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꽃 피는 계절입니다. 아파트 정원에 핀 꽃을 보며 옛날 우리 집 마당에 직접 심었던 나무가 생각나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내 기억 속에선 자라고 있는 나무입니다. 추억은 현재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풍요로움을 선물하고 싶어요.

▲라일락꽃호수와 어우러진 꽃을 보며 옛날을 회상하다 ⓒ 최명숙
이맘때 고향집엔 라일락 향기가 온 집안을 에워싸곤 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 향기를 직접 맡아본 적 없다. 라일락나무를 심은 사람은 나인데도.
친정어머니께 전화로 꽃이 피었느냐고 묻곤 했다. 그러면 집안뿐 아니라 온 동네에 꽃향기가 풍긴다는 과장된 대답을 듣곤 했다. 사는 게 얼마나 바쁘면 그 좋아하는 라일락이 피어도 못 오느냐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그렇다, 나는 참으로 바쁘게 살았다. 며칠 전 아파트 정원에 라일락꽃이 핀 것을 본 뒤 떠오른 추억이다.
내 친정 고향집에 있던 라일락은 내가 결혼하기 두 해 전에 심었다. 이웃집 아저씨가 묘목 한 그루를 주셨는데, 뒤란에 심을까, 화단에 심을까 고심하다 앞마당 낮은 담장 무너진 곳에 심었다. 라일락이 담장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내 짐작은 맞았다.
라일락은 차츰 자라서 무너진 곳을 메워주었다. 마루에 앉아서 라일락 향기를 맡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꽃이 피기 전 결혼하는 바람에 그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번도 못 본 꽃... 라일락을 보러 나섰다
결혼 십 년이 흐르고 이십 년이 흐를 동안 단 한 번도 꽃필 때 맞춰 친정에 가지 못했다. 사느라고, 내 살림을 일구느라고, 내가 직접 심은 라일락 꽃 향을 맡아보지 못했다. 꽃이 필 때쯤이면 전화로 어머니께 묻기만 했다. 뭘 자꾸 묻기만 하느냐고, 직접 와서 보면 되지 않느냐는 어머니의 안타까운 말씀도 외면하고, 나는 무슨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느라 못 가봤을까.
어느 해 여름에 갔더니 라일락나무는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 후로 꼭 꽃필 때 찾아가 보리라 결심했다. 보랏빛 꽃송이를 달고 향기 날릴 라일락을 만나리라. 수수꽃다리, 리라꽃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도 불리는 꽃, 라일락. 생각만 해도 향기가 나는 것 같은 꽃. 고향집 마루에 앉아 앞산 바라보며 꽃향기를 맡고 싶었다. 그런 날이 있으리라 믿었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라일락 묘목을 심은 지 이십 년이 훌쩍 지난 어느 해 사월, 고향집에 갔다. 먹고사는 게 걱정 없을 정도로 가정경제가 나아졌고, 하고 있는 일에도 관록이 붙었으며, 어릴 적부터 가졌던 꿈도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을 즈음이었다.
집 앞부터 꽃향기가 나를 에워싸리라. 꽃 속에 파묻혀 사진을 찍고 꽃처럼 환하게 웃어보리라. 설레는 마음을 가만가만 누르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미소 지으며 고향집에 다다랐다.

▲어머니와 딸(자료사진). ⓒ ballonandon on Unsplash
그런데 그리웠던 친정집에 들어서는 순간, 무너진 담장이 보였다. 그 가운데 서 있던 무성한 라일락나무는 없었다. 사철나무는 그대로 있을 뿐 아니라 더 많이 퍼졌는데, 라일락나무만 없었다. 휑한 그 자리에 베어낸 자국만 상처처럼 남아 있었다. 가슴이 털썩 내려앉는 듯했다. 라일락 꽃핀 걸 보려고 왔는데 한 번도 못 본 채, 이미 베어졌다니.
기대했던 꽃을 못 보는 것도 서운했지만 친정에 두고 온 또 다른 나의 존재가 사라진 느낌이 들어, 갑자기 기운이 쏙 빠졌다.
듣고 보니, 나무가 너무 무성해져 시야를 가로막는다는 게 이유였다. 마루에 앉으면 앞이 툭 터져서 훤히 보여야 하는데, 라일락 가지와 잎사귀 때문에 멀리 보이는 신작로에 차 지나가는 것과 앞산이 잘 안 보인다는 거였다. 이해했다. 할머니와 어머니, 함께 사는 두 노인에겐 그럴 만했다. 그러니 서운하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말았다. 자주 찾아가 뵙지도 못하는 불효에 내 불만을 더 보탤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을 하지 못했으나 두고두고 서운했다. 심어 놓고 단 한 번도 꽃향기를 맡아보지 못한 분주한 삶이 야속하기도 했다. 자란 라일락나무를 보았기 때문에 얼마나 꽃송이가 얼마나 주렁주렁 달렸으리란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라일락나무가 베어진 지 이십 년도 더 지났다. 아, 그 이십 년이란 세월은 왜 이다지도 금세 흐르는 걸까. 그래도 라일락꽃만 피면 어김없이 이 생각이 난다.
어머니가 나무 베어버린 이유, 이래서였구나
서운한 마음을 내색하지 못하다가 몇 년 전에 어머니께 조심스레 내비쳤다. 왜 그 아까운 라일락나무를 베었느냐고, 지금쯤은 고목이 되었을 나무라고. 어머니가 딸이 직접 심은 나무를 베다니, 그때 나 서운했다고.
"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뭐 하냐. (결혼한 딸은 집에) 단 한 번도 오지 못하는 걸. 꽃을 볼 때마다 부아가 나서 원... 다 베어버리고 나니 속은 시원하더라."
꽃이 피면 내가 올 것으로 믿고 기다렸던 어머니의 마음을 그제야 제대로 이해했다. 그러니 서운한 마음을 훨훨 날려버릴 수밖에.

▲라일락꽃아파트 정원에 핀 꽃 ⓒ 최명숙
아파트 정원에 라일락꽃이 피었다. 향기로운 라일락향을 맡았다.
고향집 라일락도 그대로 있었다면, 꽃이 피어 홀로 계신 어머니 가슴을 가만가만 어루만져 주었으리라. 아니다. 그 가정보다도 조만간 고향집에 가서 어머니를 만나 그 마음을 직접 어루만져 드리고 와야겠다.
그리고 지금은 흔적조차 없는 라일락 있던 자리에 서서,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있다고, 한 번도 꽃핀 모습을 못 봐서 미안했다고,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그 라일락나무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