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체포구속' '사회대개혁' '개방농정 철폐' 등을 요구하며 서울로 온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소속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이 지난해 12월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부근인 한강진역에 도착하자 미리 와 있던 시민들이 환영하고 있다. ⓒ 권우성
스콘(여, 30, 기록학 연구, 서울)을 처음 만난 곳은 남태령 아카이빙 심포지엄에서였다. 내 자리에 인터뷰 대상자를 찾는다는 안내문을 세워놓았더니 앞에 앉아있던 스콘이 뒤돌아 한참을 뚫어지게 들여다봤다. 그러곤 수줍게 명함을 내밀었다.
계엄이 터지자마자 그는 12.3 사태 아카이빙을 위한 모임에 참여해 집회에서 사진을 찍고 모으는 자원봉사를 해오고 있었다. 그는 기록연구자로서 일단은 기록을 모으는 일이 시급하다고 했다.
"우선 자료를 최대한 모아놓아야 나중에 후속연구를 통해 다양한 판단과 분석이 이루어지거든요. 남태령 관련 학술회가 매년 이루어지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농민문제에서 시작해서 기후위기, 농민수당 등 매년 다른 주제로 다양하게 펼쳐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1차 남태령에서 연대 메시지가 날아왔을 때 그는 광화문에서 기록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다음날 출근 때문에 현장에 갈 수는 없었지만 그는 몇 가지 물품을 보내고 밤새 라이브를 켜놓고 뒤척였다고 한다.
2차 남태령 때도 라이브를 켜두고 두 시간에 한 번씩 깨서 별일 없는지 확인하고 무사하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경찰이 트랙터를 끌고 가버렸고 농민들과 시민들을 난폭하게 끌어내고 있었다. 그는 하루 종일 회사에서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이번에도 연대의 승리였다. 남태령은 두 번이나 상상을 초월한 연대로 공권력을 이긴 셈이다.
"한국인들은 비상시에 물품을 모아 연대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죠. 그 옛날부터 국채보상운동이나 금 모으기, 품앗이 등등. 근데 남태령에서 시작된 연대는 정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번져갔어요."
남태령은 상상에서나 가능할 줄 알았던 존중과 평화의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제 친구는 박근혜 탄핵 때 여성혐오발언이 너무 심해서 집회에 앉아있는 게 고통스럽다고 했어요. 그걸 막을 수 없다는 게 더 힘들었고요. 이번에도 김건희 씨에 대한 혐오발언이 나올 거라 예상했는데, 남태령에서 그런 분위기를 완전히 없애버렸죠."
집회 초기에는 페미니스트나 소수자에 대한 비난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남태령에 모인 이들은 그 누구에게라도 혐오발언하는 것을 참지 않았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당당히 말하고 다른 이들의 소수자성을 인정했다. 그들의 노력은 광장규칙이 되었고, 이내 다른 광장으로도 퍼져나갔다.
그는 당시의 감동이 담긴 엑스(트위터)의 글을 북마크 해두고 힘들 때마다 들여다본다. 나는 그 글이 뭔지 묻지 않았다. 내게도 그런 북마크가 몇 개 있으니까. 트위터 유저라면 그날 북마크해둔 글이 한두 개쯤 있으리라.

▲'다시 만날 세계를 쟁취했다' 현수막과 함께 있던 '응원봉과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 ⓒ 스콘
그는 평소 뮤지컬을 보고, 맛있는 차를 마시고, 게임과 소설을 즐기고, 역사 특히 불교미술 같은 문화유산을 사랑한다. 그런데 계엄 이후로 그것들을 마음 편히 즐길 수가 없는 상황이다. 역사소설은 사놓고도 못 읽고 있고, 게임은 성희롱과 사상검증을 요구하는 이들 때문에 그만두게 되었다. 무엇보다 대형산불로 수많은 절들이 전소된 것이 가슴 저리게 안타깝다. 당시 그는 비가 내리기만 간절히 기도했다.
"차를 마시면서부터 기후위기에 대해 관심을 가졌어요. 그런데 부끄럽게도 재배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못했어요."
그는 양곡법이 농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면서 식량주권을 실현하자는 내용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고, 자신이 농민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기후위기에 대한 후원을 하고 동물권 등에 관심을 가졌으면서 정작 농민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니. 그는 농민에 대해서도 공부해 보기로 마음먹고 관련한 논문을 찾아봤다. 하지만 원하는 내용이 잘 검색되지 않았다. 아직 키워드조차 감을 잡지 못한 거다. 그는 어떻게든 더 공부하고 응원할 방법을 찾을 생각이다.
"덕후들이 어떤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가졌는지 설문해보고 싶어요."
덕후생활 10년이 넘었다는 그는 깃발만 보더라도 덕질 관련한 것이 많아서 누군가 이에 대한 논문을 써주면 좋겠다고 한다. 그들은 취미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고 정보를 공유하는 방법을 잘 알았기 때문에 광장을 움직일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런 현상은 딱히 덕질뿐만 아니라 세대의 특성과 겹친 것 같다고도 했다.
