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아의 첫 전기차 세단 EV4는 전기차 시장에서 새로운 유형의 혁신적인 디자인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V4를 통해 기아의 차세대 전동화 세단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 김종철
지난 23일 오전 경기도 판교 방향 수도권 제1 순환 고속도로는 많은 차들로 붐볐다. 평일 출근 시간이 갓 지났지만, 교통량 자체가 많았다. 조그마한 소형차부터 세단, 대형 버스와 트럭 까지… 수많은 차량 사이에서 돋보이는(?) 차들이 있었다. 기아가 새롭게 내놓은 전기 세단 이브이4(EV4)다. 이날 자동차 기자단을 상대로 EV4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것. 시승 내내 일부 정차 구간에서 옆 차선 운전자들의 시선이 그대로 느껴졌다.
EV4는 기아가 처음으로 만든 준중형급 전기 세단이다. 그동안 전기차 시장은 대체로 스포츠다목적자동차(SUV) 차량들이 주를 이뤘다. 기아 역시 대형 전기 SUV인 EV9과 중형 EV6, 소형 EV3 등을 연달아 내놓고, 전기차 시장을 이끌고 있다. 특히 기아 전기차 라인업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혁신적인 기술과 디자인 등으로 인정받고 있다. 실제 지난 20일 미국 뉴욕 오토쇼에서 발표된 '2025 세계 올해의 차' 대상에 EV3가 선정 됐다. 작년엔 EV9이 대상으로 뽑혔다.
전 세계 자동차 전문기자들이 해마다 내로라는 차들을 모아놓고 뽑는 '세계 올해의 차'에서 최고 영예인 '대상'을 2년 연속으로 기아가 차지한 것이다. 그것도 전기차로 말이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미래 지속가능한 이동 수단으로서 기아의 혁신적인 기술과 디자인, 상품성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2월 스페인에서 그는 '전동화 시장의 흐름 전환(Turn the tide)' 주제를 꺼내 들면서, 기아의 첫 전기 세단 EV4를 맨 앞에 세웠다.
"새로운 형식과 모습의 EV4로 시장 이끌 것"

▲EV4는 현대차그룹 전기차 중 가장 긴 거리인 533km의 1회 충전 시 주행가능거리를 확보했다.(롱레인지 2WD 17인치 휠 기준) ⓒ 김종철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전쟁과 함께 전기차 캐즘(일시적인 수요 둔화) 극복이라는 숙제를 떠 안고 있다. 물론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과 유럽 등지에서의 전동화 추세는 여전하다. 특히 낮은 가격을 무기로 기술 경쟁력까지 갖춘 중국산 전기차들의 시장 공략도 만만치 않다. 송 사장이 '전동화 시장의 전환'을 외친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시장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선 '킬러(Killer) 콘텐츠'가 필요했다.
EV4가 앞장섰다. 우선 디자인에서 파격적이다. 기아가 수 년 동안 유지하고 있는 '오퍼짓 유나이티드(Opposites United)'를 발전시켰다. '상반된 개념의 창의적 융합'이라는 디자인 철학을 유지하면서, 좀 더 세련되고 역동적이다. 앞쪽 헤드램프의 모습은 날렵한 호랑이의 눈매를 연상케 한다. 옆 모습도 새롭다. 기존 가솔린 세단에선 볼 수 없는 모습 이다. 기아 관계자는 "차량 후드 앞쪽부터 트렁크 끝 부분까지 이어지는 모습이 기존 차량과 다른 점"이라고 했다. 고성능 버전인 GT 라인은 역동적이다.

▲EV4의 실내는 수평형 구조로 정돈된 깔끔한 형태다. 운전자 중심 설계를 바탕으로 직관적인 경험을 선사한다고 기아는 밝혔다. ⓒ 김종철
실내는 넉넉하고 깔끔하다. 수평형 구조를 바탕으로 어떤 운전자라도 쉽게 조작할 수 있는 직관성이 눈에 띈다. 12.3 인치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충분하다. 요즘 전기차 뿐 아니라 내연기관 신차 등은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화면을 선보이는 추세다. EV4도 와이드 디스플레이가 적용돼 있고, 시동을 끈 상태에서 영화 등을 볼 수 있다.
또 운전석 쪽의 '슬라이딩 콘솔 테이블'은 정차 중에 업무나 음식 먹을 때 편하다. 뒤쪽 좌석에 있는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게 돼 있다. 회사 관계자는 "슬라이딩 콘솔 테이블은 기아 차량에 처음으로 적용되는 것"이라며 "정차 때 차량 안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0.23과 6.7 그리고 533km

