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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주4일제, 주4.5일제가 공약으로 내세워지는 것을 보며 다섯 살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의 입장에서 쓴 글입니다.
다섯 살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인 나는 요즘 10시까지 출근하고 5시에 퇴근한다. 관련 법령('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등) 개정으로 육아기 단축근무를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나 하루 최대 2시간 사용 가능한 단축근무를 1여 년 만에 다시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거 육아휴직 후 복직하면서 바로 단축근무를 신청했을 때는 비교 대상이 없어 단축근무의 효과를 크게 체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법령 개정 이전까지 '정상출근'과 육아를 병행해본 터라, 비교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과거 내가 '정상출근'을 했을 때 아이는 오전 8시 조금 넘으면 유치원에 도착해야 했고, 오후 7시가 되어서야 하원을 했다. 하루 약 11시간을 유치원에서 보냈던 셈이다.

단축근무하니 보이는 주4일제가 가져올 미래

 과거 내가 '정상출근'을 했을 때 아이는 하루 약 11시간을 유치원에서 보냈다. 아이를 데리러 가면 다른 친구들은 이미 거의 다 집에 가고 없었다.(자료사진).
과거 내가 '정상출근'을 했을 때 아이는 하루 약 11시간을 유치원에서 보냈다. 아이를 데리러 가면 다른 친구들은 이미 거의 다 집에 가고 없었다.(자료사진). ⓒ gautamarora1991 on Unsplash

당시 아이를 데리러 가면 아이는 늘 혼자, 친구들은 다 집에 가고 없었다. 현관으로 나오는 아이는 늘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하원하고 집에 와서 밥을 먹으면 8시가 되고, 9시부터는 잘 준비를 해야 하니 집에서의 휴식 시간은 1시간 남짓이다. 그래서인지 '잘 시간이야'라 말하면 아이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그런 눈으로 아이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엄마랑 아직 다 못 놀았는데..."

마음이 아팠다. 어떤 날은 아이를 달래느라, 지쳐서 내 여유가 없는 날엔 아이를 울게 만들어 결국 아이는 밤 10시는 다 돼야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정신없이 쫓기듯 집을 나서는 하루가 반복되었다. 잠도 다 못 깬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고 최소한만 준비해 차에 태우고는 고구마스틱이나 맛밤 따위를 손에 쥐여줬다. 아이의 첫 끼였다. 잠에 취해 아무것도 못 먹은 채로 등원하는 날도 적지 않았다.

올해 4월부터 단축근무를 다시 신청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아침 풍경이다. 아이가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사과나 토스트, 누룽지 같이 간단한 식사지만 가족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한다. 이제 아이는 일정한 양의 아침 식사를 거르지 않고 매일 먹는다.

이렇게 잘 먹는 아이를 그동안 굶겼던 게 아닐까 싶은 죄책감마저 든다. 시간과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아이에게 건네는 첫마디가 "늦었어, 빨리 일어나"가 아니라 "잘 잤어?"라는 다정한 안부의 말이 되었다.

저녁 풍경도 자연스레 바뀌었다. 먼저 자기 싫어하던 아이의 '수면 거부'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우리와 보내게 된 아이는 미련 없이 잘 준비를 한다. 이전엔 마음이 급해 옷 갈아입기나 양치하기, 세수하기 등을 내가 빠르게 대신해 줬던 적이 많았지만, 이제는 아이가 스스로 양치하고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 기다려준다.

마지막으로 직장인이고, 양육자이면서도 그 정체성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고유한 개인으로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여유와 에너지가 조금 생겼다. 계획했던 시각에 아이가 잠을 자니 매일의 자유시간이 확보된 것이다.

두세 시간 남짓한 이 시간에 나는 책을 보거나 글을 쓰기도 하고,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영상을 보며 머리를 비우기도 한다. 어떤 의무에서도 자유로운 나로서 살아가는 유일한 시간이다. 단축근무의 전후는 이렇게나 다르다. 아이도, 양육자도 더 충만한 삶, 주4일제가 가져올 미래도 그렇지 않을까.

