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활동과 나 사이, 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혹시 인권활동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거나, 인권활동가는 나와는 상관없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그런데 인권은 바로 나와 우리의 일이에요. 매일 지하철을 타는 일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지요. 우리 일상 곳곳에는 다양한 인권 문제가 숨어 있고, 그 문제를 드러내고 바꾸기 위해 애쓰는 인권활동가들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답니다.
〈착붙: 바로 옆의 인권활동가〉는 인권재단 사람이 '인권활동119' 사업을 통해 지원한, 생생한 인권의 현장과, 그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요. 지금, 바로 옆에서 인권을 지키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 함께 귀 기울여 보세요.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퇴진까지 계속하는 인권영화제'를 준비한 서울인권영화제 소하 활동가를 만나봅니다.

▲안국역 앞 집회에서 브이 포즈를 취하는 서울인권영화제 소하 활동가 ⓒ 인권재단사람
안녕하세요. 소하입니다. 활동명이고요. 한자이름이에요. 거스를 소 강물 하, 친구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멋진 활동명 갖고 싶다고 하니 지어줬어요.
저는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로 일하고 있어요. 재작년에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로 시작해서, 지난해부터는 상임활동가로 일하게 되었어요. 작년에는 26회 영화제를 해서 영화제 업무가 많았는데 올해는 영화제를 진행하지 않아서, 정기상영회 업무나 기타 사무업무를 주로 하고 있어요.
원래는 게임 기획자로 10여 년간 일을 했었는데요. 게임회사는 정리해고가 잦아 그때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장시간 노동으로 건강이 나빠지는 것이 싫었어요. 잠시 쉬며 다른 일을 해보자는 생각을 가졌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제가 나이도 있고 성정체성도 트랜스젠더 여성이어서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없어, 쉬는 기간이 길어졌어요.
마침 친구가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자원활동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전해줬어요. 활동가라는 직업에 대해 선망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활동가를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자원활동가로 지원했어요.
자원활동을 하면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라고 느꼈어요. 보통의 인권단체에서는 한 가지 의제를 중심으로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기 마련인데, 서울인권영화제에서는 여러 다양한 의제를 다루면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매력으로 느껴졌어요. 서울인권영화제는 상영 활동을 통해 많은 대중과 소통하고요, 시민들에게 다양한 인권의제를 알리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 너머의 연대
서울인권영화제는 1996년 첫 인권영화제를 열었어요. 1회 인권영화제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기획되어 시작됐고, 2013년부터 별도로 서울인권영화제로 독립해서 활동했어요. 올해가 첫 영화제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후 인권영화제를 매년 이어오다가, 운영 예산이 부족해 23회부터 격년으로 영화제를 열고 있어요. 지난해에 영화제를 개최했으니 2026년에 27회 영화제를 할 예정입니다.
상영관에서 진행하는 보통의 영화제와 달리, 서울인권영화제는 모두가 아무런 차별 없이 관람할 수 있도록 야외 상영을 주로 해요. 최근에는 대학로 마로니에 등지에서 야외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어요. 모두 정부와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고 시민들의 후원으로 인권영화제를 운영하고 있고, 2016년, 2020년에는 인권재단 사람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기도 했어요.
저희 서울인권영화제는 많은 인권영화제 중에서도 역사가 오래되었는데요. 이름에 '영화제'가 붙다 보니 인권단체인지 눈치를 못 채시는 것 같아요. 사실 상영 활동 외에도 여러 인권운동에 연대 활동도 하는 인권단체예요.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주로 연대활동을 하고 있어요.

▲<퇴진까지 계속하는 인권영화제> 포스터 ⓒ 서울인권영화제
12.3 내란 사태 직후에 서울인권영화제가 인권단체로서 윤석열 퇴진 운동에서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질문했고, 상임활동가 고운님의 아이디어로 '퇴진까지 계속하는 인권영화제'를 기획했어요. 시민으로서 광장에 나가는 것은 당연한데, 영화제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서 매주 집회가 열렸는데, 저희도 바쁘고 시민들도 광장에 나오느라 바쁜 상황에서 오프라인으로 상영회를 열기에는 사람들을 모으기 쉽지 않고, 힘을 분산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고 해서, 많은 관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온라인으로 상영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고자 했어요.
윤석열 퇴진까지 퇴진운동에 힘을 보태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주요 목적이지만, 다양한 인권 의제를 다룬 영화를 상영했어요.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이주민, 반전, 세월호참사, 제주4.3사건 등 다양한 의제의 영화를 상영했었는데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고민들을 다루었어요. 민주주의와 더불어 다양한 인권의제들이 시민들의 관심을 받았으면 했고, 윤석열 퇴진 이후 보다 평등하고 다양한 민주주의 사회가 되도록 보탬이 되고자 했습니다.
인권재단 사람의 '인권활동119 사업'으로 지원 받은 것이 '퇴진까지 계속하는 인권영화제'를 기획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지원신청도 간편한 편이고, 빠르고 간략한 심사로 시국에 맞춰서 영화제를 진행할 수 있었어요. 특히 온라인 상영회를 진행하려면 영화제작자에게 1회 상영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다회차 상영을 조건으로 비용을 지불해서 상영료가 비싸지는데요. 인권활동119 지원 사업 덕분에 오랜기간 여러 작품을 상영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어요. 총 115일 동안 진행했는데요. 상영 기간동안 7000여 명의 시민이 영화제에 방문해주셨고, 19편의 인권영화를 700명 가까운 시민 관객이 봐주셨습니다. 이번 지원 덕분에
역대 최대 기간 동안 진행한 온라인 영화제가 됐답니다!
더 자주, 더 가까이 만나는 인권영화제를 꿈꾸며
앞으로 인권 문제들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 서울인권영화제를 더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제가 반상근으로 일하고 있어서, 생계를 위해 부업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게다가 예산과 인력의 문제로 영화제는 격년으로 개최하고, 상영회를 자주 열지 못하는데요. 서울인권영화제 정기후원이 많이 늘어서 상근직을 하고 싶고요. 가능하다면 매월 상영회를 열고 매년 영화제를 개최하고 싶어요. 현재는 240명 정도의 후원활동가가 함께하고 계세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후원이 2배 이상으로 늘어나야 할 것 같아요! 이 글을 보시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후원이 필요합니다!
'퇴진까지 계속하는 인권영화제' 속 소하님의 추천 영화 - 김소정 감독의 <50cm> |
이 작품은 레즈비언 커플인 은정과 가영의 이야기예요. 가영은 시각 장애가 있는데요. 둘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데 가운데 그려지는 외적, 내적 갈등을 그린 작품이에요. 은정과 가영은 커플이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친한 친구로만 인식되고,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은정이 가영을 도와주는 것으로만 비춰지는, 멋대로 동정하고 오해하는 불편한 상황이 주요 갈등으로 다뤄져요. 중첩된 어려움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결해야 할지 함께 고민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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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재단사람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