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프로스퀘어'로 이름을 바꾼 시선바로세움3차 건물. ⓒ 김대근 시선RDI 대표 제공
1.인지대 90,366,900원(2025. 3. 10)
1.2025. 3. 10.자 보정명령을 취소하고, 이 사건 2025. 2. 20.자 항소장에 대하여 인지대 310,500원 (중략) 납부하시기 바랍니다.(2025. 3. 21)
위와 아래는 서울중앙지법 제30민사부(합의)가 두산중공업(2022년 두산에너빌리티로 사명 변경)과 소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시선RDI와 김대근 대표에게 내린 '보정명령(補正命令)'이다. 보정명령이란 법원이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에게 부족하거나 잘못한 부분을 보충하거나 고치라고 내리는 명령으로 불응하면 재판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사건의 인지대가 9036만여 원에서 31만여 원으로 대폭 삭감됐다. 인지대는 소장(민사·행정·가사·특허소송)을 제출할 때 법원에 납부해야 하는 비용으로 소송의 종류와 청구금액에 따라 그 액수가 달라진다. 그런데 왜 1억 원에 가까운 인지대가 1차 보정명령을 내린 지 11일 만에 31만여 원으로 대폭 삭감됐을까?
등기 무효 논란에도 소유권은 사모펀드에 넘어가

▲시선바로세움3차(현 '에이프로스퀘어') 상량식에 참석한 박영수 전 특검(오른쪽에서 네 번째). ⓒ 김대근 시선RDI 대표 제공
서울 강남 교보타워사거리 인근에 위치한 15층짜리 건물 '에이프로스퀘어'. 지난 2011년 시행사인 시선RDI가 준공한 건물로 원래 이름은 '시선바로세움3차'였다. '바른 건축물'을 지향한 김대근 시선RDI 대표의 철학이 담겨 있는 건물명이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일가 회사인 '정강'이 50억 원을 출자한 사모펀드(엠플러스사모부동산투자신탁 제9호)가 소유한 적이 있어 한때 '우병우빌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준공 직후 2600억 원대였던 건물 가치는 현재 4000억 원대(호가)로 크게 올랐다.
하지만 준공 이후 건물 소유주는 시선RDI(시행사)에서 더케이(시공사였던 두산중공업의 특수목적법인), 엠플러스사모부동산투자신탁 제9호(사모펀드), 마스턴 49호(사모펀드), JR 32호(사모펀드)로 계속 바뀌었다. 이에 따라 수탁사(명의상 소유주)도 한국자산신탁에서 한국증권금융, 하나은행, 우리은행으로 교체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소유주와 수탁사가 계속 바뀌었는데도 매우 이례적으로 모든 매매계약에서 계약금은 '0원'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원래 소유주인 시선RDI는 지난 10여년 동안 시공사(두산중공업), 수탁사(한국자산신탁), 금융권(하나은행, 우리은행) 등을 상대로 자신의 소유권을 회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소송을 벌여오고 있다. 소송의 핵심 쟁점은 '소유권 보존등기'의 법적 정당성 여부다. 소유권 보존등기는 신축 아파트나 신축 단독주택 등에 자신의 소유권을 처음으로 등록하는 것으로 '최초 소유자'를 명시하기 위한 절차다. 사람으로 치면 '출생신고서'와 같다.
시선RDI측은 사람의 출생신고서와 같은 소유권 보존등기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후 진행된 모든 소유권 이전등기는 무효라고 주장해왔다. (1) 해당 건물이 집합건물로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존등기가 이루어졌고 (2)법원에서 수리된 보존등기가 건축물대장과 일치하지 않으며 (3) 등기를 접수한 법무사가 시선RDI와 대리업무를 계약한 사람이 아니어서 부동산등기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각각 부연설명하면 이렇다.
(1) 건물의 소유권 보존등기는 2011년 2월 24일 서울중앙지법 등기과에 접수됐는데, 등기 당시에는 벽체 경계와 바닥 경계 등 건물내부 공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2) 2011년 2월 8일 서울 서초구청에 접수된 건축물대장에는 지하 5층~지상 15층 사이 각 층의 구분과 층별 업무시설, 제1종근린생활시설 등이 간략하게 기록돼 있지만 보존등기시 등기부등본에는 각층 사무실 호수까지 모두 기록돼 있다.
(3) A법무사가 시선RDI 대리인 자격으로 서울중앙지법 등기과에 소유권 보존등기를 접수했는데 그는 시선RDI와 대리업무를 계약한 적이 없고, 시공사인 두산중공업이 가지고 있던 시행사 인감을 그에게 줘서 임의로 등기를 했다.
특히 등기관들이 몇 차례 진행한 소유권 이전등기 신청에서 11회에 걸쳐 각하 결정을 내렸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이는 그만큼 등기 절차에 하자가 있었음을 방증한다. 부동산등기법 제29조(신청의 각하)에는 '신청정보 또는 등기기록의 부동산의 표시가 토지대장·임야대장 또는 건축물대장과 일치하지 아니한 경우 등기관이 이를 각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소유권 이전등기가 돼 소유권은 앞에서 언급한 시공사와 사모펀드들에 넘어갔다.
재심까지 청구했지만 패소... "충분한 증거들에 대해 판단하지 않아"

