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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가고 있다. 그 화려했던 벚꽃도 어느 결에 지고, 새로 돋아 나오던 연두색 나뭇잎들은 며칠 사이 넓은 잎으로 변하여 바람이 부는 대로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다. 왜 이리 계절이 빨리 지나가고 있는지, 누가 밀어내는 사람도 없건만 세월은 참으로 바쁘게 달음질을 치고 있다.
이 짧은 봄날 잠시 게으름을 피우면 자칫 놓쳐 버리는 일들이 많다. 봄 꽃은 피고 지는 순간도 짧다. 짧은 봄을 즐기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매일 자연의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 봄 꽃 구경도, 봄이 주는 생명의 먹거리도 순식간에 때를 놓치고 만다. 자연의 변화처럼 인생이란 찰나와 같다는 말이 마음 안에서 떠나지 않는다.
진달래 피면 화전 부치고 햇쑥이 나오면 쑥 버무리를 하고 쑥이 더 크면 개떡을 쪄서 남편과 함께 봄을 즐기며 먹는다. 예전 시어머니 살아 계실 때부터 시댁에서 해 먹어 왔던 음식들이다. 시어머니가 세상 뜨시고 난 후부터 형님이 대를 이어 시동생들 좋아한다고 개떡을 쪄 주셨다.

▲보기에는 투박 하지만 ?우리 입맛에 마ㅈ느ㄴ 개떡. ? 반죽 하고 쪄 놓은 개떡 ⓒ 이숙자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봄이 오면 계절 음식으로 남편에게 개떡을 해 드린다. 물론 시중에서 사 먹을 수도 있지만 설탕을 잘 먹지 않은 남편과 내 입맛에 맞지 않기도 하여 내 손으로 직접 만든다. 옛날 시댁의 집안 음식 문화를 이어 가는 것도 의미가 있어 좋다.
귀찮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처럼 나이 든 세대는 무엇이든 습관처럼 손에 익숙해 어려움 없이 계절 음식을 잘 해낸다. 최소한 인생에서 재미있는 일을 찾아 과정을 즐기는 것은 소소한 행복이다. 자칫 귀찮다고 생각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봄을 잃지 않으려 분주하게 봄을 보내고 있다.
나이 80이 넘으면서 계절에 대한 개념이 특별하다. 이 봄이 지나면 또다시 똑같은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 자연이 내어준 먹거리를 찾아 즐기는 일이 나에게는 축제 같은 날들이다. 축제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다. 그 계절에 나오는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남편과 나에게는 기쁨이다.
어제는 안마원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시장을 들렀다. 쑥을 사려고 두리번거렸지만 밖에 내놓고 파는 집이 없어 어느 가게 주인에게 "혹시 쑥이 있나요?" 물어보니 있다는 대답에 반가워 쑥을 샀다. 집에 와 바로 씻어 식소다를 넣고 삶았다. 식소다를 넣고 쑥을 삶아야 쑥이 파랗고 보기가 좋기 때문이다.

▲개떡 찌기쑥을 사다가 삶고 개떡을 쪘습니다. ⓒ 이숙자
쑥을 삶으면서 맵쌀을 담가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쌀은 세 시간 이상 담가야 방아를 찧을 수 있다.
담가놓은 쌀을 점심 후 방앗간에 가서 빻아 뜨거운 물로 반죽을 해서 떡을 찐다. 매년 집에서 쪄서 먹는 쑥 개떡 맛은 우리 입맛 그대로다. 남편은 봄이 오면 집에서 해 드리는 봄 맞이 음식으로 호사를 누리신다. 사는 것이 별것이 아닌 이러한 소소한 즐거움이 행복이다.
쑥 개떡을 만들어 먹으며 언제나 그래 왔듯이 시어머님과 형님 생각을 하게 된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먹어도 옛날 추억은 고스란히 마음 한편에 남는다. 나이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 사람들의 말이 어쩌면 그리 마음에 와 닿는지. 남편과 즐기는 봄, 음식을 만들어 먹는 시간이 우리 부부에게는 소중하고 감사한 날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봄에 만들어 먹는 음식은 추억이 담긴 음식들입니다.
추억을 소환 하고 그리움에 봄 음식들을 만들어 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