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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과 결혼해 독일에 살고 있는 저는, 작년 12.3 계엄 이후 여러 번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 윤석열 탄핵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나날이 진화하던 한국의 집회 문화(응원봉, 선결제, 난방차, 핫팩 나눔)를 다는 못 따라가도, 독일 내 한국인 집회는 일반 독일 집회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두 번째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우선 노래 필수, 자유 발언 필수, 질서 정연한 구호 외치기, 응원봉과 촛불 등장, 핫팩과 커피 나눔이 있었으니까요.
제가 참여한 독일 집회에서도 구호를 간간이 외치기는 하지만, 한인 집회처럼 선창과 후창이 명료하지도 않고, 정형화된 집회 필수 요소가 아닙니다.
전 세계 언어로 시위하는 광경 흔한 독일... 한국어 피켓들이 휘날렸다
세월호 추모 집회, 박근혜 탄핵 집회, 소녀상 지킴이 행사에만 해도 우리는 나름 독어와 영어 피켓을 가져오거나 영문, 독문 홍보물을 나눠주며 독일(현지)인에게 우리가 무엇을 주장, 요구하는지 알리려 애썼습니다.
그런데 지난 12.3 내란 직후 독일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모인 우리는 그럴 여유가 없었어요. 초유의 계엄과 탄핵이 중차대한 문제라 한글로 급조한 피켓이 많았습니다.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2024-12-04. ⓒ 백관숙
재외 동포가 굳이 모여 시위할 때는 한국 집회 참여자들에게 연대를 표하고 한국 언론에 어떻게든 알리려는 목적이 크기 때문에, 독일(현지)인 설득까지는 벅찰 때가 있어요.
"아유, 궁금하면 알아봐, 너희가. 우린 지금 다급해!"
어쩌면 이런 마인드였을지 몰라요. 아니면, 문재인 정부 이후 높아진 한국인들의 자의식 때문일지도 모르고요.
그리고 이제는 휴대폰만 있으면, 외국어 피켓 사진 찍어 번역 돌리면 얼추 내용을 알 수 있는 시대잖아요. 게다가 독일 베를린에서는 전 세계 사람들이 각각의 언어로 시위하는 광경이 흔하게 펼쳐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궁금한 사람이 다가가 내용을 물어보죠. 윤 파면 집회 때도 '다만세(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고 구호를 목청껏 외치는 우리들에게 다가와, 이걸 왜 하는 건지 집회 이유를 물어보는 행인들이 늘 있었으니까요.
12살 딸, 이미 두 명 대통령의 탄핵 집회 유경험자가 됐다
베를린에서 태어난 제 열두 살 딸은 이미 두 명의 한국 대통령 탄핵 집회 유경험자가 됐습니다. 8년 전에는 엄마가 꼬셔서 따라 나갔지만, 올해는 본인 의지로 참석했습니다.

▲베를린에서 태어난 제 열두 살 딸은 이미 두 명의 한국 대통령 탄핵 집회 유경험자가 됐습니다. 독일 국기(자료사진). ⓒ christianw on Unsplash
지난 4월 4일 파면 선고는 한국 시각 오전 11시, 제가 있는 독일 시각으론 새벽 4시였는데, 아침잠 많은 제가 알림을 맞추지 않았는데도 4시 직전에 눈이 떠졌습니다!
계엄 이후 저도 남들처럼 내란성 뉴스 과몰입에 시달렸으니, 늘 얕은 잠을 잤던 것 같아요. 독일인 짝꿍을 깨우지 않으려고 저는 재빨리 이어폰을 끼고 침대에 웅크려, 그 유명했던 파면 주문 선고까지 듣고는 기뻐하다가 다시금 잠에 곯아떨어졌습니다.
올겨울 한국 민주 시민이 치러낸 무수한 집회와 행진에 비하면, 베를린 집회는 1시간 정도면 끝나는 격주에 한 번 정도 하는 행사였습니다. 한국처럼 이동시간까지 총 몇 시간은 투자해야 하는 강행군 이벤트가 아닌 거죠. 물론, 한국처럼 여기서도 노래와 춤이 있어 좋았습니다.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11차 범시민대행진’이 지난 2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앞에서 윤석열퇴진비상행동 주최로 열렸다. 깃발, 응원봉을 든 시민, 노동자들이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 권우성
재능 기부하는 성악가도 있고, 자유발언 하는 또랑또랑한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다만 독일인이 주최하는 집회에 비하면, 매우 '순한 맛'에 속하는 편입니다.
독일 베를린 관광지 한복판에서 한국말로 외치고 노래하고 '다만세' 노래에 맞춰 춤을 추던 이번 겨울, 그리고 그 노래 가사를 부르며 위로 받았던 시간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마 / 눈 앞에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변치 않을 사랑으로 지켜줘 / 상처 입은 내 맘까지
시선 속에서 말은 필요 없어 / 멈춰져 버린 이 시간
거기서 어쩌면 저는 독일에 살며 종종 느끼던 타향살이의 고단함도 위로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게 잘 마무리 되어 다행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