▲10년 이상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과 소유권 분쟁을 벌여온 김대근 시선RDI 대표. ⓒ 김대근 시선RDI 대표 제공
시선RDI가 2011년부터 시작한 소송(신탁재산처분 금지 및 담보신탁 무효 확인 소송, 우선수익자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대법원은 두산중공업의 손을 들어줬다(2014년 12월). 특히 시선RDI의 소송에 '대장동 50억 클럽' 멤버인 박영수 전 특검과 권순일 전 대법관이 관련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매일경제>, <서울경제TV>, <주간조선>, <오마이TV>, <일요시사> 등에서 집중보도하기도 했다. 박영수 전 특검은 시선RDI측 변호를 맡아 50억 원의 성공보수 등을 요구하다 갑자기 사건에서 손을 뗐고, 권순일 전 대법관은 두산중공업의 손을 들어준 2014년 대법원 판결의 주심이었다.
하지만 시선RDI는 대법원 판결 5년 뒤인 2019년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에 재심의 1심 재판부는 "재심 이유가 재심 대상 1심과 2심 판결에 공통되어 있으므로 이 사건을 2심으로 이송한다"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재심의 2심 재판부는 재심 청구를 각하했다(2021년).
특히 재심의 2심 판결이 나기 전, 시선RDI가 두산중공업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을 검찰에 고소했다가 재항고한 사건이 2년 동안 계류되고 있었는데 박상옥 대법관이 퇴임 1주일을 남기고 재항고를 기각했다. 박 대법관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말석 검사로 수사에 참여했고, 공교롭게도 박영수 전 특검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퇴임한 이후에는 박 전 특검이 설립한 법무법인 '산호'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했다.
시선RDI측은 "재심의 2심 재판부가 재심의 1심에서 '증거들이 방대하고 충분하다'고 판단한 증거들에 대해 전혀 판단하지 않았다"라며 "박상옥 대법관이 퇴임 1주일 앞두고 기각한 결정문을 두산중공업이 재심의 2심 재판에 제출해 그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라고 주장했다.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등기무효 소송... 법원, 인지대 약 1억 원 납부 보정명령

▲서울중앙지법 제30민사합의부는 지난 3월 11일 시선RDI 등에 9036만6900원의 인지대를 납부하라고 보정명령을 내렸다. ⓒ 오마이뉴스
최초 재판과 재심 재판에서 패소했는데도 시선RDI의 소유권 회복 소송은 끝나지 않았다. 시선RDI측은 불법행위로 인한 소유권 이전등기와 관련해 2021년과 2022년 두 차례 손해배상 청구소송(2021가합1495, 2022나16030)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최초 재판과 재심 재판에서 '원인무효 구분등기(하나의 건물을 여러 개의 호수로 나누어 개별등기를 하는 것)와 원인무효 소유권이전등기'에 대해 판결하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해 2024년 2월에 '진정한 등기 명의의 회복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 이전등기 절차 이행'(2024가합1495) 소송을 추가했다. 여기에 소송인지대만 6000만 원이 들어갔다.
시선RDI측은 "우리가 '원인무효 등기 소송'을 먼저 하지 않고 재심을 청구한 데는 이유가 있다"라며 "원인무효 등기소송을 하려면 소송인지대가 아주 많이 필요한데 돈이 없어서 먼저 재심을 청구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시선RDI가 이 소송에서 승소한다면 10여년 만에 건물의 소유주가 바뀔 수 있었다. 하지만 시선RDI는 이 소송에서도 패소했다(2024년 8월). 이에 시선RDI측은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30부)가 소송의 핵심쟁점인 소유권 보존등기와 소유권 이전등기의 무효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채 "시선RDI는 소유주가 아니다"라고 판결했다고 주장하며 '소유권 이전등기 절차 이행 및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2024가합3270)을 새롭게 제기해서(2024년 10월) 재판이 진행중이다. 앞서 기각한 법원(서울중앙지법 제30민사합의부)이 추가재판에서도 원인무효 등기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패소 판결을 내리자 항소했다(서울고등법원 2025나206741).
그런데 법원은 3월 10일 시선RDI의 추가재판에 대한 항소장을 고등법원으로 이송하지 않은 상태에서 9036만6900원의 인지대를 납부하라고 보정명령을 내렸다. 1억 원에 가까운 인지대를 내기 어려운 시선RDI측으로서는 이러한 법원의 보정명령은 재판을 포기하라는 압박과도 같았다. 시선RDI측은 "추가재판은 누락된 판결에 대해 다시 재판받는 것이기 때문에 인지대를 납부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라며 "법관을 상대로 국가배상을 청구하겠다"라고 인지대 납부를 거부했다.
인지대 31만여 원으로 대폭 삭감...법원 담당자 "김 대표에게 불리하게 할 이유 없다"

