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지역에서 마을 내 화재가 잇따르는 가운데, 마을 진입로가 협소해 신속한 초기 대응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소방당국은 옥천 내 진입로가 좁은 자연마을이 많아, 진입 시도 대신 여러 개의 호스를 연결하는 등의 진화 작업이 일상화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진화 작업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
진입로를 넓히기 위한 주변 토지매입 등의 제반 절차 역시 사실상 어려워, 주민들을 비롯한 소방 관계자들도 오랫동안 초기 진화에 효과적인 '비상소화장치' 설치를 대안으로 제시해왔다. 하지만 취재 결과 옥천군 내 비상소화장치 설치 대수는 충북 다른 지자체보다 저조하며 남부3군 중 제일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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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마을 많은 농촌, 소방차 진입 어려운데 길 넓히긴 더 어려워
13일 옥천읍 A마을서 주택 화재가 발생하며 80대 노부부가 삶의 터전을 모두 잃어버린 사건을 목격한 이웃 주민들은 화재 대응에 취약한 농촌 현실에 문제를 제기했다. 마을 주민 B씨는 "내가 사는 곳 두세 집 건너에서 불이 났다"며 "화재 대응은 1분 1초가 중요한데 (길이 좁아) 소방차가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게 보였다. 겨우 한두 대 들어오고는 (나머지 차량이) 거의 못 들어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B씨의 말처럼 A마을은 소방차가 들어올 수 있는 큰길과,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길이 섞여 있다. 차량이 들어오기 힘든 골목 안쪽에 집이 있는 B씨는 훗날 자신의 집에 불이 났을 경우를 떠올렸다고 했다. "모든 마을에는 소방차가 안전하게 진입할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는 B씨 말에 주민 다수가 공감했지만, 토지 수용 문제로 쉽게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이장 C씨는 "진입로를 확장하려고 토지주와 여러 차례 협상을 시도했지만 잘 안 되고 있다. 언제쯤 공사를 할 수 있을는지 알 수가 없다"며 한숨 지었다.
"시골집은 30분이면 전소"… 초기진화 도울 비상소화장치 늘려야
면 단위에 있는 마을들도 B씨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19일 군북면 보오리에서 자체 소방훈련을 진행한 이유 중 하나도 "길이 좁기 때문"이었다. 보오리 이근희 이장은 "교동리 쪽으로 돌아오는 길엔 굴다리가 있고 용목리 방면은 재해지구 공사가 진행 중이라 소방차 진입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옥천소방서 관계자 D씨는 "농촌에는 자연마을이 많아 소방차·펌프차가 진입하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다"며 "화재를 진압하는데 소방호스를 10번까지도 이어붙이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비상소화장치 일부 노후·관리부실··· "주민 안전에 예산만 말할 순 없어"
이에 주민들은 과거부터 '비상소화장치'를 대안으로 제시해왔다. 비상소화장치란 소방차 진입이 곤란한 곳에 주로 설치되는 간이형 소방시설로, 소방차 도착 전 주민들이 직접 초기 진화를 시도할 수 있는 장치를 말한다. 가령 호스형 비상소화장치는 인근 주민이 직접 소방호스를 사용해서 일반 가정용 소화기로 진압이 어려운 불을 제압하는 데 효과적이다. 지난 2월 군북면 주민과의 대화서 비상소화장치 설치 확대를 건의한 군북면의용소방대 김흥선 대장은 "비상소화장치가 있으면 반경 200m까지도 웬만한 불에 초기 진화를 충분히 시도할 수 있다. 화재 확대를 막는 큰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옥천군의 비상소화장치 설치 수준은 도내 하위권에 머무는 것으로 확인됐다. 남부3군 지자체 중에서는 최하위다. 충북도의회 박용규 의원실이 충북소방본부에서 받은 '소방용수시설 및 비상소화장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옥천군 내 비상소화장치는 33개소다. 이웃한 보은군(68개소)·영동군(55개소)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도내 11개 시군으로 따져도 7번째다.
옥천소방서에 따르면 우리지역 9개 읍면 중 안남면에는 비상소화장치가 단 한 개도 설치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관내 설치된 일부는 노후했거나 관리 부실이 의심돼 실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23일 오후 확인된 안내면 월외리(427번지)의 비상소화장치는 겉은 빛이 바랬고 내부 점검 카드는 1월부터 쭉 빈칸이었다. D씨는 "소화기 하나가 소방차 한 대 역할을 하듯 비상소화장치는 초기진화용으로 정말 좋다"면서도 "대신 설치만큼 유지관리가 중요한데 제대로 관리 안 하면 추울 때 배관이 터져 물이 안 나오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도내 소방 예산과 비상소화장치 설치·관리를 관할하는 충북소방본부는 예산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충북소방본부 소방행정과 신길호 과장은 "충북은 청주시를 제외하면 대부분 도농복합도시기 때문에 옥천군만 어렵다고 옥천군에만 설치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한정된 예산 속 12개 소방서 분배에 한계는 있지만 비상소화장치 설치는 계속되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생명과 안전이 걸린 문제에 소방·지자체가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산지·대청호 등으로 다수 오지마을이 있는 옥천군에는 지역 실정에 따라 설치를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흥선 대장은 "오지마을까지 30분 넘게 걸릴 때도 있는데 시골집은 30분이면 다 타버리고 만다"며 "예산이 문제인지 의지가 없는지 누차 건의했음에도 주민 안전은 도외시된다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충북도의회 박용규 의원은 "11개 시군 중 옥천군이 제일 저조하다는 사실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 더구나 옥천군은 지역 특성을 고려하면 취약 지역이 많은 편"이라며 "골든타임을 놓치면 큰불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2차 추경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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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옥천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