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근무하는 지역의 한 학교 바로 옆 공원에 씀바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비슷하게 생긴 고들빼기꽃도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물이나 김치로만 알고 있을 뿐, 씀바귀와 고들빼기를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흙을 밟을 일이 별로 없는 아이들은 말할 나위도 없죠. 글과 사진을 통해서나마 생태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이 기사를 썼습니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Journeys are the midwives of thought)."라는 말이 있습니다.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는 것보다 배나 기차, 자동차를 타고 움직이면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고 자아 성찰도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움직이는 속도도 중요합니다. 자동차 안에서는 안 보이던 것들이 자전거를 타면 보이고, 자전거를 타며 그냥 지나친 풍경도 걷다 보면 보이기 마련입니다. '느림의 미학'입니다.
지하철이나 버스, 자동차를 타고 학교 또는 학원에 가는 아이들은 봄꽃을 제대로 감상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밭에서 자라는 대파와 마늘을 구별하지 못해도 이상할 게 없지요. 어른 중에도 매화, 벚꽃, 살구꽃을 정확히 구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피는 시기와 꽃의 색깔, 모양이 다 비슷하거든요. 콘크리트 빌딩 숲에서 '생태 감수성'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꽃구경하기 좋은 날씨이니 어디론가 떠나보는 게 어떨까요. 오늘은 사월 하순이나 오월 초순이면 산이나 들, 혹은 도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봄꽃 중에서 헷갈리기 쉬운 여덟 가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걸 꼭 알아야 하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뭐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입니다. 나태주 시인이 '풀꽃'이란 시에서 통찰한 것처럼, 자세히 보아야 더 예쁘고 사랑스러우니까요.
산수유꽃 vs. 생강나무꽃

▲산수유꽃지난 3월 대전 내동의 한 주택 앞마당에 핀 노란 산수유 ⓒ 신정섭
독자님들의 사기가 꺾이지 않도록 난도가 낮은 것부터 말씀드릴게요. 봄의 전령 영춘화(迎春花)가 질 무렵 노랗게 피어나는 산수유꽃은 다 아시죠? 그런데 산수유와 비슷하게 생긴 생강나무꽃을 아시는 분은 드문 것 같습니다.
생강나무꽃은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에 등장하는데요. 읽으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동백꽃이 왜 노랗지?' 이렇게 생각하셨을 겁니다.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김유정의 동백꽃 중에서)
생강나무꽃은 작은 꽃이 하나씩 매달려 피는 산수유와는 달리, 꽃이 가지에 바짝 붙어 주먹을 쥔 모양처럼 몽글몽글 핍니다.

▲생강나무꽃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도 나오는 노란 생강나무꽃 ⓒ 신정섭
어린 가지나 잎을 잘라 비비면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해서 '생강나무'라 불린다고 하는데요. 동백꽃은 생강나무꽃의 강원도 방언입니다. 요즘은 강원도가 아니어도 산에서 어렵지 않게 생강나무꽃을 볼 수 있습니다.
진달래꽃 vs. 철쭉꽃

▲진달래꽃사월에 높은 산에 오르면 볼 수 있는 연분홍 진달래꽃 ⓒ 신정섭
진달래는 산에 피고, 철쭉은 들에 핀다고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산에서 두 꽃을 동시에 만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산철쭉을 보러 지리산 바래봉이나 황매산 군락지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산에서 주로 자라는 진달래와 달리 철쭉은 산과 들을 가리지 않으며, 요즘은 도심의 공원 등에서도 아주 흔하게 보입니다. 개량종도 많지요.
진달래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데 반해, 철쭉은 보통 꽃과 잎이 함께 납니다. 진달래꽃이 철쭉꽃에 비해 좀 더 이른 시기에 피지만, 요즘은 기후 위기로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철쭉꽃산이나 들, 혹은 공원 등에 흔히 피는 진분홍 철쭉꽃 ⓒ 신정섭
물론, 지역마다 다르기도 하고요. 진달래꽃은 대체로 보라색과 가까운 연분홍빛을 띠고, 철쭉꽃은 좀 더 색깔이 짙습니다(일부 개량종은 예외). 색깔로만 구별이 잘 안되시면 꽃잎을 보세요. 철쭉꽃은 진달래꽃보다 꽃잎이 더 크고, 좁쌀 모양의 작은 반점이 상대적으로 더 많습니다.
씀바귀꽃 vs. 고들빼기꽃
이제 난도가 조금 높은 봄꽃에 도전해 볼까요? 주인공은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씀바귀와 고들빼기입니다.
둘 다 노란 꽃을 피우는데, 언뜻 보면 그 꽃이 그 꽃인 것 같아 구별이 잘 안 됩니다. 민들레가 품고 있던 꽃씨를 멀리 시집 보낼 무렵, 난데없이 씀바귀꽃이 등장합니다. 고들빼기꽃은 사월에도 더러 보입니다만 주로 오월에, 씀바귀꽃보다 다소 늦게 핍니다.