"세월호와 강남역 살인사건을 겪은 세대잖아요. 우리는 도저히 두 사건을 겪기 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그가 대학교 1학년 때 세월호가 일어났다. 벚꽃이 피는 걸 보면서 중간고사를 치렀는데 너무 많은 생명이 벚꽃 지듯이 스러지는 걸 허망하게 지켜봐야 했다. 2년 뒤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그는 자연스럽게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그들은 윤석열 정권과 '갈라치기 이준석'의 등장으로 분노한 상태였고 언제든 뛰쳐나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실 지난 대선 때부터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계엄소식을 들었을 때 올 게 왔구나 싶었다. 예상보다 훨씬 말도 안 되는 방식이긴 했지만. 밤새 단톡방이 울렸다.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이렇게 망가뜨릴 수 있냐고 친구들과 분통을 터트렸다. 그리고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그는 페미니스트가 되면서부터 몇 가지 실천원칙을 세워두었다. 시민단체와 SNS 등에서 자세한 정보를 찾아보고, 비상대책회의를 팔로우해서 새로운 소식을 듣고, 후원금을 보내는 것. 일을 하면서부터는 시민단체의 후원을 더 열심히(많이 늘리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열심히' 모아서) 늘리고 라이브를 챙겨본다.

▲스콘이 좋아하는 것들(차 관련용품, 뮤지컬 OST CD, 슬로건 등) ⓒ 조용미
우리가 원하는 사회로 한 발짝이라도 가려면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바뀌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노동계를 인정해야 긴 노동시간, 노동환경, 하청노동자 문제 등이 하나씩 풀려갈 수 있다. 이번 광장을 통해 민주노총을 알린 건 그나마 다행이다. 더불어 장애인 이동권과 차별금지법, 디지털 성폭력 문제도 반드시 해결해야 "다양성이 포용되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화교 분들이에요. 중국혐오가 심해져서 언제 테러가 일어날지 몰라요. 이들을 지켜내지 않으면 혐오라는 현상이 우리 사회에 더욱더 번져갈 게 분명해요."
그가 가장 걱정하는 건 어린아이들이다. 온라인에서 게임이나 인터넷을 통해 알게 모르게 파고드는 혐오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근본적이고 원론적으로는 대형 플랫폼이 자정할 수 있는 법령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알아서 할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더 열심히 문제를 가시화하고, 아이들과 대화하고 보호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소모되고 지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챙기고 보듬어야 건전한 몸과 정신으로 계속해서 연대하고 투쟁해 나갈 수 있다.
"윤석열이 탄핵된다고 사회가 마법처럼 좋아지지 않잖아요. 장기전에 대비해서 각자 잘 먹고 잘 놀고 건강한 일상을 영위해야 해요. 그래서 친구와 서로 안부를 챙기기로 했어요."
계엄 사태가 길어지면서 스콘은 몸으로 이상증상이 나타났다. 피부에 염증이 생기더니 낫지 않았다. 불안감과 압박감으로 숨쉬기가 힘든 날도 있었다. 2차 남태령 라이브를 보던 날도 그랬다. 한창 라이브를 보다가 산불 소식을 듣고 꺼멓게 타버린 사진을 보니 발밑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파면 선고가 난 뒤에는 과로한 것처럼 몸이 아팠다. 잠이 쏟아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변 친구들도 아픈 걸 보면 다들 긴장이 풀리면서 피로가 몰려왔던 것 같다. 다행히 몸이 나으면서 피부도 좋아지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서점에 가서 그동안 사고 싶었던 책을 샀다. 그는 특별한 날, 무언가를 해낸 날에 기념으로 책을 산다. 이번에도 그는 기념품을 갖기로 하고 노동 관련 책, 숲에 관한 책, 여성 관련 책 등 분야별로 샀다. 그 주말에는 집회에 갔다가 '다시 만날 세계를 쟁취했다'는 현수막을 보고 조금 울었다. 그리고 며칠 뒤, 미뤄두었던 여행을 가서 한옥을 실컷 봤다.
"하루 종일 뉴스 안 보고, 좋은 차 마시고, 내일은 뭐 할까 기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하지만 그는 요즘 다시 부채감과 불안감이 생긴다. 아직 내란청산을 못했는데 언론의 관심은 대선으로 향하고, 노동자와 장애인은 다시 끌려가는데 광장에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이번에도 대선은 광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그럴 때마다 그는 후원을 늘린다. 제주 4.3과 4.16 세월호, 4.19 혁명, 4.20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애도하고 소액이라도 꼼꼼히 챙긴다. 왜 그렇게 후원에 진심이냐고 물었더니 그가 말했다.
"후원하고 응원하는 것으로라도 앞선 사람들에게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어요.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연결되어 있잖아요.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걸 절로 알게 되었어요. 그 뒤에 코로나를 겪으면서 누군가의 일상이 망가지면 같이 망가진다는 걸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게 되었죠."
앞으로는 대통령기록물 제도에 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다. 학회 내에서도 이번 기회에 기록에 관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 관련 의제를 따라가려고 애쓰는 중이다. 다행히 이번 집회 관련한 기록 생산작업은 얼추 마무리되었고 후속작업만 남았다.
"5월 연휴에는 진짜로 푹 쉴 거예요. 제발 그때까지는 새로운 이슈가 안 생겼으면 좋겠어요."
전 국민이 과로사할 지경이다. 연휴까지라도 좀 별일 없이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