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기사수정 : 30일 오후 5시 3분]

▲나경원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페이스북 캡처 ⓒ 나경원 후보 페이스북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고...'" - 가톨릭 성경, 이사야서 제29장 13절 중에서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 중인 나경원 후보가 지난 19일, 명동대성당에서 부활절 전야 미사에 참석했다. 그는 이날 늦은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사에 참석한 사진을 올리며 "부활절을 맞아 명동성당에서 파스카 성야 미사에 참석했다"라며 "십자가의 고난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의 은총을 기억하며, 혼돈의 시대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희망의 빛을 느낀다"라고 적었다.
이어 "부활의 기쁨이 우리 국민에게 치유와 회복으로 이어지길 간절히 기도한다"라고도 덧붙였다. 그가 올린 사진에는 같이 경선에 참여 중인 김문수 후보(전 고용노동부 장관)과 권성동 원내대표도 함께였다.
나경원 후보(아셀라)는 천주교 신자이고, 김문수 후보(모세)는 개신교로 개종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성동 원내대표의 경우 과거 '요셉' 세례명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 바 있지만, 실제 교적에는 '비신자'로 등록되어 있다. 대신 배우자가 천주교 신자이다. 가톨릭 대축일을 앞두고 신자인 혹은 신자였던 정치인이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번 미사 참례와 SNS 포스팅은 다분히 모욕적이고 이율배반적이다. 한국 천주교는 지속적으로 12.3 내란사태를 비판하고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의 탄핵에 찬성해왔다.
내란을 옹호하고 윤씨 보위에 앞장 섰던 이들이 무슨 낯짝으로 '희망의 빛'과 '부활의 기쁨'을 운운하는지 알 수가 없다. 국민들이 "혼돈의 시대" 속에서 그들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해왔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경원·김문수·권성동, 국민이 기억하는 그들의 행태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모임에서 나경원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나경원 후보는 김기현·윤상현 의원과 함께 앞장 서서 윤씨의 탄핵 반대를 외쳤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민주당 지지자 탓이었다고 책임을 돌리는가 하면, 비상계엄 자체는 옹호하지 않는다면서도 지속적으로 윤씨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듯한 언행으로 도마에 올랐다.
헌법재판소를 지속적으로 흔들며 "사기 탄핵" 운운한 것은 누구였나? "국정마비의 공범"이라고 몰아세우며 "존폐의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라고 겁박한 것은 누구였나? 윤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막기 위해 '인간 방패'가 되었던 것도 그이고, 탄핵 기각·각하를 요구하며 두 차례의 국민의힘 국회의원 탄원서를 주도해 제출한 것도 그이다. 이제 와서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덤이다.
이같은 공을 인정 받아, 나 후보는 윤씨와 별도의 차담까지 비공개로 할 수 있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장 시절, 친윤계로부터 집단 '린치'를 당하며 전당대회 출마가 좌절됐던 때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그가 지난 14일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윤씨의 탄핵에 반대한 것을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렇게 '윤심'을 얻은 그는 이를 바탕으로 이번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설 수 있었고, 지금도 가장 적극적으로 '윤심'을 팔아 극우층 집결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하는 선거운동이라는 것은 결국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나 공유되던 '드럼통' 밈을 빌려와 공론의 장을 더럽히는 작태에 지나지 않는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지난 2024년 12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윤석열 대통령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 내란행위 관련 긴급 현안질문에서 12.3 윤석열 내란 사태에 대해 허리 숙여 사과했다. 이날 서영교 더불어민주당(서울 중랑구갑) 의원이 “이제 와서 윤석열의 쿠데타를 막지 못했다고 사과하는 것은 참으로 비겁하다”라며 “다시 한 번 국민 앞에서 허리를 90도 굽혀 사죄하라”고 한 총리와 국무위원들에게 요구했다. 한편,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끝까지 자리에 일어나지 않았다. ⓒ 유성호
국무위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막지 못했음에도 일어서서 사과하기를 거부한 김문수 후보도 별다를 게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정도의 어려움에 처했다"라고 선언한 후부터, 그를 떠받들고 있는 지지율의 기반은 결국 탄핵에 반대해온 윤씨 지지층이었다. 이를 의식한 듯 지난 19일 국민의힘 경선 후보 A조 TV토론에서도 "비상계엄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그 사정, 안타까운 사정에 대해서는 책임이 민주당에 있다"라는 궤변을 늘어 놓았다.
