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피해지원법'에 따라 추진되는 4.16생명안전공원이 세월호참사 열한 번째 봄을 맞는 2025년 본격적인 조성 공사를 시작합니다. 계획대로라면 세월호참사 13주기인 2027년 봄에 개관합니다. 생명존중·안전사회를 만들어갈 이정표가 될 4.16생명안전공원이 잘 만들어질 수 있도록 시민들의 마음을 담아 매월 공원에 대한 다양한 분들의 글을 연재합니다.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식4월 16일 오후 3시,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식이 진행됐다. ⓒ 4·16재단
벌써 11년이 지났다. 그해 봄날은 하루하루가 유난히 추웠다. 실제로 기온이 낮았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검고 차가운 바다 물의 한기가 아직까지 우리 몸에 각인되어 남아 있다. 거리에선 봄바람에 벚꽃 잎이 휘날리고 있었지만 우리 마음속엔 작은 온기조차 찾아올 여유가 없었다.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트라우마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그 어떠한 언어적 표현도 허락하지 않았다. 참사의 순간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도, 희생자를 추모할 수 있는 언어도,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는 그 어떤 말도 무의미할 뿐이었다. 얼마가 지나야 이 참담한 사건을 인간의 언어로 재현할 수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해 4월의 봄을 유난스레 잔인하게 만들었던 것은 못난 사람들 때문이었다. 이 불행한 사건에 더 큰 상처를 내려는 불온한 집단의 도발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놓고 기억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사건을 이야기할 것인지 결정하는 한판 싸움이다. 관념적 기억을 소통 가능한 언어로 재현해야 집단기억에 기반한 투쟁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어떻게든 재현의 언어를 사용해야 했지만 그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불완전한 언어의 힘으로 4.16세월호참사를 설명하거나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가 4.16세월호참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1년이 지난 후 우리는 '아이들의 방'을 바라보며 변하지 않은 세상을 향해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1년 동안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금요일엔 돌아오겠다'며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는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왜 그렇게 됐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말해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되돌아 올 뿐이다. 여전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이들의 방' 전시 서문 중에서)
전시는 말을 한다. 전시는 언어와 같아서 문화적 방식으로 관람객에게 말을 건다. 하지만 전시는 말이나 글과 달라서 시각 미디어의 힘을 빌려 감각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전시장을 채우는 대부분의 콘텐츠가 사진이거나 그림이거나 영상인 이유다. 조각 같은 오브제나 제목, 설명 글 같은 텍스트도 시각화될 수 있어야 전시장 안에 들어올 수 있다. 말을 하기 위해선 문법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전시는 사진과 그림, 영상, 텍스트, 오브제들을 공간 안에 시각적으로 펼쳐 놓는 다층적 문법 체계를 사용한다. 전시장 안에서 사진은 영상과 이어지고, 텍스트는 그림으로 연결되면서 문법적으로 완성된다.

▲4.16생명안전공원 공사 현장세월호참사 11주기를 기점으로 4.16생명안전공원의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됐다. ⓒ 4·16재단
4.16세월호참사 1주기 기억 전시 '아이들의 방'에서 선택한 시각 콘텐츠는 희생된 아이들이 쓰던 작은 방 '사진'과 그들이 살아 있을 때 부모에게 했던 '말'들이었다. 모두 4.16기억저장소에서 1년 동안 수집한 기록들이다. 두 종류의 기록은 전시장 안에서 희생 학생들이 살아 있었을 때를 이야기했다. 아직 참사가 일어나기 전, 그래서 세상이 차갑고 험해지기 전의 일상적인 모습과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전시가 따뜻해 보였던 이유이다. 이렇게 '아이들의 방' 전시는 아이들의 과거를 보여주면서 세월호 참사의 현재적 의미를 관람객들에게 질문했다. 아이들의 방도 그대로 있고 아이들의 말도 생생한데, 왜 지금 여기에 그 아이들만 없냐고 말이다.
"엄마, 오래오래 죽을 때까지 같이 살자" - 2반 김주희
"엄마, 벚꽃이 너무 아름다워요. 내년에도 꽃길 산책하자" - 7반 박성복
('아이들의 방' 전시 텍스트 중에서)
'아이들의 방' 전시가 세상에 말을 건지 이제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지난 2월 안산 화랑유원지에서는 4.16생명안전공원 건립 공사가 시작되었다. 아마도 이곳에서 가장 중요하고 대중적인 공간은 세상 사람들에게 4.16세월호참사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전시공간이 될 것이다. '아이들의 방' 전시가 4.16세월호참사 후 1년의 시간 동안 변하지 않은 세상에 대해 질문하는 공간이었다면 4.16생명안전공원의 전시는 지난 11년 동안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무엇을 기억해야할지 이야기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곳에 희생자에 대한 추모의 마음과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다짐이 함께 담겨질 때 시대적 의미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아이들의 방' 전시가 그랬던 것처럼 매우 사회적이면서 문화적이며 철학적인 발언일 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4.16생명안전공원 상설 전시에 대해 들려오는 소식은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 이 전시에 4.16세월호참사에 대한 우리의 기억과 안전한 사회를 향한 시민들의 마음을 담아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전시 감독이다. 참사 이후 11년 동안 시민들의 기억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피는 일에서부터 시대정신이 담긴 전시 메시지를 꾸미고 콘텐츠에 반영할 기록물을 선별하는 것까지, 모두 전시 감독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그런데 2021년 '416 생명안전공원 국제설계공모'에서 선정된 전시에 대한 구상과 계획이 설계공모 때 제출한 내용에서 조금도 나아진 게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4.16생명안전공원 상설 전시가 지금까지 방치되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전시 콘텐츠에 대한 기본 구상과 방향을 수립하기 위해 지난 2020년 진행된 '4.16생명안전공원 전시 콘텐츠 계획 수립 용역'은 실패로 끝났다고 본다. 이에 대한 대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4.16생명안전공원 건축설계가 끝날 때까지 설계 책임자와 전시 감독의 업무에 대한 피드백이 있었지만, 그 사이 대안을 마련할 시간은 지나버렸다. 지금 4.16생명안전공원 상설 전시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4.16생명안전공원 공사 현장세월호참사 11주기를 기점으로 4.16생명안전공원의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됐다. ⓒ 4·16재단
이제 얼마 후면 전시 디자인 업체를 선정하는 공공입찰이 시행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관이 가까워질수록 시간에 쫓겨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사업이 진행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그리고 디자인의 힘을 빌려 공간 인테리어가 완성된 후 기록은 화려하고 깔끔한 조명 아래 놓일 것이다. 공공 전시사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런데 이렇게 준비된 4.16생명안전공원 상설 전시가 세상을 향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10년 전 '아이들의 방' 전시는 아이들의 과거를 보여줌으로써 암울했던 당시의 문제적 상황에 딴지를 걸 수 있었다. 전시에 펼쳐졌던 아이들의 방과 아이들의 말은 참사가 있기 전 따뜻했던 봄날을 상징했고,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우리에게 준 고통과 슬픔 그리고 우리가 함께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임에 대해 말을 할 수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의 방'에는 다시 봄이 찾아올 수 있을까. 4.16생명안전공원의 전시는 우리가 앞으로 4.16세월호참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말해 주어야 한다. 깊은 밤, 잠은 오지 않고 걱정만 쌓여간다.
덧붙이는 글 | 생명존중·안전사회를 만들어갈 이정표가 될 4.16생명안전공원이 잘 만들어질 수 있도록 시민 여러분의 마음을 모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