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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독일에 첫 발을 디딘 뒤 독일과 한국을 오가다가, 2016년부터 독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단법인 3P아동인권연구소 대표이자 숭실사이버대 아동심리치료학과 교수입니다.
4월 말, 중부 독일은 섭씨 20도가 유지된다. 이제 작은 발코니 화분에 들깨 씨를 뿌릴 때다. 시간 지나 여름이 되면, 발코니의 크고 작은 화분마다 싱그러운 깻잎이 자라날 것이다. 깻잎 사이에 앉아 깻잎향을 맡으며, 한국에 있을 때 깻순 무침을 해 주시던 친정엄마와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나 살던 서울 중림동 지하상가 슈퍼에서 이웃 엄마들과 함께 집어 들었던 깻잎까지 그 냄새와 소리가 생생하다.

깻잎은 독일 일반 슈퍼에서 잘 구하기가 어렵다. 한국과 그 값을 비교해도 너무 비싸다. 독일 일반 슈퍼에서 파는 양상추 한 통이 1유로 미만(약 1,600원)인데 생 깻잎은 5g에 3유로(약 5,000원) 수준이다.

그마저 대도시 아시아 마트에서, 아주 짧은 기간에만 구할 수 있다. 한국과 달리, 깻잎은 귀하고 비싼 몸이다. 더러 깻잎 통조림을 사기도 하지만, 특유의 향과 맛을 음미하기에 그저 아쉽다.

깻잎 키우며 온라인에서 만난 한인들

깻잎키우기 온라인 모임방 대화 깻잎키우기 오픈카톡방을 개설하여 한인들의 공통의 취미와 관심사를 나눈다.
깻잎키우기 온라인 모임방 대화깻잎키우기 오픈카톡방을 개설하여 한인들의 공통의 취미와 관심사를 나눈다. ⓒ 서정은

이 '깻잎 부심'은 나만 있는 게 아니다. 이른 봄부터 한인들은 어김없이 들깨 씨나 모종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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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년 전, '깻잎 키우기 오픈 채팅방'을 만들었다. 지인을 비롯해 깻잎과 한국 작물을 키우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 독일은 물론 유럽, 뉴질랜드, 북미에 사는 교민도 찾아온다.

"저도 깻잎 먹고 싶어요. 씨앗은 어디서 구하셨어요?"
"심긴 했는데 잎이 자꾸 시들어요... 뭐가 문제일까요?"
"얘도 이렇게 뿌리내리려 애쓰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하며, 매일 물 주고 있어요."

우리도 깻잎처럼, 낯선 땅에 뿌리내리기 위한 작은 공동체가 되어 서로 응원하고 격려를 주고받는다.

이상기후를 위한 개인 실천, 집에서 자가재배

깻잎 키우기는 단순한 '취미' 이상이다. 심각한 이상기후 시대의 실천이기도 하다. 세계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독일도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기록적인 폭염, 겨울 가뭄, 폭우와 우박 등 이상기후가 잦아졌다.

독일 연방환경청(UBA)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개인 실천으로 자가재배(Gärtnern)를 권장하고 있다. 도시 공간에서도 발코니, 옥상, 공동정원에서 작물을 기르는 시민이 늘고 있단다.

한국 농림축산식품부 '2023 도시농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도시민의 32.6%가 주택·베란다·옥상 등에서 작물을 기르고 있으며, 10명 중 4명이 향후 참여 의향을 보였다. 두 나라 모두 기후위기 시대에 시민들이 식량 자급이나 녹색 실천의 하나로 도시농업을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들깨 씨앗 파종 후 씨앗 파종 후 모두 싹이 잘 텄다. 봄이 되기 한참 전부터, 실내에서 싹을 틔우거나 수경재배도 한다.
들깨 씨앗 파종 후씨앗 파종 후 모두 싹이 잘 텄다. 봄이 되기 한참 전부터, 실내에서 싹을 틔우거나 수경재배도 한다. ⓒ 서정은

깻잎 키우기는 독일의 정원문화와도 연결된다. 독일인들은 화분 하나를 놓더라도 그 식물의 특성에 맞는 위치, 물 주기, 햇빛량을 신중히 고민한다.

실제로 유럽연합 통계(Eurostat, 2021)에 따르면 독일의 가정 중 약 75%가 실내외 화초를 기르고 있으며, 이는 EU 평균보다 높은 수치다. 독일에서 깻잎을 키운다는 것은 그저 한국 식물을 기른다는 의미를 넘고 독일 정원문화에 함께 함을 의미한다.

