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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러리 현대 55주년 특별전
갤러리 현대 55주년 특별전 ⓒ 전사랑

한국 최초 갤러리의 시작, 현대 화랑

국내 첫 상업갤러리, '갤러리 현대'에서 <55주년: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1970년 '현대 화랑'으로 처음 개관 했을 당시, 인사동은 골동화나 고서화 판매하는 곳들이 주를 이뤘다. 미술품을 '사고 판다'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 화랑주가 27세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더더욱 놀랍다.

창업자는 박명자 회장. 그는 2010년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갤러리를 열게 된 배경에 대해 아래와 같이 밝힌 바 있다. 당시 반도호텔에는 반도 화랑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박수근의 소품을 보고 사랑에 빠졌고 이후 반도 화랑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 작가들의 사랑방이나 다름없었던 반도 화랑에서 김기창, 도상봉, 천경자, 박수근과 같은 한국 미술 원로들과 친분을 쌓게 되었는 것. 그러다 작가들의 권유로 인사동에 현대화랑을 개관했다는 것까지.

이후 현대 화랑은 개관 전이었던 <박수근 소품 전>, 1972년 <이중섭 유작전>, 1973년 <천경자전>을 성공리에 마치며 한국 현대 미술사에 빠질 수 없는 전시를 대중에 소개해 왔다. 나아가 백남준, 김창열, 이우환 등 유럽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을 적극 지원하고 한국에 소개하면서, 한국현대미술의 앞날을 내다봤다. 그렇게 한국의 현대미술의 역사와 함께 해 온 갤러리의 명성에 걸답게, 지난 8일부터 5월 15일까지 열리는 55주년 특별전은 한국 거장들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전시였다.

<55주년: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 본관은 1941년 이전 출생한 한국 1세대 모더니스트 작가들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등 현대미술에서 구상회화로 한국적 정체성을 찾아간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신관에서는 2세대 화랑주 도형태 부회장이 관여해, 한국 실험미술 작가들을 소개했다. 백남준, 이건용, 이강소, 성능경 등 12명의 한국 실험 미술 작가들의 미디어아트, 추상표현주의 등으로 구현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작가들의 작업들 중에서도 눈길을 끌었던 몇몇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한국의 인상파 화가, 오지호

 오지호, <항구>, 1981
오지호, <항구>, 1981 ⓒ 전사랑

청명하고 푸른 한국의 자연. 세잔의 산보다 푸른 한국의 산, 그리고 청명한 바다. 오지호는 맑고 밝은 자연이 조선 고유의 특성이라 보았다.

그는 서구의 인상주의를 적극 수용해 '우리의 자연'을 현대적 화풍으로 담았다. 자연에 대한 오지호의 애정은 남달랐다. 위출혈, 빨갱이로 몰려 옥살이 등 순탄치 않은 삶은 산 화가는 죽음 앞에서도 "나는 살고 싶었다. 살아서 이 아름다운 자연을 다시 그리고 싶었다"라고 고백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족 없이 남의 집 양자로 떠돌던 오지호에게 이렇게 맑고 푸른 한국의 자연이야말로 가족이고, 고향이었을 것이다. "생물의 형상이 곧 생명이고, 그 생명의 체험이 곧 미가 된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는 자신의 몸소 체험한 생명력이 넘실대는 한국의 자연을 화폭에 담았다.

 오지호, <계곡추색>, 1976.
오지호, <계곡추색>, 1976. ⓒ 전사랑

김환기의 산과 달

 김환기 작품들
김환기 작품들 ⓒ 전사랑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그만두고 1956년 파리로 간 이후, 김환기는 달, 산, 백자, 학 등 전통적인 소재를 푸른색으로 그렸다.

신안군 기좌도에서 태어난 그에게 푸른색은 한국의 색이었고 그는 파리에서도 "조각달이건 만월이건 동창에 달이 뜨면 그만 고국 생각이 간절해진다. 아, 보고 싶은 사람이며 그 산천들"이라고 그리워하며 프랑스에서도 한국의 자연을 현대 추상회화로 담아내는 것에 몰두했다.

