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벽에 일어나 마음을 정돈하고 시를 쓰는 사람이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시간에 일어나 마음을 가다듬고 묵상을 하고 책을 펼친다. 그리곤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들을 한 줄의 시로 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매일 마음을 다잡는 강한 의지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다. 한데 그걸 매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김계식 시인이다. 매일매일 스스로 담금질하며 시심을 정성스레 가꾸는 그에게 시농(詩農)이라는 말을 붙여본다. 김 시인에게 어울리는 지칭이 아닐까 싶다.
김계식 시인이 서른여섯 번째 시집 <명주실 한 꾸리>를 최근 다시 세상에 내놨다. 서른다섯 번째 시집 <라일락의 향기>를 펴낸 지 여섯 달 만이다. 몇 년에 한 번 내기도 힘든 시집을 매년 연이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 그것은 농부가 매일 아침 일어나 논밭에 나가 작물을 심고 가꾸듯 시인 또한 시의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농부가 농사를 정성껏 짓는 것은 풍성한 결실을 맺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김계식 시인이 매일 시를 짓는 건 무엇 때문일까?

▲책 표지명주실 한 꾸리 ⓒ 인간과 문화사
어떻게 하면
고운 시 한 수 빚어낼 수 있을까
흐르는 세월의 몇 마디와
만만한 공간 몇 폭 움켜쥐는 몸부림
갈고 닦고 꾸미고 달래며
시심 고스란히 뭉뚱그린 함축이 되도록
어르고 달래며 몰래몰래 키워낸
나의 분신들
- '서른다섯 번째 치른 산고' 한 부분
그에게 시는 일상의 기록이요 마음의 기록이다. 매일 일기를 쓰듯 시를 써나가면서 고운 시 한 편 빚고 싶어 한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팔순이 넘은 시인은 누구나 꿈꾸는 고운 분신을 시 속에서 만나고자 한다. 그래서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를 갈고닦고 꾸며서 '고운 시 한 수 빚어낼 수 있을까' 하고 묻는다. 그에게 고운 시란 묻지 않아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곧은 마음으로 곧게 살아가는 마음을 담은 글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처음 눈빛 부딪친 순간
약속 아닌 약속으로 다진 마음
우리 언제까지 간직하며 살기로 해요
손 마주 잡고
짙은 밤하늘 너와 나의 별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린 꿈
우리 오래토록 지켜 살기로 해요
세상 모든 것에 따르는 종말이
우리에게 찾아온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뒷걸음을 칠지언정
뒷모습을 보이는 일 없이 살기로 해요
저 먼 소실점
한 점으로 가물거릴지라도
우리 마음속에 품은 너와 나의 정
고스란히 지켜 안은 채 살기로 해요
언제까지나 이렇게
이렇게…
-'다짐' 전문
삶은 약속의 연속이다. 타인과의 약속, 자신과의 약속. 하루에도 몇 번씩 작은 약속을 하며 다짐의 탑을 쌓아간다.
시인에게 약속은 한 방향을 바라보는 꿈이다. 뒷모습을 보게 하는 부끄러움을 주지 않고 마음속에 품은 너와 나의 정을 안고 언제까지 평범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다. 살아가면서 한결같은 마음을 갖기란 참으로 어렵다.
마음먹기도 어려운데,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런데 시인은 그걸 실행하고 있다. 그런 마음이 나이 듦 속에서도 스스로 풍요롭다고 말하는지 모른다.
좁아진 시야(視野)만큼
약해진 악력(握力)만큼
욕망 덜어내고 얻은 밝은 여백
(중략)
어느 것에도
견주는 일 없이
뿌듯이 끌어안은 내 삶의 풍요
-'풍요' 부분
나이가 들면서 보는 것도 적어지고 손의 힘도 좁아지고 약해진다. 더 갖고자 하는 욕심도 버린다. 인생 해거름에 아쉬워하거나 쓸쓸함을 느끼기보단 혹 모를 욕망을 덜어내고자 한다.
그 대신 덜어낸 욕망의 공간에 여백의 여유를 갖게 된다. 그것이 시인에겐 "어느 것에도 / 견주는 일 없이 / 뿌듯이 끌어안은 내 삶의 풍요"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