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크로드 드크레센조 교수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불법 비상계엄에 맞서 법과 정치적 절차를 통해 민주주의를 잘 지켜냈다"며 "이를 볼 때, 앞으로도 한국인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마음의숲 출판사 제공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지만, 민주적인 시위와 법과 정치적 절차를 통해 잘 해결했다는 점을 보면, 저는 한국의 미래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세계에 또 한 번의 귀감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남동부 엑상프로방스 지역의 작고 소소한 마을 퓌보(Fuveau)에서 32년째 살고 있는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교수. 추어탕과 선지해장국과 같은 얼큰한 국밥 한 그릇 정도는 뚝딱 해치울 정도로 한식 마니아다. 여기에 매생이국, 조기구이, 갈비찜, 라면 심지어 삼합까지. 한국인보다 한식을 더 즐기는 그에게 한식은 소울 푸드 그 자체다.
한국이 너무 좋아 아예 '한국학과' 과정을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학에 창설했다. 그때가 2002년. 이듬해 첫 학생들이 입학했다. 갈수록 K-팝 열기와 드라마와 영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지원자는 평균 2000여 명을 웃돌 정도로 인기 학과로 자리매김했다. 정원은 단 100명뿐.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다. 하기야, 이것도 75명에서 올해 겨우 늘린 것이라고.
드크레센조 교수는 "그 이후로도 학생 수는 늘고 있다"면서 "우리는 3개국어학부 과정(한국어 포함), 영어-한국어 응용외국어 학부 과정 그리고 작년부터는 한국어 및 한국 문화만을 공부할 수 있는 학부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라면서 현재 약 250명의 학생이 학부 1학년 때부터 석·박사 과정까지 밟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의 아내 김혜경 교수도 같은 대학에서 아시아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친김에 <드크레센조>라는 이름의 프랑스 출판사도 세웠다. 주로 한국 문학을 프랑스에 소개하는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를 가장 먼저 프랑스어로 출간한 것도 바로 <드크레센조> 출판사다. 현재는 그의 아들, 프랑크씨가 운영 중이다. 그렇게 그는 한국을 먼 곳에서도 가장 가깝게 바라봤고,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해석을 곁들여 우리 주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그를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계기는 얼마 전 <경이로운 한국인>(마음의숲 펴냄)을 집어 '나라가 어두울 때 가장 밝은 빛을 들고나오는 국민'이라는 부분을 거의 읽어 내려갔을 무렵이었다. 짧은 일화에 가까운 메시지였지만 그에게 듣고 싶은, 아니 묻고 싶은 것이 강렬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과연 오늘날 그에게 한국 사회는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지금도 그에게 한국인은 여전히 경이로울까?'
얼마 전까지 차가운 길바닥에서 촛불을 들고 불법 비상계엄에 맞서며, 자유와 평화를 외치는 우리에게 앞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두 명의 대통령을 파면하면서까지 민주주의를 지켜내려는 한국인을 세상은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세계 속의 작은 나라 한국이 세계에 전하는 큰 울림이 있다면 무엇일까? 지금이 바로 그 대답을 들어야 할 때다 싶었다.
망설임 없이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교수에게 인터뷰 요청서를 메일로 발송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하며 빠르게 답변을 보내왔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책에 담기지 않았던, 드크레센조 교수가 바라보는 한국 정치와 사회의 지형, 그 속에서 그가 근거로 내세운 '한국인이 경이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어봤다. 참, 그에게 '장길도(張吉道)'라는 한국 이름도 있다는 사실. 그의 아내 김혜경 교수의 외삼촌이 지워준 멋진 이름이란다.
"한국인에게는 고난을 잘 이겨내는 DNA가 있다"
- 해마다 한국을 두세 차례 찾는다고 알고 있다.
"프랑스에 있는 동안 너무 보고 싶은 소중한 가족과 친구를 만나러 간다. 문학 이야기도 즐기고, 제 책 강연 활동도 이어간다. 또, 여러 작가와 만나기도 하고, 대학 동료와 담소도 나눈다. 분명한 건, 나는 한국에 가면 잠시도 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거 아나? 내 아내 김혜경 교수는 나보다 더 바쁘게 움직여서 한국 가면 얼굴 보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웃음)"
- 평소 한국의 정치와 사회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두고 사랑해 왔다. 최근 한국 정치 지형이 다소 혼란스럽다는 해외 시각도 있는데, 이를 어떻게 보고 있나.
"2024년 12월 3일, 한밤중의 비상계엄으로 시작된 한국 민주주의 위기가, 비록 쉽지는 않았지만 법과 정치적 절차로 잘 해결했다. 이를 보면 나는 한국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한국은 여러 외세의 침략과 강대국 사이의 어려움 속에서도 잘 이겨냈다. DNA가 있다. 한국만의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됐고, 많은 교훈을 남겼다."

▲윤석열 즉각 파면하라!지난 3월 17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십자각 인근에서 열린 내란 수괴 윤석열 즉각 파면 긴급행동에서 참석자들이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안정을 되찾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 생각하는가.
