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제의 종언>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제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사진은 책의 앞 표지이다. ⓒ 정직한 모색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모든 정당과 후보자들이 바쁘게 선거 준비에 몰두하는 가운데 필자는 대통령제에 기초한 한국 정치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제안하는 책을 출간했다. 출판사 '정직한 모색'을 통해 5월 1일 세상에 나온 <대통령제의 종언>이 그것이다.
이 책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내란 사태와 이어진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이라는 충격적 정치 격변의 이면을 분석한 결과물이다. 또한 한국 민주주의가 이러한 정치적 위기를 넘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그 근본적 대안은 무엇인지를 담았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2024년 12월 14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필자는 이 책의 집필을 결심했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단순히 대통령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제라는 정치체제 자체의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되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는 작업이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판단했다.
12·3 내란이 드러낸 대통령제의 구조적 한계
필자는 이 책에서 12·3 내란의 본질을 '실패한 친위쿠데타'로 규정하고, 이 사태가 한국 대통령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극단적으로 표출한 사건이었다고 분석한다. 위헌·위법한 비상계엄 선포라는 윤석열의 비상식적 결단은 단순히 그의 개인적 특성이나 판단 오류의 문제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정치 경험이 부족한 인물도 순간적인 이미지 정치를 통해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는 구조적 맹점을 지니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최고 권력자가 된 인물이 내각과 의회의 아무런 견제 없이 독단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12·3 내란은 대통령제의 이러한 일반적 문제점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필자는 책에서 이 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통치형태가 의회제였다면, 윤석열과 같은 인물은 총리 자리까지 오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설령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가정해도, 내각과 의회를 무시하고 혼자 독단적으로 비상조치를 감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위헌·위법한 비상조치를 감행할 수 있었다면, 즉각적인 의회의 불신임 투표를 통해 곧바로 실각했을 것이다. (14쪽)
87년 체제의 한계와 제7공화국의 필요성
이 책에서 필자는 1987년 개헌 협상의 역사적 맥락을 되짚어 보았다. 당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이 각자의 정치적 기회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타협한 결과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를 뼈대로 한 제6공화국 헌정질서가 출범했다. 지금까지 87년 체제의 한계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12·3 내란 사태만큼 그 근본적 결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은 없었다.
87년 체제는 적어도 형식적 민주주의의 틀이 상당히 공고화된 체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2·3 내란은 이러한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는 87년 체제의 근본적 불안정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단 한 명의 대통령이 헌법에 명시된 권한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군대를 동원하는 것만으로도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민주주의의 토대가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필자는 대통령제에 기초한 한국 정치체제의 결함을 직시하고 근본적인 정치체제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7공화국 수립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12·3 내란이 드러낸 민주주의의 취약성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이 시대의 필수적 과제다.
합의 민주주의에 기초한 제7공화국의 청사진
필자가 제안하는 제7공화국은 세 가지 핵심 요소에 기반한다. 첫째, 대통령제에서 의회제로 통치형태를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한 개인에게 과도한 권력을 부여하고 이원적 정통성 시비를 발생시키는 현행 대통령제의 문제를 해소하고, 권력의 분산과 견제 및 균형의 원리를 실현하는 방안이다.
둘째, 현행 다수대표제를 비례대표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승자독식을 강화하는 다수대표제 선거를 중단하고, 비례대표제를 전면화함으로써 다양한 민의가 고루 반영되는 대의 민주주의를 수립하자는 것이다.
셋째, 기본권을 확장하고 분권과 참여의 새로운 패러다임 확립을 통해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이다. 통치형태와 선거제도의 전환은 이러한 민주주의의 혁신과 맞물릴 때 그 효과가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
필자가 책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OECD 38개국 가운데 26개국이 의회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의회제 국가 중 20개국이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고 있다(209-210쪽 <표 7-2> 참조). 이는 두 제도의 강력한 친화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특히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등 안정적 민주주의 국가들의 경험은 이러한 제도적 결합이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를 입증한다.
시민참여형 헌법개정과 제7공화국 이행 로드맵
시민참여 공간을 제도적으로 확대하는 헌법개정 과정의 민주화도 당면한 과제의 하나이다. 이 책은 시민참여를 보장한 아이슬란드의 '크라우드소싱 헌법'과 멕시코시티의 '도시헌법'을 주요 참고 사례로 제시한다. 한편, 제7공화국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적극적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국의 정치체제를 지배하는 현재의 거대 양당은 체제 혁신보다는 체제 유지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이 책에서 필자는 세 가지 구체적인 제7공화국 이행 로드맵을 제시했다(280쪽 <표 9-3> 참조). 첫째, 2026년 6월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 둘째, 2027년 4월 단독으로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 셋째, 2028년 4월 총선과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이다. 이 중 가장 시기가 빠른 첫째 방안의 성공을 위해서는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신속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전면 개헌과 정치관계법 전반의 개정 합의가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12·3 내란과 같은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계엄 제도 개혁은 하루빨리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계엄 관련 조항에 대한 개헌과 계엄법 개정 등은 내란의 완전 종식을 위한 최소한의 책무다. 이를 위해 필자는 계엄 선포 시 국회 통고만이 아니라 국회 보고 및 승인을 명시한 "헌법 제77조 개정안"(258쪽)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를 위하여
12·3 내란 직후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이 급격히 추락했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에서 줄곧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던 한국은 2024년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강등되었다.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Dem Institute)'가 1993년 처음 한국을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한 후 30년 내내 이 지위를 유지해 오던 한국은 2024년 그 지위를 잃고 '선거 민주주의' 국가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필자는 이 민주주의의 위기에서도 희망의 근거를 발견했다. 비상계엄 선포가 알려지자마자 수천 명의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달려와 헌정질서를 파괴하려는 시도에 단호히 맞섰고,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시민들의 능동적인 정보 공유와 연대는 새로운 시민 저항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12·3 내란은 한국 사회에 뼈아픈 교훈을 남겼으며, 민주주의의 취약성과 동시에 그 소중한 가치를 절감하게 했다.
필자는 민주주의를 고정된 제도나 도달해야 할 최종 상태가 아닌,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재창조되는 동태적 과정으로 파악하자고 제안하면서, 이를 "영속민주화론"으로 개념화했다(118-121쪽 참조). 새로운 합의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제7공화국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구성하고 발전시키는 주역인 공화국 시민의 몫이다.
12·3 내란의 결과로 치러지는 제21대 대통령 선거 준비가 한창인 지금, 대통령제를 포함한 한국 정치체제의 미래에 관한 치열한 토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대통령제의 종언>이 이러한 논의의 마중물이 되는 것이 필자의 간절한 바람이다. 끝으로, 이 책이 제기하는 아래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한 번 더 곱씹어보자.
민주주의를 단순히 덜 나쁜 지도자를 뽑는 일에 가둘 수 없다. 민주주의는 플라톤(Plato)이 꿈꾼 철인왕(哲人王)의 출현을 고대하는 도박과 같은 것이 아니라, 굳건한 민주적 장치로 뒷받침되는 안정적 시스템이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면서도 그 권한을 선용하라고 훈계하는 방식으로는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없다. (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