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깃발 아래 작은 글씨로 '어니스트, 네가 네 삶으로 보여준 정직함을 꼭 이 세상에 구현할게'라고 쓰여있다. ⓒ 바람
바람(만 26세, 여, 백수, 서울 강남구)을 만난 건 해리포터 관련한 기수들이 모여 있는 쪽에서였다. 당연히 그도 해리포터 덕후일 거라 생각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그는 해리포터 팬픽인 <지독한 후플푸프>의 덕후다.
"해리포터도 좋아하지만, 백인우월주의나 학교폭력에 대한 관대함 등에서 아쉬움이 있었어요. 근데 <지독한 후플푸프>는 그 아쉬움을 다 채우고도 남았죠."
그는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사진, 성우, 제과제빵 등 다양한 방면에 관심이 많다. 이것저것 자격증을 따고 공부도 하면서 미래를 모색하는 중인데, 탄핵을 건너온 지금 그가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은 정치소설을 쓰는 거다.
"직접 움직이기에는 건강이 따라주질 않아 글로 풀고 싶어요. 정치를 너무 몰라서 아직은 구상 중이에요."
그날은 제과제빵 필기시험 이틀 전이었다. 단톡방에 '계엄 터졌대'라는 글이 올라왔다. 계엄이라니,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무슨 소리지? 근데 왜 군대가 국회에 가? 이건 독재가 시작되는 거잖아.
그는 제주도 출신으로서 바로 4.3이 떠올랐다. 매년 4월 3일이면 듣던 무서운 이야기들. 다른 지역에서는 4월 3일에도 4.3을 말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의 어이없음. 계엄에 대한 인식은 각자 다르겠지만, 세월호와 이태원, 오송 참사를 같이 겪었으니 그 무게감이 비슷할 것이다.
"그 순간 가짜뉴스가 많이 돌았어요. 핸드폰을 꺼야 한다, 지금 밖으로 나가면 큰일 난다,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가만히 있지 말고 더 말해야 한다던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우리나라는 망했겠구나 싶어요."
그날부터 그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당연히 시험도 망쳤다. 국회에서 군대가 빠져나가기는 했지만 내란수괴가 체포되었다거나 계엄이 종식되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계엄에 대한 공포는 독재에 대한 분노로 바뀌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불안으로 이어졌다.
"계엄이 일어난 걸 아침에 일어나서 알게 된 사람은 그 공포를 잘 모른대요. 진짜 별일 없었던 걸로 여겨지나 봐요. 근데 밤새 라이브를 보면서 또는 밖으로 나가서 위기를 몸으로 겪은 사람은 완전히 달라요. 우리는 계엄을 경험한 세대가 되어버린 거예요."
그는 다음날로 '나 불면증 있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는 글귀를 담은 피켓을 들었다. 국회에서 탄핵가결이 나온 후에야 겨우 조금씩 잠을 잘 수 있었고, 다시 시험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한번 불면증으로 꺾인 몸은 잘 회복되지 않았다. 게다가 시위에 나가지 않으면 정확한 소식을 알 수 없었고 언론을 통해 나오는 뉴스는 너무 한정적이어서 답답했다. 계속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것도 힘들었다. 그때마다 어차피 오래 걸릴 일이니 서로 바통을 이어받자 생각했다.

▲그가 좋아하는 창작물들 ⓒ 조용미
그는 정치에 대한 반감이 컸다. 친척이 선거에 나가면서 공천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는데, 정당과 정치인들의 저열함에 질려버렸다. 부모님은 그에게도 정당 가입을 강권했지만 아직 주관이 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특히 큰 정당이 싫었다. 그런데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일어났을 때, '무정부상태'가 되자 오히려 수순대로 사건이 해결되는 걸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인식되었다. 정치에 제대로 관심을 가져보기도 전에 세상이 그를 진보로 만든 셈이다.
"큰 정당부터 공천제도를 바꿔야 해요. 정말 일할 사람을 기준으로 뽑아야 하는데 인맥과 줄 서기로 서로 나눠먹기를 하잖아요. 빨간색이든 파란색이든 한쪽으로 기울어진 지역은 인물이나 공약은 안 보고 당 색깔만 보고 찍으니까요."