"결국 모든 구성원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불안정한 정세 속에 놓였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확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채 새로운 문명적 전환기를 맞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무역과 군사, 인종 심지어 우주 분야에서도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하다. 권위주의 정부가 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이번에 (대통령 파면과 관련) 좋은 사례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한국 국민에게 더 이상 비정상적인 체제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걸 몸소 보여주지 않았나. 전 세계 국가들에도 귀감이 됐으리라 본다."
-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세계 속 작은 나라 한국이 세계와 경쟁하며 성장할 수 있었던 근거라고 봐도 될까?
"이건, 분명 긴 논의가 될 수 있다. 한국은 현대화를 빨리 이루고 가난에서 서둘러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한국은 지식과 정보, 노동의 힘을 잘 활용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 2000년 사이에 꽃피운 소프트파워 정책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로써 지금까지도 음악, 드라마, 영화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정상권의 힘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무형 자원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의 생계를 뛰어넘어 나라의 발전을 위해 힘써왔던 수많은 이의 노력이다."
- 공동체적 이상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나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공동체적 이상, 즉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정신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라를 이끄는 정치 지도자나 대기업 CEO가 이 정신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다면, 세상은 더욱 살기 좋은 곳이 됐을 것이다. 사리사욕은 금물이다."
- <경이로운 한국인>이라는 책 내용 중에 '나라가 어두울 때 가장 밝은 빛을 들고나오는 국민'이라는 제목의 글이 인상 깊었다. 한국은 2024년 12월부터 2025년 4월 4일까지 비상계엄과 탄핵을 넘어 대통령 파면이라는 파고를 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가 다쳤고, 힘들어했다. 그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나.
"15년 전쯤, 나는 '지구촌 시대에 어떻게 한국인으로 남을 것인가'라는 제목의 강의를 한 적이 있다. 한국은 과거에 큰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특별한 역량, 품격, 경험을 쌓아온 나라다. 최근 불법 비상계엄에 맞선 시위에서 보여준 연대의 움직임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한국인은 오랜 세월 수많은 시련을 견뎠고, 여전히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순신, 유관순, 을지문덕 같은, 어려운 시기에 끝까지 싸운 위대한 인물들뿐만 아니라,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 밤늦게까지 우리를 돌보고 먹여 살리는 모든 '일상의 영웅'들을 오래 기억해 주길 바란다."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늘 '우리'가 자리하고 있어"

▲2023년 12월 6일, 드크레센조 교수가 아내 김혜경 교수(오른쪽)와 한국을 방문해 프랑스의 한국문학을 소개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승우의 장편소설 <캉탕>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2023 한국문학번역상' 대상을 수상했다. ⓒ 연합뉴스
- 한국은 대통령 탄핵만 두 번째다. 이렇게 민주주의를 지켜내려는 한국인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긍정적인 점은, 잘못을 저지른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법적·헌법적 장치를 한국이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나라가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는, 한국은 격동의 역사를 겪었기에 다시는 그런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역사가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오류를 거부할 수 있는 힘을 보여줬다. 12월 3일부터 이어진 시위가 이를 증명하지 않나. 물론 아직은 불안정한 승리이며,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경계심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탄핵에 반대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 봉합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 국가가 위기에 봉착하면 한국인은 투쟁과 결속의 힘이 DNA로 새겨져 있는 듯하다.
"그렇다. 우선, 한국인은 과거 외세의 침략과 가난에 대한 강한 복수심과 극복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런 과거가 한국인의 집단 정체성을 형성했고, 그 과거를 되풀이하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이 자리한 것이다. 이러한 상처와 경험은 가정과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다. <프로방스 숲에서 만난 한국문학>이라는 한국문학 관련 저의 책에서 '한국 문학에서 적의 형상'이라는 주제에 대해 쓴 글이 있다. 한국인들에게 있어 '적'은 집단적 결속을 다지는 힘이 됐고, 이를 통해 버텨낼 수 있었다."
드크레센조 교수는 질문마다 한국어로 정성스레 답했다. 기자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라며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문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그는 머뭇거림 없이 "한국 문화를 다 이해한다고 하면 그건 매우 거만한 태도"라며 "한 나라를 배우는 데 평생이 걸린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국의 고전 철학과 신화, 일상, 특히 한국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쁨도 감추지 않았다. "아시아 여성의 최초 노벨문학상"이라며 한껏 치켜세운 그는 "한강 작가는 문학·도덕·인간적으로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수상 소식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는 완벽한 후보였으니까"라고 답했다. 그는 한강 작가를 포함한 여러 작가의 한국 문학을 프랑스에 널리 알리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 독자에게도 전할 말이 있다며 끝인사를 갈음했다.
"저는 요즘 큰 질문을 저 자신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세월 동안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전통문화와 의식이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중요한 교훈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늘 '우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함께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함께 나아갈 힘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이, 지금처럼 이 사랑의 대열에 지속적으로 동참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것이야말로 행복한 미래를 건설하는 데 꼭 필요한 힘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글쓴이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