탄핵소추안 표결 저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던 권성동 원내대표도 주요 부역자 중 한 명이다. 대통령 박근혜 탄핵에 앞장선 2017년의 자신과 싸워가며 탄핵 절차를 흔들더니, 경찰 탓을 하며 서부지방법원을 침탈한 폭도들을 옹호했다.
심지어 윤씨가 파면된 이후 "국민께 죄송하다,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라는 현수막을 내건 이유에 대해 <뉴스타파> 기자가 질문하자, '일시 취재증'을 달고 온 기자에게는 답하지 않겠다며, 답변 거부를 넘어서 아예 기자의 손목을 강제로 끌고 가는 폭거마저 저질렀다. 권 원내대표는 이에 대한 사과도 거부한 채 "비상한 조치"를 운운하며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너 어디 있느냐"는 부름에 응답하지 않은 이들, 회개는 했는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지난 3월 31일 저녁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윤석열에 대한 헌재의 조속한 파면 선고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하고 있다. ⓒ 이정민
반면, 한국 천주교계는 정의의 편에서 반민주주의적인 윤씨의 행태를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직후 전국 13개 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남·녀수도회 장상연합회는 "대통령 탄핵을 조속히 진행시켜 줄 것을 국민의 대표이자 국민의 권력 위임기관인 국회에 요구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암브로시오) 탄핵과 내란죄 처벌을 요구하는 천주교인 7335명과 53개 천주교 단체'는 2차 탄핵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두고, 가톨릭 성경 창세기 제3장 9절 "너 어디 있느냐"를 외치며 국민의힘 소속 천주교 신자 의원들을 호명했다. 윤씨 탄핵에 천주교인 정치인이 앞장서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국민의힘 인사들은 응답하지 않았다.
로마 바티칸의 유흥식 추기경(라자로)의 지난 3월 담화문도 신자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위기의 대한민국을 위한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헌법재판소에 호소한다"라는 유 추기경은 "되어야 할 일은 빠르게 되도록 하는 일이 정의의 실현이며 양심의 회복이다. 우리 안에, 저 깊숙히 살아있는 정의와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면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고통에는 중립이 없다"를 인용하며 "이와 마찬가지로 정의에는 중립이 없다. 우리 헌법이 말하는 정의의 판결을 해주시라"라고 촉구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역시 시국미사를 열고 "헌법재판관들이 국민을 생각하며 윤석열을 하루빨리 파면시킬 수 있기를"이라고 기도했다. 심지어 한국천주교주교회의조차 "헌재와 재판관에 대한 불신은 사회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라고 에둘러 경고하기까지 했다.
이외에도 12.3 내란 사태 이후, 탄핵소추안 표결과 헌법재판소의 심판 전후로 한국 천주교계의 다양한 단위에서 정의의 실현을 부르짖었다. 이번 부활절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당초 부활절이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전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신자들에게 이번 부활절은 단순히 신앙과 영성 면에서 부활의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탄핵 이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그리스도의 공의가 실현되는 세상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부활절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가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었음을 의미하는 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에게 새로운 생명과 구원의 희망이 주어졌음을 상징하는 날에 아무런 반성도 없는 정치인들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자신의 죄를 참회하지 않고 대축일 성전에 참례하는 건 신앙적으로도 죄이다. 그래서 부활절 전야 미사에 참석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에게, 모욕감을 느낀 신자 중 한 사람으로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셀라·요셉·모세 형제자매님들, 고해성사는 보셨습니까? 윤씨를 옹호하고 불의의 편에 서서 삿된 말로 민심을 어지럽힌 데 대해 참회하셨습니까? 보속은 받고 실행하셨습니까? 그런 최소한의 절차도 지키지 않은 채 다가오는 선거를 앞두고 사진 한 장, 기사 한 줄 나가기 위해 성전에 더러운 발을 들이밀었습니까?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 가톨릭 성경, 마태복음 제23장 2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