기후 위기, 오늘의 '아동 위기'와 이어져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보다 큰 이야기와 연결된다. 바로 '기후위기는 아동권리 위기'라는 사실이다. 유니세프(UNICEF)는 2021년 보고서 <기후위기는 아동권리 위기다(The Climate Crisis is a Child Rights Crisis)>를 펴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 10억 명 이상의 아동이 기후위기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다. 폭염, 수질오염, 대기오염, 식량난, 교육 중단 등의 상황은 아동의 생존과 보호, 교육받을 권리를 위협하고 있다. 유니세프는 그 해결책으로, 아동 중심 기후정책 수립, 아동의 참여 보장, 기후 변화 교육 확대, 아동친화적 사회서비스 강화, 아동 건강 보호 등을 제안했다.

어린이도 '기후위기의 당사자'라는 인식은 독일 교육 현장에서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독일의 많은 초등학교는 '기후학교(Klimaschule)'라는 이름 아래 정규 수업에 텃밭 가꾸기와 환경 체험을 포함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독일 연방 환경재단(DBU)과 각 주 정부 교육부의 지원 아래 운영된다.

먹고싶은 한국작물 깻잎, 아욱, 쑥갓 외에 한국 작물 여러종류가 발코니에서 자란다.
먹고싶은 한국작물깻잎, 아욱, 쑥갓 외에 한국 작물 여러종류가 발코니에서 자란다. ⓒ 서정은

독일 함부르크(Hamburg) 주는 2010년부터 '기후학교(Klimaschule)' 인증 제도를 도입했다. 학교 자체적으로 에너지 절감 목표를 세우고, 학생과 교사가 함께 기후계획서를 작성하는 등 에너지 절약, 생태 활동, 환경교육 계획을 실천하도록 장려한다. 바이에른(Bayern) 주의 'KlimaMacher' 프로젝트도 같은 맥락이다.

학교정원(Schulgarten)은 독일의 전통적인 환경교육 방식이다. 학교 안에 정원을 만들고, 학생들이 직접 작물을 기르고 생태순환을 체험한다. 독일 연방교육 연구부(BMBF)도 학교정원이 여러 교육적 효과가 있다고 보고하였다.

헤센(Hessen) 주에서는 공립학교 교육과정에 "지속가능발전교육(BNE: Bildung für nachhaltige Entwicklung)"을 포함시켜, 환경·경제·사회 문제를 통합적으로 접근한다.

발코니 여름 깻잎 깻잎 향이 진해지면, 고향의 냄새가 발코니에 진동한다. 이상기후에서 자가재배는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좋은 행동이다.
발코니 여름 깻잎깻잎 향이 진해지면, 고향의 냄새가 발코니에 진동한다. 이상기후에서 자가재배는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좋은 행동이다. ⓒ 서정은

베를린(Berlin)시 교육청은 유치원과 학교에 '자연을 가까이하는 놀이 및 교육'을 권장하며, 발코니 정원 만들기나 퇴비화 실습도 장려한다. 한국에서도 '기후환경교육 종합계획'(2022)에 따라 생태 텃밭과 기후수업이 확산되고 있다.

깻잎은 한해살이 식물이다. 매년 새로 심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작은 잎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본다. 기후위기 시대에, 씨앗을 심고 식물을 키우는 일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다. 그것은 정체성을 지키는 방식이자 공동체와 기후위기를 마주한 일상 속 저항이다. 손바닥 만한 깻잎 하나가 고향이고, 공동체이고, 기후위기 속의 대안이자 미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및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독일 Statista(2023): 독일 가정의 식물 재배율/ 독일 연방환경청(UBA): 기후위기 대응 가이드라인/ 독일 교육부(BMBF), ‘기후학교 프로그램’ 소개자료 및 Hamburg Ministry of Education, Klimaschule Hessisches Kultusministerium, Bildung fur nachhaltige Entwicklung/ 독일 연방기상청(DWD), 2023 연간기후보고서 Statista, "Pflanzen auf Balkon oder Fensterbank in deutschen Haushalten 2023" KlimaMacher, Bayerisches Staatsministerium fur Unterricht und Kultus / 등을 참고했습니다.


#독일#기후위기#아동권리#기후학교#깻잎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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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은 (argon24) 내방

사단법인 3P아동인권연구소 대표이고 숭실사이버대학교 아동심리치료학과 교수. 현재 독일에 체류하며 소수자와 이방인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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