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자유학교 모래 놀이터고양자유학교 막둥이 아이들의 아지트 모래 놀이터. 우리 자랄 때는 흔한 풍경이 지금은 귀하고 소중한 장면이에요. ⓒ 고양자유학교
1980년대 후반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고1 담임 선생님이 칠판 위에 걸어두었던 급훈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평생 기억하라는 뜻으로 그랬다면 그 선생님의 의도는 성공적이다. 그것은 흔한 액자속 궁서체 문장이 아니라 실물 '깡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반에 대한 이러저러한 불만이 생길 때마다 그 괴이한 물체를 두드리며 "너희들 공부 안하면 어른 돼서 깡통찬다(거지된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거칠고 어이없는 훈육에 웃음이 날 수도 있겠지만 학창시절 내내 우리는 그런 야만 속에서 자랐고, 어른이 된 후에도 그런 가르침이 이미 내면화된 상태라,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빠져나올 수 없는 불안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함할 일은 저 거칠고 폭력적인 불안과 공포의 내면화 교육이 지금 더 교묘한 방식으로 우리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이 바로 인터넷강의가 보편화되면서 누구나 손쉽게 수강할 수 있게 된 일부 학원강사들의 소위 정신교육이다.
강좌내용과 무관한 강사들의 자기계발류 인생담과 성공담이 강의 중간 중간 여담처럼 소개되는 게 인강구성의 국룰이 된 지 오래다. 그 내용이라는 게 아무리 재미와 감동의 외피를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엔 '열심히 하라! 하면 된다! 안 하면 깡통찬다!' 식의 겁박 일색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경쟁교육의 중심에 있는 학교 현장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교육현장에 횡행하는 정신교육의 맨얼굴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 자살률 1위이고 출산율 최하위인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이런 교육 현실이 크게 한몫하고 있다는 건 이제 상식이 되었고, 한편으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성공한 사람들조차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다>(김정일) 참조). 오히려 다음 스텝의 성공을 위해 여전히 번아웃될 만큼의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야 하기에 삶이 우울하다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쯤되면 교육현장에 횡행하는 정신교육의 내용이 과연 진실한지 질문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말들이 맞다면 열심히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이 우울과 불안을 뭐라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런 질문에 우리 사회가 좀더 솔직하게 성찰하고 적극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내 아이는 대안학교를 6년째 다니고 있다. 공교육을 5년간 경험하고 대안학교를 선택한 경우라 누구보다 공교육과 대안교육의 차이를 현실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대안학교를 경험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표현에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대다수 대안학교 구성원들이 자부심을 갖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대안교육은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 행복 그 자체를 가르친다는 점이다.
많은 아이들이 학업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간혹 자살로 내몰리는 비극적 교육 현실을 애써 외면하면서까지 경쟁교육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 사실상 사교육과 구분되지 않는 - 공교육의 논리는 이렇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는 현재의 괴로움쯤은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 아시는가? 고기맛도 먹어본 놈이 안다는 사실을! 일상에서 행복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이 나중에 행복해지기는 쉽지 않다. 미래의 성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보하는 것이 습관적 일상이 되면, 결국 우리는 관성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다. 성공한 사람들이 성공 이후에 느끼는 우울감이나 무력감의 정체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반짝거리는 예술작품 같아요"

▲고양자유학교 아이들고양자유학교 아이들은 매년 자연 곁으로 들살이를 떠납니다. 스스로 먹고 입고 자는 생활을 하면서 더 단단해져 돌아와요. ⓒ 고양자유학교
몇 년 전 대안학교 중학부 아이들이 야외활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는데 한 여성분이 '어느 학교에 다니냐'고 묻더란다. 정년퇴임을 한 전직 중학교 교감인데 자신이 평생 보아왔던 아이들과 뭔가 다른 결을 이 아이들에게서 느꼈다는 것이다. 무엇이 다르다는 것이었을까? 얼마전 학교를 구경하러 온 경기도예술단체 회원들은 교정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아이들이 반짝거리는 예술작품 같아요." 도대체 이 분들은 대안학교 학생들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이렇게 말하면 대안학교에서 뭔가 특별한 것을 가르치고 있구나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 맞다. 아이들은 생명력 강한 존재들이기에 가만히만 두어도 그 자생적 생명성으로 저절로 밝고 행복할 수 있는데, 현실은 교육(사실상 입시강의)이라는 미명하에 이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매일 학원과 학교에서 "열심히 해, 아직도 부족해, 안 되면 네탓이야!"라는 암묵적 때론 노골적 정신교육으로 아이들을 위협하고 죄책감으로 내모는 상황, 나아가 주변 누구누구와 비교당하는 어린 학생들이 과연 밝고 행복할 수 있겠는가?
대안학교에선 매일매일이 세상과의 즐거운 만남이고 자기 탐구 시간이기에 경쟁교육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아이들은 각자의 성향과 방식으로 세상을 누리고 삶을 준비하는 법을 배우고, 선생님들은 그런 다양한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세상을 존중하면서 교육자(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내면 속 가능성들을 이끌어내는 행위다)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 또 부모들은 그런 학교의 방침과 선생님들을 신뢰하며 아이교육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온전히 누리면서 동시에 대안교육의 또 다른 주체가 된다.
자기가 존중받는 만큼 타인을 존중할 줄 알고, 획일적 목표가 아닌 저마다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일구어 나가는 교육과정을 충실히 체험한 아이들은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마련이다. 실제 대안학교 졸업생들의 삶을 추적해보면 이들은 자존감 높은 어른들이 되어 있다. 무엇을 하는지와 상관없이 이 친구들로부터 "저는 삶이 풍요롭습니다"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은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고양자유학교 숲터 아이들의 리코더 공연일년 중 가장 큰 학교 축제 <소리빛누리>에서 리코더 공연 중인 10학년 아이들 ⓒ 고양자유학교
공교육에서 강조하고 있는 경쟁에서 이기는 법, 성공하는 법 등이 미래의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행복은 조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조건을 성취해 얻은 기쁨은 그 순간의 기쁨일 뿐이고, 그 성취된 조건에 익숙해질 즈음 기쁨은 더 나은 조건을 향한 불안으로 변질되기 쉽다. 자기를 존중하지 않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자존심은 셀지 모르나 자존감은 결코 높을 수 없다. 남들보다 무엇인가를 잘해야 채워지는 자존심은 그 시효가 짧고 견고하지 못하다. 반면에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자존감은 주어진 조건과도 타인과의 비교와도 무관한, 행복의 배경이 된다.
얼마 전 새학기 맞이 학교 게시물에 달린 부모님의 댓글이 눈에 띄어 이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혹시 여러분 중 최근에 자녀나 주변 학생들로부터 학교 가는 게 즐겁고 매순간이 행복하다는 말을 들어본 분 계시는가? 아이들에게 AI프로그래밍을 하는 건지 교육을 하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운 작금의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서는 당분간 만나보기 힘들 것 같은 '학교 가는 게 즐거운 아이들'이 넘쳐나는 곳이 바로 대안학교이다.
"방학이 끝날때마다 아쉬워했던 OO이가 어제 잠들기 전, '학교 가는게 너무 좋아. 아침에 늦잠 못자는 건 아쉽지만 요즘은 (학교에 가면) 재미없는 순간이 하나도 없어!'라고 말해줬어요. 선생님과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한 거 같아 그저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소현은 고양자유학교 운영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