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의 모공, 눈썹과 수염의 털 한 올 한 올까지 실제에 가깝도록 재현해 낸 거대한 인체 조각과 100개의 거대한 두개골들의 모음...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론 뮤익의 개인전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
인체의 모습을 거대하고도 극사실적인 모습으로 표현하는 론 뮤익의 작품은 2021년 리움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 소개되었을 때에도 화제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그의 30년 예술 세계를 집약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나 1986년부터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론 뮤익은 현대 인물 조각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정의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때로는 거대한 크기로, 때로는 실제보다 축소된 크기로 구현되는데, 극도로 생생하고 정밀한 묘사로 인해 우리에게 강렬한 존재감을 안겨준다. 30년 동안 그의 작품은 총 48점으로 전해지는데, 정교하고도 완성도 높은 생생함은 물론, 인물의 감정까지도 담아낸다는 점이 특징이다.

▲<마스크 Ⅱ>, 론 뮤익실제 크기의 약 4배로 제작된 론 뮤익의 자화상 조각. 모공과 털 한 올까지 극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 서혜진
익숙하고도 낯선 경험
론 뮤익이 극사실적인 모습으로 묘사한 작품들은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크기가 때로는 거대하고 때로는 작게 축소된 까닭으로 인해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 시선의 각도가 달라지게 된다. 분명 익숙한 대상인데도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압도적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작품 <마스크 2>. 이 작품은 론 뮤익의 자화상이기도 한데 실제 크기의 약 4배 정도 크기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눈가에 자리 잡은 미세한 주름은 물론, 모공, 눈썹과 수염의 털 한 올 한 올까지 실제에 가깝도록 재현해냈다. 클로즈업한 사진만 보면 누워 있는 실제 사람처럼 보일 정도이다.

▲<마스크 Ⅱ>, 론 뮤익실제와 똑같이 만들어진 정면과 달리 텅 비어있는 뒷모습 ⓒ 서혜진
재미난 점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였던 정면과는 달리, 실상은 이렇게 뒷부분이 텅 비어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 왜 <마스크>인지를 확인하게 해주는 지점이다. 분명 정면에서는 실재한다고 느끼게 만들지만 알고 보면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하여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대상이 커진 것인가? 내가 작아진 것인가?
침대에 누워 진지하게 생각에 잠긴 인물을 표현한 <침대에서> 역시 과장되게 확대하여 표현된 대형 조각 작품이다. 실제와 달리 왜곡된 크기 때문에 내 앞의 대상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은 낯선 감정이 들게 만든다.

▲<침대에서>, 론 뮤익거대한 크기의 인물을 마주하면, 오히려 내가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서혜진
<침대에서>는 전신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얼굴만을 떼어 재현해낸 <마스크>와는 달리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 크기로 인해 이제는 나 자신을 의심하는 낯선 경험을 하게 한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인물이 커진 것인가? 아니면 내가 작아진 것인가? 거인 걸리버를 바라보는,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 사람들이 이런 느낌, 이런 감정이었을까.

▲<침대에서>, 론 뮤익침대에 누워 있는 인물을 거대한 크기로 만들어낸 작품으로, 깊은 사색에 빠져있는 인물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 서혜진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실제처럼 표현된 부드러운 살결이었다. 극도로 매끈하고도 생생하게 만들어진 이 조각을 보고 있으면, 과연 보는 것처럼 부드러운 촉감인지 궁금해진다. 어쩐지 따뜻한 체온도 느껴질 것만 같은 작품이다.
100개의 거대한 두개골 조각들이 주는 강렬함
<매스 MASS>는 거대한 인간 두개골 100개로 구성된 작품으로,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전시 장소마다 공간의 특성에 따라 다른 형태로 배치된다고 하는데, 덕분에 매 전시마다 새로운 느낌의 작품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100개의 두개골이 새하얀 벽에 둘러싸인 공간에 배치되어 있어, 더욱더 차가운 느낌을 자아낸다.

▲, 론뮤익100개의 거대한 두개골이 주는 강렬함이 압도적이다. ⓒ 서혜진

▲, 론 뮤익바닥에 뒹굴고 있는 두개골은 우리에게 삶의 유한성을 떠올리게 한다 ⓒ 서혜진
거대한 두개골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모습에서 지하묘지, 혹은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인한 비극적인 종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각각의 두개골은 개별적인 특징이 드러나지 않은 채, 모두 비슷하게 생겼는데, <매스 MASS>라는 제목은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두개골들의 군집이라는 의미를 떠오르게 만든다.
두개골(해골)은 미술 작품 속에서 종종 인생의 덧없음을 뜻하는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를 상징하는 요소로 등장하곤 한다.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세지는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던 인물도, 결국은 죽기 마련이라는 '삶의 유한성'을 이야기한다.
해골이라는 오브제는 하나 만으로도 강렬한 이미지를 주는 소재인데, 이런 두개골이 커다란 형태로 만들어져 모여있으니 더욱 압도적이고 강렬하게 느낌을 전달한다. 오싹하면서도 기괴하고, 그와 동시에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경건한 마음이 든다.
전시 마지막에는 론 뮤익의 작업 과정을 기록한 사진과 영상을 볼 수 있다. 극도로 사실적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아이러니한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엿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이다.
론 뮤익의 개인전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5년 7월 13일까지 열린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이질적인 감정을 직접 경험해보시길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