그는 뒤늦게 깃발을 들었다. 윤석열이 파면되고 긴장이 풀리려던 찰나, 개헌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고 내란세력을 완전히 몰아낼 때까지는 절대 끝난 게 아니라는 생각에 면접 준비를 접고 깃발을 들고 나왔다.
깃발에는 '이제 세상은 암흑에 잠길 것이라 하여도 우리는 불을 켤 것이다'라는 문구를 썼다. '호그와트가 암흑에 잠길' 때 '누군가는 불을 켜'는 것처럼 바로 그 누군가가 되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그는 주인공 어니스트처럼 자신이 희생되더라도 사회를 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광장은 이전보다 재밌어졌다. 스티커를 만들어서 명함 나누듯이 서로의 깃대에 붙인다든가 깃발 흔드는 걸 칼같이 동기화한다든가 모든 것이 가볍게 다가왔다. 절대 가볍지 않은 마음을 가볍게, 지지부진한 정치를 좀 더 즐겁게, 투쟁을 오래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기회가 되면 금속노조에 연대해보고 싶어요. 민주노총은 무서운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억울한 사람들이더라고요. 자본에 당하고 시민은 모르쇠 하는 그 힘든 세월 어떻게 버텨왔는지,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그는 8개 정당과 비상행동이 공동으로 하는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각 정당이 어떤 정책비전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려 하는지 살펴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정당들은 조금씩 색깔이 달랐지만 이미 암묵적 동의가 된 사항들이 꽤 많았다. 근데 왜 아직도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점점 당원들의 정치역량이 높아지고 있으니 제대로 된 정당 활동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단순히 잘하는 정치인들을 응원해 주는 데 머무르지 않고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지 질문할 때다.
그는 작은 정당이 힘을 내줬으면 좋겠다. 이번에 나름 마음에 드는 정당을 찾았고, 일할 사람도 보였다.
"입법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끄러운 일을 스스럼없이 말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과 대안까지 제시하더라고요. 진짜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죠. 지금 국회의원들은 아무것도 못 하게, 정치를 그만두게 하고 싶어요. 계엄을 옹호하던 입으로 감히 대선에 나오다니. 그게 말이 되나요?"
그는 꼭 토론해보고 싶었던 의제가 있다. '한 명의 남자아이는 어떻게 극우화되는가'에 대한 대응과 대책이다. 정책토론회에서 제안해보고 싶었는데 자유토론시간이 없어져서 못내 아쉬웠다. 포털이나 SNS 시스템에도 압박을 가해야겠지만, 그 이전에 우리가 먼저 문제를 가시화하고 원인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여성이라고 무시하고 장애인이라고 차별하는 사회 말고 모두가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동권 보장이 뭐가 그렇게 어려워요? 엘리베이터 설치하면 우리도 쓰잖아요. 캐리어 들고 계단을 오르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텐데, 왜 그걸 망각하고 보장해주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는 정치를 주제로 스몰토크 하는 사회, 일상적으로 정치를 이야기하는 게 당연해지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차 한 잔을 두고 기후 얘기를 하고 대응책을 논하고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퀴어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제가 운영하는 채널에서 제발 정치 얘기 좀 하게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자기 삶은 정치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치 얘기를 못 하게 하면 무슨 말을 하라는 거냐고요. 보통 정치나 종교 얘기는 피하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잖아요. 근데 계엄을 겪고 저도 정치 얘기를 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이제 당신을 이해한다고 친구에게 말했죠."
보통 퀴어들은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차별금지법이나 생활동반자법 등 법적인 측면도 그렇지만, 크고 작은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적 상황을 알아야 한다. 그는 계엄을 겪으면서 "일상에서 정치는 거부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4개월여를 보내며 그는 이제 정치적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게 될지는 소설을 써봐야 알 것 같다. 그에게 광장은 "시작점"이다. 광장의 가치를 유지해야 하고 잊지 않는 것부터 시작이다.
"우리가 각자 원하는 정치를 판타지에 담아보고 싶어요. 비록 현실에서 구현되지 않더라도 다양한 상상을 해보는 거죠."
그가 묻는다. 당신의 정치판타지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