▲서울중앙지법 제30민사합의부는 지난 3월 21일 시선RDI 등에 31만500원의 인지대를 내라고 보정명령을 내렸다. 약 1억 원의 인지대를 납부하라고 보정명령을 내린 지 11일 만이었다. ⓒ 오마이뉴스
약 1억 원에 가까운 인지대 납부 보정명령을 받은 직후인 3월 13일 김대근 대표는 보정명령을 담당한 법원의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는 돈이 없으면 재판을 받지 말라는 취지이고,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라며 "법원이 우리 재판의 핵심쟁점을 누락해서 10년 이상 억울하게 소송하고 있는 사람을 또 이렇게 만드냐?"라고 항변했다.
이에 이 관계자는 "인지대와 송달료는 (재판부가 아닌) 제가 검토한 사항이다"라며 "항소장이 들어왔을 때 그것에 대한 인지대 부과는 담당재판 참여관인 내가 판단하는 게 맞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가 낸 항소장의 항소취지를 보면 본안 판결 전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처럼 나와 있어서 그 부분을 감안했을 때 그만큼의 인지대를 내야 한다고 판단했다"라며 "(일부러) 김 대표에게 불리하게 (인지대를 책정)할 이유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추가재판이든 아니든 항소장에 대한 인지대는 항소취지를 근거로 결정된다"라며 "인지대에 대해 이의가 있다면 문서로 제출해 달라, 그러면 재판장과 의논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법원은 약 1억 원의 인지대 납부 보정명령을 내린 지 11일 만에 인지대를 31만여 원으로 대폭 삭감하는 추가 보정명령을 내렸다(3월 21일). 이와 관련 담당자는 지난 3월 28일 김대근 대표와의 전화통화에서 "재판장과 상의한 결과 소가(訴價, 소송금액) 산정이 불가한 사건으로 봐서 (소가를) 5000만 원으로 보고 (인지대를 31만여 원으로) 산정한 금액이다"라며 "납부하면 (항소장을) 항소심으로 보내겠다"라고 설명했다.
소 산정이 불가했다면 처음부터 31만여 원만 납부하도록 보정명령을 내려야 맞다. 그랬다면 논란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원고에게 부담스러운 약 1억 원의 인지대를 부과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보정명령을 담당한 법원의 관계자는 4월 25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추가재판에 대한 항소장의 청구 취지를 보고 처음에는 약 1억 원의 인지대를 산정한 것인데 최종적으로는 그것에 대한 해석을 달리해 인지대를 31만여 원으로 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이례적인 상황을 겪은 추가재판 항소심은 서울고등법원 제16민사부에 배당됐고, 오는 6월 26일 첫 변론이 열린다.
서울중앙지법 제6-2민사합의부 판시가 의미하는 것

▲권강수 상가의신 대표이자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지난 4월 1일 <세계비즈>에 기고한 칼럼에서 "그동안 비본질적, 비법률적 근거를 들어 오만하고 황당한 논리로 대기업들에 면죄부를 준 판결을 한 것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라고 일갈했다. ⓒ 세계비즈 홈페이지
한편 시선RDI가 두산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유권 보존등기 및 신탁의 변경등기 무효 확인 청구' 소송에서 법원(서울중앙지법 제6-2민사합의부)은 지난 3월 25일 "원고(시선RDI)는 이 사건 보존등기 및 변경등기의 각 무효 확인을 구하고 있다"라며 "원고로서는 이 사건 소송을 통해 이 사건 건물에 관한 소유권 및 신탁원부상 1순위 우선수익자의 지위를 회복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렇다면 이 사건 건물의 소유자 지위에 있음을 이유로 하여 진정명의회복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의 이행을 구한다거나, 신탁원부상 1순위 우선수익자를 원고로 변경한다는 내용의 등기절차의 이행을 구하는 것이 원고의 목적을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보인다"라고 판시했다.
그동안 시선RDI가 진행해 온 등기 무효 확인 소송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법원의 판단으로, 소유권과 1순위 우선수익자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을 시선RDI에 제시해준 판시로 풀이된다. 즉 시선RDI가 건물의 진정한 소유자로서 원인무효 등기에 대해 확인 소송할 필요없이 현재 소유자(수탁자)인 우리은행을 상대로 직접 소유권 반환 소송을 하거나, 우선수익자를 두산중공업에 시선RDI로 변경하는 소송을 진행하라는 주문인 것이다.
권강수 상가의신 대표이자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지난 4월 1일 <세계비즈>(<세계일보> 자매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러한 법원의 판시를 언급한 뒤 "거물급 법조인과 대기업, 국가(관공서) 등이 끈끈하게 얽힌 이 사건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라며 "그동안 비본질적, 비법률적 근거를 들어 오만하고 황당한 논리로 대기업들에 면죄부를 준 판결을 한 것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