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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성장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김나희를 처음 만났다.
농성장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김나희를 처음 만났다. ⓒ 조용미

"새만금 신공항은 조류충돌위험도가 무안공항의 636배입니다!"

대전광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발언을 하나 꼽자면 바로 이거다. 제주항공참사가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더 충격적이었다.

조류서식지에 공항을 지으면 조류충돌 위험 때문에 새들은 몰살 위험에 처하게 된다. 먹이가 있는 갯벌을 시멘트로 발라버리고, 폭음이나 맹금류 소리를 내서 새들이 날아오지 못하게 하고, 둥지를 파괴하고, 그래도 오면 페인트를 쏴서 괴롭히거나 총으로 쏴서 죽인다. 사람이 아무리 막는다 해도 새들은 이동경로니까 지나갈 것이고 서식지니까 찾아올 수밖에 없다. 결국 인간도 재난을 입게 된다. 그러니까 조류서식지에 공항을 짓겠다는 건 사실상 인간의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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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환경운동가들이 현실정치를 조금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장의 생계, 당장의 정치지형이 얼마나 중요한지 간과하는 것 같았다. 근데 누가 더 현실적이지 않은지 모르겠다. 그들은 바로 내게 닥칠 위기를 막는 일에 매달리고 있었다. 대전에 사는 내게 닥칠 위협이 아니라고? 우리 모두는 이미 세월호 유족인데?

김나희는 '생명들'을 덕질한다. 도요새, 맹꽁이, 돌고래 등등 그는 어릴 때부터 인간이 아닌 생물들에게 마음이 갔고 그들의 지혜를 배우고 싶었다. 대학 때 환경운동 동아리에서 그들과 조금 가까워졌고,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투쟁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생명들을 '만났다'.

"제가 지금껏 알고 있던 세상보다 훨씬 넓은 세상을 만났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이롭고 신비로운 세상이었어요."

도요새는 시베리아·알래스카에서 호주·뉴질랜드까지 쉬지 않고 날아간다고 한다. 7~8일간 먹지도 자지도 않는다. 다시 다시 북극지방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새만금 등지에서 쉬어 가는데, 뉴질랜드에서 오는 동안 몸무게의 40%가 줄어들어 있다. 여기서 잘 먹고 잘 쉬어야 다시 알래스카까지 갈 수 있는데 갯벌이 없어지면 그대로 죽는 거다. 붉은어깨도요가 그렇게 93%나 몰살당했다. 그 현장을 본 외국의 조류학자는 트라우마가 생겨 다시는 한국에 오지 않는다고 한다.

"알래스카에서 번식을 하고 부모 새들이 먼저 출발하면 아기새들이 1-2주 후에 따라오는데 놀랍게도 난생처음 가는 길을 알아서 와요. 인간은 기껏해야 몇 킬로 반경을 내다보며 살잖아요. 근데 도요새는 지구의 반이 자기 집이에요. 전지구적인 존재죠. 고래는 바다 전체가 자기 앞마당이에요. 몇 천 킬로가 떨어져 있어도 그들끼리는 소통이 되거든요."

도요새나 고래를 구한다는 건 지구를 구하는 일이고, 지구를 구해야 도요새와 고래가 살 수 있다.

그런 경이로운 존재들을 살리기 위해 환경단체가 농성을 하고 종교계가 삼보일배를 하며 막아섰지만, 결국 새만금방조제는 건설되었다. 자본과 권력에 의해 생명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직면하면서 김나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새만금을 떠났다. 그쪽은 아예 꼴도 보기 싫었다.

3년 전인가, 그는 아직도 새만금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방조제로 많이 감소했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은 생명들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개발주의자들이 남은 생명들까지 깡그리 없애고 공항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다시 생명들을 지키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는 지금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홍보국장이다.

"원래는 새만금 잼버리 대원들을 논스톱으로 실어 날라야 한다는 이유로 공항을 짓겠다고 했어요. 근데 잼버리는 이미 폭망했잖아요. 핑계가 사라졌는데도 기어이 짓겠대요. 경제성도 없어요. 바로 옆에 있는 군산공항도 연 60억 적자가 나고 보조금을 줘가며 겨우 하루 비행기 두 대 뜨고 내려요. 수요가 전혀 없다는 뜻이죠."