직장어린이집 다들 좋다지만

 서울 강남구 한 유치원 앞을 지나가는 학부모와 어린이. 2025.4.7
서울 강남구 한 유치원 앞을 지나가는 학부모와 어린이. 2025.4.7 ⓒ 연합뉴스

내가 다니는 현 직장엔 직장어린이집이 있어서 많은 이들이 그걸 이용한다. 아이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아이가 직장어린이집에 다닌다는 전제로 말하는데 내가 아이를 동네 다른 보육 기관에 보낸다고 하면 이유를 묻는다. 보통은 '신청했는데 떨어졌어요'가 기대하는 대답이겠지만, 나의 이유는 조금 다르다. 내게는 낮시간 아이가 나와 가까이 있다는 것 말고는, 다른 장점이 딱히 공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거론하는 직장어린이집 장점 중 빠지지 않는 것이 '긴 보육시간'이다. 밤 10시까지 연장보육 신청이 가능해 양육자가 늦은 시각까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아이를 봐준다는 것이다. 현실적이고 중요한 이유다.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데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면 곤란하다. 진땀을 흘리며 허리를 최대한 수그린 채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거나 대신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해야만 한다.

돌봄공백의 걱정 없이 야근하는 동안 아이를 늦게까지 맡길 직장어린이집이 있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가장 큰 장점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어린이집의 장점으로 '장시간 돌봄'이 꼽히는 현실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야근은 되도록 방지해야 하는, 예외적인 게 아닐까? 우리는 아이 곁에서, 아이가 자라는 순간들을 지켜보며 함께 웃고 행복하기 위해 아이를 낳는 게 아닐까?

같은 직장에 다니며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육아기 단축근무를 신청할 수 있으면서도 신청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다(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남자인 경우가 많다).

크게 두 가지 이유 같다. 하나는 '눈치가 보여서'다. 먼저 퇴근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자리에 없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내 일을 처리해야 할 수도 있다는 데 대한 미안함. 그리고 인사권자에게 '육아를 핑계 삼아 일하기 싫어하는 직원' 또는 '육아 때문에 일 시키기 어려운 직원'으로 인식되는 게 싫다는 생각.

다른 하나는 '육아를 상대적으로 적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육아를 전담하는 다른 누군가(주로 아이 엄마나 아이 할머니, 혹은 돈 주고 고용하는 돌보미)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건 주로 여성일 확률이 높다. 육아시간을 사용하는 직원의 대다수가 여성 직원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편향된 인식과 이해의 부재, 구조화된 성별 역할에 대한 기대, 제도의 결함들이 뒤섞여 있는 문제이지만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인간의 인간다움을 인정하는 일, 모두에게 일하는 시간 외에도 다른 충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말이다.

일이 삶의 전부는 아니니까... 인간다운 삶이란

최근 선거를 앞두고 여야에서 주 4일제 또는 주 4.5일제 논의가 시작되는 것에 워킹맘인 나는 정말이지 두 팔 벌려 환영할 만큼 기쁘다. 그러나 논의의 본질은, 핵심은 일주일에 며칠 일하는지가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이 돼야 한다고 본다.

한국의 노동시간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제 수준을 가진 다른 OECD 가입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터무니없이 길다는 것은 이미 익히 잘 알려져 있다(OECD가입국 중 5위). 시간이 길수록 생산성은 떨어진다는 연구도 있건만, 직장 내 휴가나 유희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하게 취급하는 회사들 분위기도 여전하다.

며칠 전엔 나보다 먼저 아이를 키우는 상사에게 "어떻게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고 계세요?"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 닥치니 어떻게든 하게 되더라고요."

앞서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렇다. 대부분은 어떻게든 해결되고 지나간다. 그러나 인간이 빵(생존)만 먹고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지금 이 젊음,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 시간을 즐기면서, 충분히 누리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요구일까?

미혼이고 자녀가 없는 동료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집에서 주말 이틀은 충분히 쉬어야 다시 출근할 에너지가 생긴다'고 했던 직원이었다.

"주4일제가 시행되면 뭘 할 것 같아요?"

돌아온 대답은 "내가 하고 있으면 즐거운 게 뭔지 찾아볼 것 같아요"였다. 평일과 주말, 일과 일을 위한 쉼으로만 이루어지는 일주일이 아니라, 순수한 즐거움이 있는 삶. 인간다운 삶은 그런 게 아닐까.

즐겁게 사는 이들이 모인 회사, 그들이 만드는 사회. 그건 퇴행일 리가 없다. 아이와 함께 하고 있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하나뿐인 소중한 삶을 즐길 더 많은 시간을 원한다. 더 많은 이에게 더 많은 장미, 더 인간다운 삶을! 우리에겐 그럴 자격이 있다. 우린 기계가 아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워킹맘#노동시간단축#주4일제#육아일상#노동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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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starinme) 내방

회사를 다닌 지 10년, 아이를 키운 지는 3년이 되었고요,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와 더불어 살기 좋은 세상에 대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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