▲씀바귀꽃대전의 한 고등학교 인근 공원에 핀 연노랑 씀바귀꽃 ⓒ 신정섭
제가 근무하는 학교 바로 옆 공원에도 씀바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눈길을 주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며칠 전 아침에는 출근하다가 인근 초등학교 앞마당에 핀 고들빼기꽃을 보았습니다. 둘의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가장 손쉬운 구별법은, 꽃 수술의 색깔을 비교해보는 것입니다. 씀바귀꽃은 꽃 한가운데 검은빛이 돌고, 고들빼기꽃은 온통 노란색입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고들빼기꽃손쉬운 구별법은, 꽃 수술의 색깔을 비교해보는 것입니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 앞마당에 핀 노란 고들빼기꽃. 가운데가 온통 노란색입니다. ⓒ 신정섭
유채꽃 vs. 갓꽃
가장 난도가 높은 것은 유채꽃과 갓꽃의 구별입니다. 요즘은 지자체마다 축제를 열 목적으로 강이나 하천 둔치 등에 일부러 심기도 합니다.

▲유채꽃밭강경에서 세도로 넘어가는 황산대교 아래에 펼쳐진 드넓은 유채꽃밭 ⓒ 신정섭
저는 지난 주말 강경에서 세도로 넘어가는 황산대교 아래에서 펼쳐진 유채꽃 축제에 잠깐 다녀왔는데요. 노란 유채꽃이 넘실대는 들판은 보기만 해도 싱그럽습니다. 유채꽃 유채로 기름을 짜기도 하고, 김치를 담그거나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죠.
그런데 노란 갓꽃이 유채꽃과 똑 닮았습니다. 아래 사진의 왼쪽과 오른쪽 중 어느 게 유채꽃일까요? 동전 던지기를 할 수도 없고, 아주 난감하실 텐데요.

▲유채꽃 vs. 갓꽃왼쪽과 오른쪽 중 어느 것이 유채꽃일까요? ⓒ 신정섭
아마도 꽃의 생김새만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그나마 구별하는 방법이 있는데요. 꽃잎끼리 붙어 있으면 유채꽃, 꽃잎 사이에 틈이 있으면 갓꽃일 확률이 높습니다. 멀리서는 알 수가 없고, 아주 가까이에서 살펴봐야 합니다. 정답은 왼쪽, 왼쪽이 유채꽃입니다.
그런데 잎사귀를 보면 쉽게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유채꽃은 잎자루가 줄기를 감싸고 있지만, 갓꽃은 잎자루에 잎이 붙어 나온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갓은 잎의 가장자리가 거칠고 톱니바퀴 모양인데, 유채는 잎이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이제 유채꽃과 갓꽃이 어떻게 다른지, 어디 가서 알은체하셔도 될 것 같네요.
부추꽃이 이렇게 예쁘다니

▲부추꽃몇해 전에 대전 내동의 우리 집 작은 텃밭에 피었던 하얀 부추꽃 ⓒ 신정섭
마지막으로, 우리 집 마당에 핀 부추꽃을 보여드릴게요. 요건 비교 대상이 없으니 긴장 안 하셔도 됩니다.
올해는 아직 꽃이 피지 않아서, 부득이 몇 년 전에 찍어두었던 사진을 올립니다. 정말 예쁘지 않나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더 사랑스럽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집 앞마당에, 마당이 없으면 아파트 베란다에 부추 한 번 심어보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