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공항을 반대하는 거리요가시민운동회 기획팀이 1호 운동회로 제2공항에 반대하는 거리 요가를 진행했다. ⓒ 김순애
'제2공항 STOP', '제2공항은 곧 기후재앙', '제주판 4대강 제주제2공항', '새들의 터전을 지켜주세요', '제주에 더 이상은 공항은 필요없어요'라는 손글씨가 적혀진 피켓이 제주시청 벽화광장 한쪽 면에 늘어서 있다.
피켓들 맞은 편에는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요가매트 위에 요가 준비 자세를 취하고 고요히 앉아 있다. '제2공항 반대하는 YOGI모이자' 시민운동회에 참여한 이들이다. 잔잔한 음악과 새들의 지저귐, 버스와 자동차들의 소음,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이들을 감쌌다.
"제주 내 산적한 문제들을 시민들이 유쾌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없을까? 우리의 의견을 피켓과 구호 외에 다른 방식으로 모을 수 없을까? 광장에서 흔들리던 재밌던 깃발과 반짝이던 응원봉처럼 제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상상하다가 기존에 있던 방식이 아닌 굉장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방식이 함께 모였을 때 하나의 주춧돌이 될 거라 믿으면서 오늘 제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제2공항을 반대하는 광장의 요가를 열게 되었다."
본격적인 요가가 시작되기 전 최유리 시민운동회 기획자는 이렇게 행사 취지를 소개했다.
최유리 기획자는 "작년 말에 제2공항 예정지로 새벽에 탐조를 하러 갔다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숱한 새들을 보았다"며 "이런 곳에 제2공항이 세워진다는 것은 조류 충돌이 예기될 수밖에 없고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참가자들에게 건넸다.
이어서 사람들은 문혜영 요가 강사의 설명에 따라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6차선 차도가 바로 인접한 곳이어서 자동차와 버스들의 소리가 요란하게 침범했지만 참여자들은 안내에 따라 자신들의 몸과 호흡에 집중했다.
제주시청은 제주시내에서 가장 붐비는 곳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 제2공항 반대의 의미를 부여하며 진행된 거리 요가에 참여한 이들은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색다르게 시위한 것 같아서 느낌이 새롭다." (청소년)
"부산에서 온 여행자이다. 부산에도 가덕도 신공항 이슈가 있어서 요가를 하면서 가덕도 신공항과 공항 예정 부지에 살고 있는 생명들을 생각했다." (부산 여행자)
"운동이라고 하면 멀게 느껴지는데 일상에서 다양한 활동이 사회운동과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색다른 경험이었다." (노형동 주민)
"피켓들을 보면서 요가를 하는 것은 지금껏 해보지 못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청소년)
"새소리를 들으면서 요가를 했는데 제2공항 부지에 살고 있는 많은 새들을 떠올렸다." (청소년)

▲시민운동회 기획팀과 거리 요가 진행자왼쪽부터 김홍모, 문혜영, 최유리, 강민수, 황용운 ⓒ 김순애
제2공항 예정부지 주민들, 10년 싸움에 고장난 몸과 마음
시민운동회가 끝나자 '제2공항 백지화 도민결의대회'가 바로 옆에서 열렸다. 제2공항을 백지화하자는 결의의 목소리가 드높았다. 도민결의대회에는 제주제2공항이 지어지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지역 주민들의 참여가 많았다. 2015년 제주제2공항 건설 예정부지가 성산이라는 뉴스가 발표되자 마을에 활주로가 들어서거나 소음 피해가 예정된 신산리, 수산리, 난산리 마을은 비상이 걸렸다.
제2공한 반대 성산대책위가 꾸려졌고 마을 사람들은 성산에서 제주도청 앞에서, 제주시청 앞에서 피켓팅을 하고 집회를 하고 천막 농성을 하고 단식을 했다.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60대였던 이들은 70대가 되었고 여기저기 몸에서 고장 신호를 보이기도 했다. 제2공항이 들어서면 삶의 터전을 빼앗겨야 하는 이들의 심정은 절박하다.
이날 결의대회에 참여한 강재표 신산리 마을이장은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 주민들이 10년째 마음 고생, 몸 고생을 해야 하는가?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결정이 주민들과 아무런 의논 없이 진행됐는데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제2공항 백지화 도민결의대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강재표 신산리 마을이장. ⓒ 김순애
2021년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는 공동으로 제주 제2공항 공론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전체 도민 대상 조사에서 반대 의견이 우세하게 나왔다. 국가가 전액 사업비를 지원하는 공항이나 도로 건설과 같은 국책사업의 경우 지역마다 유치하기 위해 안달인 경우가 많기에 이례적인 결과였다. 급격한 개발이 제주의 모습을 망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제주도민들이 위기 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작년 말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당초 환경영향평가에서 조류 충돌 위험이 있었지만 이를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를 검토한 이들 역시 조류 충돌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제2공항의 문제는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온도로 다가온다. 사회의 모든 문제들이 그럴 것이다. 12.3 내란사태 이후 거리와 광장은 다양한 색깔의 응원봉과 그만큼이나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참여자들로 가득 찼다. 탄핵 광장은 각자의 고립된 싸움을 이어가던 이들이 함께 연대하여 투쟁의 경험을 만들어냈다. 분노도 있었지만 콘서트에 참여한 것처럼 시위를 즐기는 유쾌함도 있었다.
시민운동회 기획팀은 "제2공항만 생각하면 분노가 들끓지만 몸을 활용해 유쾌하게 새로운 저항 방식을 실험하는 시민운동회를 열어 분노의 에너지를 시민들과 함께하는 광장 요가로 풀어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저항방식을 실험하겠다는 시민운동회 기획팀이 앞으로 어떤 시민운동을 만들어나갈지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