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 도시 쇠퇴, 지방 소멸 등 복합 위기에 처한 지역/지방을 살리려면 어떤 조치가 따라주어야 할까. 사회적금융연구원은 3.17일 국회에서 열린‘지역경제 활성화 전략 포럼’에 참여했다. 이글은 이번 포럼에서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 방안을 소개할 예정이다.
두 친구가 산을 오르고 있었다.
시냇가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상류 쪽에서 작은 나무통이 떠내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 뛰어들어 안을 살펴보니 통 안에 갓난아이가 있었다. 둘은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나무통을 밖으로 건져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나무통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정신없이 나무통을 건졌다. 체력이 바닥이 나면서 한계상황에 이를 무렵, 한 친구가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자네는 여기서 아이들을 건져내게. 나는 이 나쁜 짓을 하는 놈을 잡으러 갈 테니."

▲시도별 위험소멸지수 값 (2024.3월 기준)지방소멸 2024, 광역대도시로 확산되는 소멸위험 ⓒ 한국고용정보원
위 그림은 시도별 지역소멸 위험을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소멸위험지수는 20~39세 여성 인구수를 65세 이상 인구수로 나눈 값으로 측정되는데, 값이 0.5 미만이면 위험진입단계, 0.2 미만이면 고위험단계로 구분된다. 2024년 현재,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8개 지역(진한 녹색)이 소멸위험에 진입한 것을 알 수 있다.
시군구 단위로 보면, 228개 시군구 중 소멸위험에 접어든 지역은 130곳(57.0%)에 달한다. 이 중 57곳은 위험지수 0.2 미만인 고위험 지역이다. 시군구의 25%가 이미 고위험단계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바이러스가 퍼지듯, 위험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기초는 말할 것 없고 광역도 더는 안전지대가 아니다.
우리는 이 위험에 잘 대처하고 있을까.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학자, 전문가, 정치인, 관료를 포함해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의 역학이 그려내는 우울한 지표들은 우리 사회의 대응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행정수도복합도시 건설, 공공기관 지방 이전, 혁신도시 지정, 균형발전특별회계 증액, 지방소멸대응기금 운용, 지역활성화투자펀드 결성 등 지난 20년간 지역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실행됐지만, 사정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상황은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
지자체들의 눈물 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의 힘만으로는 제방을 넘어 밀려오는 소멸의 파고를 막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구멍 난 곳을 메우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크다는 뜻이다. 소멸 예방을 위해 할당된 지원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의심되는 사례도 여럿 발견되고 있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일본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인구 감소를 막지 못하면 지자체의 약 절반이 소멸 위기에 처하게 될 거라는 충격적인 보고서(2014, 增田寬也)가 제출된 직후부터 일본 정부는 마을·사람·일자리 창생법(まち・ひと・しごと創生法)을 제정, 문자 그대로 지역을 살리기 위한(創生) 전방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일본 정부가 최근 작성한 평가보고서(2024/내각부)에 따르면, 인구가 늘어난 지역도 있지만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는, 이른바 '일극(一極) 집중' 현상은 바뀌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를 찾아 중심도시로 인구가 이동하는 현상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국회 연설(24.10.4)을 통해 지방창생 정책이 유의미한 성과를 창출했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며 "지방창생 2.0을 가동한다"라고 밝혔다. 방향을 유지하되, 속도를 더 높이겠다는 것이다. 지방을 살리기 위해 매년 15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변화의 속도는 거북이처럼 더디다.
일본경제연구센터 이찬우 특임연구원은 "고향납세를 포함해 일본 정부의 지방창생 정책이 가동되지 않았다면, 청년층 이탈 등 소멸 진행 과정은 훨씬 빨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방창생 정책이 감소와 이탈속도를 완만하게 줄이는 제동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래 그림은 한국과 일본의 합계출산율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파란색이 한국, 빨간색이 일본이다. 두 나라 모두 우하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23년 기준,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0.48명이다. 인구 통계에서 0.1명의 차이는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 일본 합계출산율 (2019∼2023)Society at a glance : OECD Social Indicators ⓒ 문진수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인구 감소가 지방 소멸을 부추기고, 지방 소멸이 인구 감소를 촉진한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이 복합 위기는 오랫동안 누적된 원인의 결과물이며 따라서 대증요법, 즉 겉에 드러난 병증(病症)을 다스리는 접근법으로는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총인구의 90.8%가 6.7%의 땅에 몰려 있고(2022, 통계청),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저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위기를 대하는 태도는 가볍고, 태평해 보인다.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할 정부는 떠내려오는 아이를 건져내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고, 악당을 잡으러 강 상류로 달려가는 용기 있는 정치인은 눈에 띄지 않는다.
너나없이 위기를 말하면서도, 환부에 약을 발라 상처를 감추거나 진통제를 투여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모면하려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개혁과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내놓는 정책 수준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이미 임계점을 넘어 백약이 무효하다는 '심리적 절망'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아픈 환자를 치료하려면 병의 뿌리를 찾아 도려내는 수술을 감행해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한다. 우리 사회가 이 고통을 이겨낼 회복력을 가지고 있을까. 분명한 사실은 병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은 채, 병증에 집착하는 의사는 환자를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는 것이다.
침몰하는 배 위에서 탁자를 정리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덧붙이는 글 | 문진수 기자는 사회적금융연구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