▲EV4는 E-GMP를 기반으로 81.4kWh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한 롱레인지 모델과 58.3kWh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한 스탠다드 모델이 운영된다. 롱레인지 모델은 자체 측정 기준 350kW급 충전기로 배터리 충전량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데 약 31분이 소요된다. ⓒ 김종철
파격적인 디자인과 함께 또 다른 '킬러'는 주행거리와 질감이다. EV4는 두 가지 크기의 배터리가 들어간다. 81.4kWh 용량(롱레인지 모델)과 58.3kWh 용량(스탠다드 모델)이다. 회사 쪽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롱레인지 모델 기준으로 17인치 휠을 장착한 차량은 1번 충전으로 533km를 갈 수 있다. 현대기아차에서 지금까지 내놓은 전기차들 가운데 가장 길다. 또 스탠다드와 롱레인지 모델의 복합 전비도 1 kWh당 5.8km를 갈 수 있다. 이 역시 기아 전기차들 가운데 전기 효율이 가장 좋다.
실제 이날 기자가 경기도 하남과 양평, 광주 등 일대를 3시간 넘게 운행한 전비 기록은 6.7km/kWh 였다. 일반 시내와 국도, 고속도로 등의 구간에서 교통의 흐름에 맞춘 평상시 운전 습관 그대로 운행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깥 온도가 올라 실내 에어컨도 가동했다. 여러 도로와 환경 등을 감안하더라도, EV4의 전기 효율은 기대 이상이었다. 공식 전비 보다 20%이상 높은 기록이었다. 기자와 같은 운전 습관이라면, 1회 주행 가능거리는 600km에 육박할 수도 있다. 물론 내연기관의 연비처럼 전기차도 운전자의 성향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EV4의 고성능 버전인 GT 라인은 날개 형상의 전, 후면부 범퍼와 전용 19인치 휠 등 GT 라인만의 디자인 요소가 적용됐다. ⓒ 김종철
이같은 전기 효율성은 차량 자체 설계에서 비롯된다. 공기역학적인 설계는 여느 전기차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좀 더 개선된 흔적들이 역력하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고,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지하기 위한 것들이다. 차량 앞과 뒤, 바퀴의 휠 까지 각종 부품을 새롭게 다듬었다.
또 운전자가 가속 페달만으로도 차량의 속도를 높이고, 줄이고, 멈춰서게 할 수 있는 아이페달 기능도 진화했다. 이 기능은 운전자에 따라 약간의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과거보다 좀 더 쉽게 다룰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주행 질감도 좋아졌다. 회사 관계자는 "EV4의 공기저항계수는 0.23인데 기아 차량 가운데 가장 우수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전기차 시장 판도, 바꿀 수 있을까
자동차의 필수 조건인 안전, 편의장치들도 마찬가지다. 고속도로 구간에서 사용했던 주행보조2장치는 운전자의 피로감을 덜어주는데 유용했다. 시속 100킬로미터 구간에서 앞과 옆의 주변 차량 흐름과 속도를 측정해서, 거리를 스스로 제어해준다. 직선 뿐 아니라 곡선 구간에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운전대를 잡고 방향 지시등만을 켜면, 자동으로 알아서 차선을 바꿔준다.
또 차량 운행시 주변 차량들과의 충돌 가능성 등을 미리 알려주거나, 차량을 타지 않고도 자동으로 차량을 주차하거나 이동시키고, 야간 운전 때 자동으로 반대편쪽 차량의 불빛을 막아주는 등 다양한 기능도 들어있다. 물론 이들 기능들이 새롭진 않다. 기존 기아의 전기차 등에도 적용돼 있다. 대신 기능을 더욱 개선시켜 운전 이외의 공간과 시간에서 편리성을 극대화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EV4 스탠다드 및 롱레인지 모델의 복합전비는 기아 EV 라인업 중 가장 높은 5.8km/kWh를 기록했다. (2WD 17인치 휠 및 산업부 인증 완료 기준) 또 EV4는 공기역학적인 설계를 바탕으로 기아 차량 중 가장 우수한 공력성능인 공기저항계수 0.23을 달성했다고 회사쪽은 설명했다. ⓒ 김종철
대신 디자인의 차별성을 강조하다 보니, 소비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다. 또 차량 뒤쪽의 일자 형태 램프의 경우, 앞쪽 헤드램프와 달리 차선을 바꾸거나 회전때 켜지는 노란 불빛의 방향지시등이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를 따라가는 운전자 입장에선 앞 차량의 움직임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차 값은 4192만원부터 시작한다. 친환경차 세제 해택과 보조금 등을 받게 되면 3000만원대까지 내려간다. 롱레인지 버전에 각종 편의사양을 선택하더라도 보조금 등을 감안하면 4000만원 후반대로 살 수 있다. 동급의 경쟁차종으로 현대의 아이오닉6, 테슬라 모델3 등에 비해서도 기능이나 편의장치를 감안하면 충분한 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기아의 송호성 사장은 전기차 시장의 판도를 바꾸겠다고 했다. 이미 소형부터 대형에 이르기까지 전기 SUV를 글로벌 시장에 내놓고, 혁신과 기술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전기 세단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글로벌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새로운 전동화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기아는 최초의 준중형 전기 세단 EV4를 통해 전동화 시대를 이끌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 김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