데, LH와 업무협약을 통해 임대료를 낮췄다"라며 "재난재해로 인해 긴급지원주택에 입주하시는 분들 중 화재 피해가 가장 많은 편이다. 입주 기한은 6개월이긴 하지만, 사정이 안 돼 나갈 수 없는 분들은 연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청주시의 올해 예산서를 살펴보면 긴급지원주택 주거지원 사업에 2760만 원이 소요된다. 이중 2700만 원이 임대료에 해당한다. 입주 가구는 보증금 30만 원만 부담하면 된다.
시 예산으로 운영되는 청주시주거복지센터의 역할도 실로 크다. 센터는 ▲공공주택 입주지원, 주거복지 정보제공 등 주거상담부터 ▲긴급집수리, 이사비 지원, 보증금 지원, 긴급연료 지원 등 직접지원사업 ▲주거복지 교육, 지역자원 연계 협업 사업 등 홍보·교육·네트워크 구축 ▲긴급지원주택, 저장강박 의심 가구 지원, 주거취약계층 주거상향지원사업, 비정상거처 거주자 이사비지원사업 등 특화사업을 진행한다. 특히 센터는 디딤하우스 입주자들을 상담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으로 입주시키기도 한다. 지금껏 디딤하우스에 살던 133가구가 공공임대주택으로 입주하는 성과를 냈다.
정주남 센터장은 "꼭 지역에 주거복지센터가 없더라도 지자체 차원에서 국토부의 주거취약계층 주거상향지원사업과 같은 공모사업에 대응해 주거복지를 실현시킬 수 있다. 예산은 국토부 50%, 충북도 20%, 청주시 30%로 비주택 거주자나 가정폭력 피해자 등 주거취약계층을 공공임대주택으로 입주시키는 사업"이라며 "특히 농촌은 빈집이 많으니, 지자체가 면마다 1~2호씩 가구를 매입해 임시 거처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집중호우로 수해 입은 주민 위해 임시 주거용 조립주택 마련한 충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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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는 재해기금으로 임시 주거용 조립주택을 설치해 수해민들의 주거 위기에 대응했다. 2020년 7월 집중호우로 주택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해 24㎡ 규모의 임시 주거용 조립주택 13동을 설치했다. 조립주택 설치에는 5억 8500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 3개 면에 13세대, 26명을 입주시켰다. 새 집을 마련할 때까지 1년 동안 무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수해민들이 퇴거한 후에는 매각을 통해 주택을 정리했다.
이후 2023년에도 6600만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2동의 임시거주용 주택을 마련했고, LH 행복주택 빈집 1호를 매입해 수해민 주거 지원에 대응했다. 기본 거주 기간은 1년이지만 연장할 수 있어, 2023년에 입주한 이들은 올해 7월까지 임시 주택에서 지낼 수 있다.
충주시 복지정책과 자활지원팀 담당자는 "2020년에 설치했던 조립주택은 입주자들이 퇴거한 뒤 이재민 우선 매입 또는 제3자 매각을 통해 정리했다. 이후 2023년도에 수해가 또 발생해 읍면동 별로 임시 거주자 수요를 파악한 뒤 2개 동을 설치했다. 또 건축부서에서 LH 행복주택 내 빈집 1호를 매입해 긴급지원주택으로 활용했다"라며 "입주 자격은 크게 따지지 않는다. 생활할 수 있는 터전을 잃어버렸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이에 이병우 옥천군의회 군의원은 "그동안 화재 등 재난재해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 도와주기만 했지 그분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계시는지에 대해서는 군에서도 면밀히 살펴보지 못 했다고 본다"라며 "LH 임대 아파트의 공실이나 빈집을 활용하는 등 주거 위기에 빠진 주민들이 자립할 때까지 1~2년 동안 거처할 공간을 지자체가 제공할 방안을 찾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옥천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