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감, 거리 전체가 피해 입어" '혐중'이 할퀸 양꼬치골목은 지금

▲21일 오전 일명 '건대 양꼬치거리'라고 불리는 자양동 중국음식문화거리의 한낮 전경. 대부분의 식당이 영업을 시작한 시간이지만 양꼬치거리는 한적했다. ⓒ 유지영

"우리는 남의 나라 와서 이래저래 말을 잘 못해요...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는..."
"외국인들이 무슨 힘이 있어요."

며칠 전 혐중 집회 참여자들과 충돌을 빚은 자양동 양꼬치골목의 중국인 상인들은 입을 다물었다.

21일 점심 시간이 가까워진 오전 11시. '건대 양꼬치거리'라 불리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 중국음식문화거리 식당들은 점심 장사를 위해 가게 문을 열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600미터 가량 이어진 양꼬치거리는 비교적 한적했다.

지난 17일, 주로 윤석열을 지지하는 청년들로 이뤄진 극우 성향 단체 '자유대학'의 회원들은 이 양꼬치거리에 난입해 "짱깨", "북괴", "빨갱이는 꺼지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노골적인 '혐중 집회'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식당 직원들과 부딪혀 한 중국인 직원이 통증을 호소하면서 병원으로 이송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간 온라인 공간에서 당사자와 대면하지 않고 혐오 발언을 해온 것과 달리 이번에는 면전에서 언어폭력을 행사해"(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 한국 사회의 혐중 정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따라왔다.

"남의 나라 와 있으니 참지... 그날 문 닫고 영업 못 했다"

이날 만난 양꼬치거리 중간쯤 위치한 한 식당 종업원은 착잡한 얼굴이었다. 한산한 식당 내부에는 양꼬치가 쟁반 가득 쌓여있었다.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왔다는 그는 "(집회 참여자들이) 하는 말 들어보니 여기서 나가라고 하더라.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장사라도 잘 되면 좋을 텐데 경제도 나쁘다"라면서 "그런 와중에 그런 사람들이 손님으로 오면 불쾌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 맞은편에 있는 양꼬치식당 사장도 격앙된 목소리로 "그날 문 닫고 더는 영업을 못 했다. 용서가 안 된다"라면서 "남이 영업하는 데 와서 (중국으로) 가라고 난리를 치는데, 남의 나라 와 있으니 참지 중국에서 (한국인들에게) 그러면 뭐라고 할 것인가?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라"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국적이 중국이라는 것 뿐 세금도 많이 낸다. 우리가 없으면 (가게)세를 받을 수도 없다"라면서 "왜 가만히 있는데 우리를 건드리는지 모르겠다"라면서 울분을 삼켰다.

하지만 그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고개를 드는 '혐중' 정서에 대해서 물으니 말을 아꼈다. 그는 기자에게 "우리는 남의 나라 와서 이래저래 말을 못한다.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는..."이라면서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양꼬치거리에 있는 대부분의 식당과 식료품 가게에서 일하는 상인들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며칠 전 양꼬치거리에서 벌어진 집회를 보았는지를 물어도 말 없이 머리를 짤래짤래 젓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했다.

소극적인 대응은 양꼬치거리 상인회도 마찬가지였다. 양꼬치거리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상인회 회장은 <오마이뉴스>에 "지난 번에 뉴스에 나온 것이 다다. 더 이상 해줄 말이 뭐가 있겠나?"라면서 "상권이 이렇게 위축돼있는 상황에서 주민들이 공포감이 있고 거리 전체가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외국인들이라 (우리가) 무슨 힘이 있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인들이 적어도 그날의 사태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증거는 거리 곳곳에서 보였다. 일부 식당은 당일 촬영된 영상을 경찰서에 제보하고 대응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양꼬치거리의 한 식당 상인은 취재에 응하지는 않았으나 그날 양꼬치거리에서 벌어진 집회를 촬영한 한 유튜브 채널의 영상을 시청 중이었다.

"극우세력이 골목으로 진입한 순간 폭력이 발생한 것으로 봐야"

▲17일 오후 윤석열을 지지하는 청년들이 모인 단체 '자유대학'이 주최하는 '사전투표 폐지 및 부정선거 검증 촉구 시위'에서 참여자들이 "윤어게인", "부정선거는 선관위" 같은 손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 ⓒ 유튜브 영상캡처

전문가들은 양꼬치거리에서 일어난 혐중 집회에 대해 "심각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송은정 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은 21일 <오마이뉴스>에 "젊은 청년들로 이뤄진 혐오세력이 조직화되어 행동에 나서는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17일 (중국인이 많은) 대림동으로 와달라'는 (유튜브 '자유대학'의) 라이브 영상 댓글도 많았다"라면서 "이주민 밀집지역이 혐오세력의 타깃이 되고 있는데 이곳을 그들의 놀이터로 만들 수 없다. 거리에서 이주민을 향한 연대와 환대의 메시지를 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전했다. 이주민센터 '친구'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자리하고 있다.

송 센터장에 따르면 "이전에 이주민 혐오를 표현했던 이들은 이주민과 접촉하는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였다면 이제는 정치권의 필요에 의해 혐중을 이용해 젊은 극우세력들이 조직화되어 폭력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17일 오후 윤석열을 지지하는 청년들이 모인 단체 '자유대학'이 주최하는 집회 이후 이어진 행진. 집회 참여자들은 당초 신고된 집회 장소에서 벗어나 '건대 양꼬치거리'로 향해 '혐중 집회'를 벌였다. ⓒ 시민 제보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은 "개인적으로 놀란 건 거리에 이주민인 당사자들이 많았을 텐데, 시위대가 혐오스러운 노래나 구호를 스스럼없이 외쳤다는 것"이라면서 "그간 이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당사자와 대면하지 않고 혐오를 재생산해 왔는데 면전에서 언어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극우세력이 급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박 소장은 이날의 혐중 집회에 대해 "한국에서는 오히려 잠잠했고, 샤오홍수(중국의 SNS)에서는 한국(으로 온 중국) 유학생들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집에 가만히 있자'거나 '조용히 하자'는 댓글들이 많았다"라면서 "피해를 증언하려면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데,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이주민들은 피해를 본 순간 오히려 더 숨어들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박 소장은 "물리적인 위해로 이어질 수 있는 집회가 계속 됐으나 사전에 경찰의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극우 세력이 골목으로 진입한 순간 폭력이 자행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라면서 "자신을 '짱깨'라면서 욕하는 이들이 무리를 지어서 난동을 부렸는데 경찰은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로 접근하면서 시시비비를 따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 오후 윤석열 지지자들은 '자유대학'에서 주최한 '사전투표 폐지 및 부정선거 검증 촉구 시위'를 벌이면서 서울지하철 2호선 뚝섬역에서부터 건대입구역 부근까지 "윤어게인(YOON AGAIN)", "부정선거는 선관위"와 같은 손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이날 집회 신고는 오후 8시 뚝섬역 5번출구에서 건대입구역 6번 출구까지 돼있었으나 이들은 예고하지 않고 양꼬치거리로 난입했다.

이날 집회가 끝난 뒤 일부 참여자로 추정되는 지지자들은 양꼬치거리의 한 식당의 구글지도(Google Map)에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서 '별점 테러'를 가하는 등 온라인 상에서도 행동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