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시급하고 중차대한 사안이다. 기후 위기와 금융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돈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는가에 따라 위기를 증폭시킬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글은‘기후 위기 시대, 금융이 수행해야 할 책임과 역할’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온실가스 규약(Green House Gas Protocol)이라는 국제 표준이 있다.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확히 산출, 관리하기 위해 만든 회계 지침으로, 머리글자를 따서 'GHG Protocol'이라고 부르며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된다. 이 표준에 따르면, 온실가스의 배출 범주는 크게 세 덩어리로 구분된다.
범주(1) : 기업이 소유/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직접 배출하는 경우
범주(2) : 외부의 에너지원을 사용함에 따라 간접 배출하는 경우
범주(3) : 기업의 가치사슬 전 과정에서 간접 배출하는 경우
자동차 공장을 떠올려 보자. 내연기관 자동차를 생산하면서 공장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범주(1)에 해당한다. 공장을 돌리려면 전기가 필요하다. 석탄이나 원자력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 때 생성되는 온실가스가 범주(2)다.
자동차는 2만 개가 넘는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고, 수많은 납품업체가 공장을 돌려 부품을 생산한다(업스트림). 완성된 차가 소비자에게 전달되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내연기관 자동차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며, 매번 주행할 때마다 가스가 발생한다(다운스트림). 이 모든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이 범주(3)에 해당한다.

▲현대자동차 온실가스 배출량 (2021∼2023)2024 현대자동차 지속가능보고서 / 기자 재작성 ⓒ 현대자동차
위 표는 현대자동차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나타낸 것이다. 'tCO2'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톤(ton) 단위로 표시한 것이고, 'tCO2-eq'는 메탄 등 다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이산화탄소 기준으로 환산한 값이다. 참고로 온실가스 1톤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승용차로 8번 왕복(800km)할 때 배출되는 양이다.
범주(1)과 범주(2)에서 배출되는 양보다 범주(3)에서 배출되는 양이 압도적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2023년을 기준으로 보면, 범주(3)이 범주(1)과 범주(2)를 합(+)한 양보다 62배나 많다. 1억 4천만 톤 이상의 온실가스를 범주(3)에서 배출했다. 이 수치는 추정일 뿐,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아래 표는 범주(3)의 항목별 배출량을 나열한 것이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이 '제품 사용' 항목이다. 자동차를 구매한 소비자가 평균 20만km를 운행한다고 가정하고 1년 동안 판매된 차에서 발생한 양을 추정한 것인데. 전체(범주 3)의 8할에 이를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화석연료를 태우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환경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2023년도 현대자동차 주식회사 Scope 3 온실가스 배출 요약2024 현대자동차 지속가능보고서 ⓒ 현대자동차
온실가스 규약(GHG Protocol)은 범주(3)에 해당하는 사업을 총 15개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 중 15번째 항목이 투자(Investments)다. 은행, 보험회사, 투자회사 등 금융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회사와 기관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금융회사와 온실가스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깊은 관련이 있다. 금융은 탄소 저감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은행이 석탄 발전소를 세우는 사업에 돈을 빌려주면 지구를 망치지만, 풍력 터빈을 세우는 일에 투입되면 지구를 살린다. 고탄소에서 저탄소로, 파괴에서 보전으로 돈이 흘러가는 방향을 바꾸면 망가지는 지구를 회복시킬 수 있다.
금융회사가 대출이나 투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유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일컬어 금융배출량(financed emissions)이라고 부른다. '과거형'이 붙은 이유는 배출된 온실가스가 금융 지원의 결과로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어느 만큼 '유발'하고 있을까.
한국은행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금융배출량은 1.57억 톤 수준(2023년 기준)인 걸로 추정된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특수은행이 8천만 톤으로 약 절반(50.8%)을 차지하고 있고, 시중은행이 6천6백만 톤으로 44.2%를, 지방은행이 1천만 톤으로 6.9%를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은행 금융배출량 현황 / 기자 재편집최근 국내 은행의 금융배출량 관리 현황 및 정책적 시사점 ⓒ 한국은행
범주(1)+범주(2)만 놓고 보더라도, 국내 은행이 유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할을 상회(上廻)한다. 2019년∼2023년간 추이(오른쪽)를 살펴보면, 금융배출량 비중이 20% 선에서 박스권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은행들이 탄소 저감에 얼마나 미온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35% 이상 감축하는 것을 국가 목표(NDC)로 삼고 있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현재의 추세가 이어지면 은행들이 설정한 2030년 감축 목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2023년 금융배출량이 다소 줄어든 것도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 때문이지 은행의 감축 노력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2018년∼2022년 사이, 우리나라 5대 시중은행이 벌어들인 이자수익은 235조 5436억 원에 달한다(2023.3/MBC PD수첩). 영업이익의 85%를 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로 번 것이다. 지금까지는 정부의 과호보 속에, 차주가 빌린 돈으로 무슨 일은 하든 관여치 않고 이자 장사를 해왔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금융배출량 공시가 의무화되면, 은행들의 '생태 기여도'가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평균치에 미달하는 곳은 해외 사업의 기회를 잃게 될 것이고, 평판 위험도 훨씬 커질 것이다. 이 기준 하나로, 좋은 은행과 나쁜 은행을 판별할 수 있는 시대가 우리 앞에 와 있다.
덧붙이는 글 | 문진수 기자는 사회적금융연구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