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arkusspiske on Unsplash
2000년대 초, 영국의 한 대학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던 때가 생각난다. 내 역할은 장애를 가진 영국인 대학생이 학교생활을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그때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영국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이었다.
버스에는 항상 휠체어 이용자와 유모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대학 캠퍼스에서도 휠체어를 탄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당시 나는 단순하게 '외국에는 장애인이 많구나'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한국에 장애인이 적은 게 아니라, 그들이 사회생활을 하기에 기반 시설이나 인프라가 부족해 밖에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20년 전의 나는 그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나는 디지털 세상으로 강제 이주하게 됐다.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참여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흥미롭게도 10~20명의 작은 클래스마다 장애 아동의 부모가 적어도 한 분씩은 계셨다. 그들 대부분이 해외 이주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장애 자녀를 한국에서 제대로 키우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유럽이나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이 장애인을 대하는 문화가 한국보다 더 나았다고 했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들... "와, 장애가 있는데도 저렇게 긍정적이네요!" "그런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에요." "휠체어 타고도 출근하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이런 말들이 모여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든다.
▲ 장애인에겐 과도한 주목과 찬사를 (일상이 감동 스토리가 됨)
▲ 비장애인에겐 낮은 기대치를 (장애인은 뭔가를 '극복'해야 한다는 전제)
▲ 사회 전체엔 분리 의식을 (우리와 그들의 구분)
그런데 우리가 정말 이런 말들을 의도적으로 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걸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일 것이다. 나 자신도 언젠가부터 내면화된 고정관념에 따라 말하고 있었다. 장애인의 일상을 '특별한 일'로 여기는 관점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보면 더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다리가 없는데도 마라톤을 완주한 감동적인 이야기", "청각장애가 있지만 뛰어난 미술 실력을 갖춘 아이" 같은 헤드라인들. 이런 게시물들은 '좋아요'와 공유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장애인이 일상생활을 하거나 자신의 관심사를 추구하는 것이 왜 특별한 영감의 원천이 돼야 할까. 그것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장애인의 삶을 '정상'과 다른 것, '극복'해야 하는 무언가로 보기 때문은 아닐까?
문득 오래 전 내가 영국에서 자원봉사를 했을 때 장애인 친구와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사람들이 나를 볼 때마다 '너는 장애가 있는데도 웃을 수 있네?' '그런 상황에서도 긍정적이라니 대단해!' 이런 말을 해. 솔직히 좀 피곤해.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왜 내 일상이 누군가의 감동 스토리가 돼야 하는 거지?"
무의식적 편견은 종종 이런 '착한 차별'의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차별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칭찬하고 격려하려는 마음이 크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장애인을 '다른 존재'로 보는 시선이 깔려 있다. 우리는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사회 여러 곳에서 반복해서 접한다. 이런 메시지들이 모여 우리의 무의식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레 일상의 언어로 표출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경험한 것만 알고 한정된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편견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인정하고, 무의식적 편견이 어디에 있는지 인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휠체어 이용자를 보고 '휠체어'라는 하나의 특성만으로 한 사람의 정체성 전체를 규정하는 오류를 범했었다. 그 사람의 취미, 직업, 계획 등 다양한 요소들이 한 사람을 정의하는데, 나는 쉽게 '휠체어를 탄 사람'으로만 보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우리가 만드는 장벽은 물리적인 것보다 더 견고할지도 모른다. 경사로나 엘리베이터의 부족함은 눈에 보이지만, 우리의 인식과 언어 속에 숨겨진 장벽은 훨씬 더 파악하기 어렵다. 그리고 종종 더 해롭다.
영국에서 장애 학생과 함께 생활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이 자신의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였다. 그들에게 장애는 자기 정체성의 일부일 뿐, 그들을 정의하는 전부가 아니었다. 그리고 사회도 그렇게 바라봤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움을 주되, 과도한 칭찬이나 동정은 없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의 고유한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특성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다양성 자체를 축하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포용의 문화가 시작될 것이다.
당신의 오늘 하루, 어떤 말과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볼 것인가? 작은 변화가 모여 큰 차이를 만든다.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