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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2021년 개봉)의 주인공 진아는 카드사 콜센터상담원입니다. 어느 날, 어이없는 질문을 던지는 고객이 전화를 걸어옵니다.

"내가 타임머신을 만들어서 2002년으로 시간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지금 쓰고 있는 카드가 그때도 사용 가능한가요?"

그 질문은 황당하지만, 그는 꽤 진지합니다. 진아하고 수습 중인 신입 상담원이 매뉴얼에 없는 돌발행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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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2002년인가요?"

고객은 이렇게 답합니다.

"그때는 모두가 광장에 모여 월드컵 축구 경기를 응원하고, 서로 얼싸안으며 기뻐했잖아요.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지금은… 나 혼자예요."

그의 말은 어딘가 짠하게 들립니다. 월드컵 열기가 국민적 단합을 이끌어낸 건 분명하죠. 그 속에서 위안과 힘을 얻은 이들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진짜 '공동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런 식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을까요?

국가대표 경기를 응원하던 사람들 사이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모인 일시적 공동체가 있겠지만, 그다음은 무엇이 남았을까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도 타인의 노동에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단 한 순간도. 그렇다면 모든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 일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존엄을 배려하는 가운데에서야 비로소 '진짜 공동체'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혼자 사는 사람들'은 정말 공동체를 원할까?

'혼자 살기'가 늘었습니다. 독거노인뿐만 아니라 1인 가구도 많아졌고, 사회적 관계 형성에서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인 일자리도 플랫폼노동, 1인 자영업자, 프리랜서, 호출노동, 0시간 계약, 이른바 '가짜 3.3'처럼 관계성이 희박한 형태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동료라는 개념은 점차 사라지고 '혼자 하는 일'이 늘어만 갑니다. 영화 속 진아는 가족과 단절하고, 점심도 혼자 먹고, 퇴근길엔 유튜브로 세상을 만나고, 편의점 도시락을 사서 집에 가 TV를 보는 반복된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던 그녀가 일주일 만에 퇴사한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고백합니다.

"사실 나 혼자 밥 못 먹는 거 같아요. 잠도 못 자고, 버스도 못 타고, 담배도 못 피우고, 사실 전 혼자 아무것도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냥 그런 척하는 것뿐이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어요. 잘 가요…."

그렇게 진아는 '함께 살기'를 위한 작은, 그러나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사실 '혼자 살기'는 강한 독립성의 표현이라기보다 주류에서의 배제나 사회성 부족으로 비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함께 살기'를 대안으로 제안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고용-피고용 관계 안에서 해결될 수 있을까요? 단체협약을 체결한다고 다 해결될 수 있을까요? 물도 수소와 산소만 있다고 결합되지 않듯, 진짜 공동체도 그저 존재한다고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 사이엔 '에너지'가, 연결을 위한 '조건'이 필요합니다.

언제든지 원하면 연결될 수 있는 따뜻한 공동체

'노동공제연합 (사)풀빵'에서 시도했던 '풀빵 금고'는 이런 맥락에서 설계했고, 시행 3년, 의미 있는 성과를 확인했고, 이제 2기를 시작합니다. '풀빵 금고'는 '소액 대출'을 위한 공동기금으로 약 4억 원 규모로 조성되었습니다. 시민 누구나 100만 원을 기본 단위로 해서 3년 동안 무이자로 맡겨준 돈으로 조성한 겁니다. 그리고 필요한 이들은 언제든, 어떤 사유든 상관없이 이 금고에서 150만 원까지 가져다 쓰고 3%의 이용료를 더해서 다시 채워 놓는 방식입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367명이 약 6억 원을 이용했습니다. 모은 돈보다 1.5배의 이용 효과를 본 셈입니다. 사용 사유는 일일이 통계를 내지는 않았지만, 회원 조직의 평가와 지난해 성과보고회를 위한 조사 결과는 한마디로 모아졌습니다. "기댈 언덕 같았어요."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손실률이 '0'에 가깝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증명 하나가 생겼습니다. '혼자 살기' 하는 이들이, 이 공동 금고를 통해 실제로 '연결'을 경험했고, '함께 살기'를 실현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공동 금고를 이용하기까지 안타까운 사연들을 이 글에 담을 순 없습니다만, "이게 나라냐"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제 '소액 대출' 3년 평가 의견을 모아서 '금고 이용 상담', '생활경제상담'을 도입하고 한도액도 300만 원으로 늘리고, 금고 이용 기간도 24개월까지 늘리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4월 11일 풀빵 금고지기 2기 모집을 시작한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1기와 마찬가지로 개인이나 단체가 100만 원을 기본 단위로 3년간 풀빵 금고에 공동 이용재로 맡겨주시면 됩니다. '함께 살기'는 연결될 수 있는 통로와 터전이 마련되어야 비로소 시작됩니다. 그 '따뜻한 공동체'를 함께 만드는 데, 소중한 손길을 기다립니다.

#혼자살기#공동체#풀빵금고#연결#함께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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