이번에 전시된 김환기의 세 점의 작품은 이 "파리 시기" 전후에 그려진 그림이다. 1954년작 <답교>와 1957년 작 <산월>을 비교해 보면 그의 산과 달, 나무가 점점 추상으로 나아가 단순화되는 작업을 확인할 수 있다.

진정한 신여성의 자화상, 박래현의 <새>

박래현은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신여성이었다. 그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청각 장애가 있는 화가 김기창과 결혼할 때,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의 예술에 대해 간섭하지 말 것을 약속했다고 한다.

각자의 예술세계를 존중해 부부 전을 꾸준히 개최할 정도로 결혼해서도 자신의 작업을 이어나갔지만, 그녀도 역시 네 아이의 엄마였다. 낮에는 양육을 하고 밤에 작품 활동에 매달린 박래헌에게 밤은 '엄마'에서 '화가 박래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법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 까. 그는 검은색을 좋아했고 까만 밤을 사랑했다고 한다.

 박래현, <새>, 1956.
박래현, <새>, 1956. ⓒ 전사랑

이번에 전시된 <새>를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새장 속에 있는 새들이 화가 자신은 아니었을 까. 그녀는 까만 새 한 마리를 꺼내 들고 허공을 응시한다. 자유롭게 날아오르지 못하는 새장의 새들을 보며 자신을 이입했을까.

다행히도 이후 박래현은 1969년부터 7년간 미국유학길에 올라서 판화에 몰두하면서 작업에 새로운 기법을 모색했다. 그래서인지 박래현의 1960~1970년대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자신을 뜨겁게 성장시켜 날아오른 과정이 보인다. 박래현의 <새>에 눈길이 간다면, 그의 후기작도 꼭 찾아보길 바란다.

이강소의 밝고 맑은 빛깔들

 이강소의 작품.
이강소의 작품. ⓒ 전사랑

신관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은 이강소의 작품이었다. 1970년대부터 비디오아트, 퍼포먼스, 설치작업, 판화 형식 실험, 추상 표현주의 작품 등 자유롭게 매체를 넘나들고 실험적 작업을 해온 이강소. 그는 계획적인 생각을 배제하고 획을 그려가면서 응축된 에너지와 무한한 기운, 상상력을 표출한다. 그렇게 풀어낸 다양한 색들을 따라가다 보면 무지개 빛을 만나기도 한다. 존재를 비워내고 직관에 따라 옅게 칠해진 색채들은 관람객에게 무한하고 자유롭게 다가가 더욱 밝고 맑게 빛난다.

성능경의 '신문 읽기'

성능경의 작품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오린 신문을 들고 있다. 각기 다른 언어로 오린 신문을 들고 포즈를 취한다. 신문, 사진, 행위예술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한국 1세대 행위예술가 성능경은 1970년대 유신시절부터 '신문 오리기' 작업을 통해 언론 탄압을 비판해 왔다.

그의 '신문 오리기 작업'은 시대에 따라 변모해 왔다. 2023년에는 100명의 외국인과 '신문 오리기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군부 탄압에 저항하는 퍼포먼스를 관객 스스로 편집하고, 재해석 하고, "잘라낸 신문"이라는 또 다른 예술을 만들어 내는 퍼포먼스로 확장시킨것 이다. 이를 통해 보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2024년 12월 계엄령이 터진 날, 작가의 신문은 또 어떤 예술 작품이 되었을 까. 그 결과물도 전시에서 확인해 보자.

5월 15일까지 열리는 1부 전시에 이은 2부 전시는 5월 22일부터 6월 29일까지. 무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서울전시#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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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을 공부하러 영국에 갔다 미술에 빠져서 돌아왔다. 이후 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에 관련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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