새만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서천갯벌 바로 옆이다. 새들이 서천갯벌과 새만금을 오가며 먹이활동을 한다. 멸종위기종만 해도 59종이나 된다. 그런 곳에 공항을 짓겠다는 것은 지구상의 생물다양성을 위해 보존하기로 한 유네스코와의 약속을 정부가 어기는 것이다. 순천만처럼 보존에 중점을 두면 자연을 위해서나 인류를 위해서나 이롭고, 자연스럽게 생태관광으로 이어져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더 나은 선택인데 개발주의자들과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고집을 수정할 생각이 없다. 참사가 일어날 확률이 그토록 높은데도.

"생명들을 지키고 예정된 사고를 막겠다는 활동가들을 정부는 마구잡이로 고소고발하고 있어요. 이전에도 그랬지만 윤석열 정부는 더 심하게 강경대응하고 입틀막 했죠. 우리는 계엄 이전에도 계엄과 같은 상황을 겪고 있었어요."

 사랑을 담아 그린 그림들
사랑을 담아 그린 그림들 ⓒ 조용미

12월 3일, 그는 친구로부터 계엄이라는 카톡을 받고 누구나 그랬듯이 합성이라고 생각했다. 티브이에서 생방송을 보고서야 진짜라는 걸 알았다. 밤새 군인들이 국회를 짓밟는 장면을 보면서 당장 서울로 올라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래도 그날의 감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는 쪽에 가까웠다.

며칠 후 계엄계획이 하나씩 밝혀지고, 저들에 반기를 드는 모든 사람들을 체포하고 벙커에 가두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진짜 놀라고 진짜 무서워졌다. 어떻게든 내란은 수습이 되겠지만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디까지 각오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즐겁게 활동하고 싶은데, 비장할 수밖에 없다는 게 화가 났다.

"내가 아는 게 별로 없었구나 싶더라고요. 계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꿈에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게다가 보수세력이 끈끈하고 강력한 줄은 알았지만, 지금 드러나는 뻔뻔함이 상상을 초월하잖아요. 장애인들은 더 힘들겠다는 생각도 뒤늦게 했어요.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들은 계엄 당일에는 계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혀 알지 못하여 더 불안했대요."

그런데 상상도 못 한 평등과 환대의 광장이 열렸다. 더 급진적이고 더 지구적인 투쟁을 만들어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늘 소수였는데, 그런 소수들이 급격히 연결되는 투쟁과 연대의 장이 이루어지는 걸 보면서 감격스러웠다.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다고 했을 때도 그들은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직접 앞자리에 서서 말 그대로 몸으로 길을 만들어내는 걸 체험하고,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그것도 아주 발랄한 묘사로.

"민주노총이나 전농에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태도를 가진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2030 여성들은 '저기 연대했다가 나중에 마상 입는 거 아닌가'하고 미리 따지거나 재지 않고 일단 연대하러 달려갔어요. 그러니까 민주노총과 전농도 변하는 거예요. 이게 바로 사랑이구나. 사랑은 조건을 달지 않고 먼저 마음을 내는 거였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어요."

사랑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그는 살짝 울컥했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순수성이 떠오르며 나도 따라서 콧날이 시큰해졌다. 그에게 "광장은 충전기"다. 힘들고 우울하고 앞이 안 보일 때 거리에 나온 사람들을 떠올리면 못할 게 없을 것 같다.

그는 투쟁현장에서 종종 그림을 그린다. 사람들이 잠시라도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보게 하기 위해서다.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를 위한 선전전을 할 때는 흰목물떼새와 게, 어부를 그렸고, 이번 탄핵집회에서는 군용차를 막아서는 시민을 그렸다. 그림이 팔리면 관련 단체에 기부를 한다.

"뱅크시만 거리에서 그리란 법이 있나요?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면 좋은 게, 딴짓하지 않고 빨리 완성할 수 있어요. 못 그린 부분을 가리려고 서둘러 그리거든요."

그 외에도 그는 '평등으로'라는 광장 신문을 나누고, 파면촉구를 위한 철야단식농성장을 지키고, 새만금신공항 취소판결 탄원서를 받았다. 파면이 내려진 후에도 그의 하루는 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이 바뀌고 내란세력을 몰아내도 지구가 망하면 무슨 소용인가. 살던 대로 살면 지구라는 행성에 인간의 자리는 없다. 1170일째 새만금천막농성을 하고 110차 회의를 하는 이유다.

그는 사회적 기업인 의료복지협동조합 소속으로 방문진료를 한다. 밥을 같이 해 먹고 책을 같이 읽고 지역화폐가 통용되는 한밭레츠 친구들과 삶을 나눈다. 수라갯벌 들기(전문가의 안내를 받으며 갯벌의 아름다움을 직접 느껴보는 활동)에 참여하고 갯벌 안내자 양성에도 함께 한다. 천막농성장에서는 즉석 밴드를 결성해서 놀거나 서각을 배우거나 새 키링 만들기 등의 활동이 펼쳐진다.

그는 스위스에서 살아본 적이 있다. 거기서 우리나라 소비 수준은 이미 최고에 이르렀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행복도는 최하위다. 이제는 성장 말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

"그렇게까지 경쟁이 심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소비와 소유를 많이 덜어내도 전혀 없어 보이지 않고(이게 중요해요) 재밌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다양한 삶의 형태들이 있어요."

그는 우선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전면적 비례대표제를 실시해서 양당제를 벗어나야 한다. 개발과 성장이 아닌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어야 한다.

"위성정당을 만든 건 정말 잘못이에요. 그때부터 국헌문란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요.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다시는 못하게 바꿔야 해요. 그리고 생태주의나 탈성장을 비전으로 제시하는 정당도 들어설 자리를 내주어야 해요. 민주당이 이걸 받으면 결국은 국민의힘 같은 극우정당이 쪼그라들고 진짜 보수와 진보 구도가 나올 텐데..."

그는 얼마 전 '당신이 가진 유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많은 걸 물려받은 것 같았다. 생태주의나 탈성장도 이전부터 고민해 오고 싸워온 사람들로부터 전달된 것이고, 좋아하는 취향도 문화적인 자산을 만들어온 인류 전체의 공유재로서 이어받을 수 있었던 거다. 이전의 덕후들이 물려준 것을 우리도 고이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구라는 행성까지.

그는 이번에 은퇴한 문형배 재판관에게 함께 생명들을 구하자고 편지를 보냈다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정성껏 그림을 그리고 소라모양의 씰까지 붙인 편지봉투였다. 어쩌면 답장을 받지 못할지라도 그는 그림을 그릴 때 행복했을 것이고 재밌는 시도였다며 즐거워할 것이다. 확실히 덕후다운 면모다.

BTS를 좋아하는 아미이기도 한 그는 며칠 전 영화 <콘클라베>를 보고 홀딱 반해서 끊었던 X(트위터)를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역시 덕질은 트위터라면서.

"덕후들은 좋아하는 마음이 다른 데로 확장되는 게 쉬운 것 같아요. 이번에도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광장으로 넓어진 거죠. 근데요, 덕질을 안 하는 사람들은 뭘 하며 시간을 보낼까요?"

그러게 나도 궁금하다. 하지만 실천가로만 보이는 그가 '생명들'을 사랑하는 덕후인 것처럼 알고 보면 다른 이들도 뭔가를 덕질하지 않을까. 덕질의 의미를 조금만 확장한다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천둥의 브런치입니다(https://brunch.co.kr/@toddle222)


#인터뷰#광장#도요새#콘클라베#B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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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toddle2) 내방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늘 무언가를 추구한다. 거실에는 모임이 끊이지 않았고 학교와 마을에서 사람들과 온갖 작당질을 꾸몄다.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해서 지금은 갈무리하지 못한 것들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쓰고 그리는 일을 한다. 에세이, 그림책, 소설을 넘나들며 막무가내로 쓴다. 깨어지고 부서진 것들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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