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일혁명 조선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이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항일혁명가기념단체연합, 독립유공자유족회, 6.10만세운동유족회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기념식을 마친 뒤 참가자들이 서대문형무소 옥사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권우성
"항일혁명가들이 추구한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은 결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인간해방'이라는 하나의 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두 개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비참하고 열악한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목표이자 전략이었다."
17일, 항일혁명 조선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낭독한 선언문의 일부이다. 1925년 4월 17일, 일제의 감시망을 뚫고 조선공산당을 결성한 독립운동가들의 전략적 목표를 정의한 규정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가혹한 탄압을 받았던 사회주의자들은 해방된 뒤에도 일제경찰 출신 고문귀(拷問鬼)들에게 쫓겨다녔고, 일제강점기보다 더 혹독한 탄압을 받아야만 했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기념식은 오랫동안 '죽은 역사'로 묻혀있었던 조선공산당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적 복권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는 항일혁명가기념단체연합이 주관하고, (사)독립유공자유족회. 6·10만세운동유족회가 주최했다.
이날 김삼열 100주년공동준비위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니 우리 역사 중에서 열정적으로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의 숨겨진 역사가 다시 살아나는 듯한 생각이 든다"면서 "1945년 광복을 맞이한 뒤에도 친일민족 반역자들이 역사를 농단하고 사회 지도층이 돼서, 윤석열 같은 정말 미묘한 자들이 역사를 농단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던 것에서 시작된다"고 밝혔다.

▲‘항일혁명 조선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이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항일혁명가기념단체연합, 독립유공자유족회, 6.10만세운동유족회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황석영 항일혁명가기념단체연합 이사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황석영 항일혁명가기념단체연합 이사장은 "항일 독립운동을 벌인 우리 선열들의 노력에도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반민족적 역사관이 버젓하게 횡행하고 있다"면서 "매국적 인사들에 의하여 식민지 조선인의 국적이 일본인이었다는 강변까지 가능해졌지만, 당시 조선인은 통치권을 빼앗기고 국토를 강점당한 피점령지의 인민으로서 압박을 벗어나기 위하여 투쟁하던 조선인이었고, 그들의 상징적인 정부는 엄연히 망명 정부로서 상해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피력했다.
황 이사장은 이어 "윤석열은 비상 계엄을 선포하면서 북한의 위협과 친북 반국가 세력 척결이라는 명분을 내세웠고, 국민에 의해 과반수로 선출된 야당 의원들을 반국가 세력이라고 규정했다"면서 "우리는 더욱 선진적인 민주화와 동북아의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탈이념적 역사적 탐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조선공산당에 대한 영상을 시청했으며, 그 뒤 행사장에서는 '조선공산당선언 정치강령'이 울려퍼졌다. 이어 임성욱 항일혁명가기념단체연합 이사는 '항일혁명 조선공산당 100주년 기념 선언'을 낭독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1925년 4월 17일 오후 1시에 "일본제국주의의 탄압과 착취에 맞서 승리의 그날까지 함께 싸울 것을 굳게 맹세하며, 오랫동안 준비하고 꿈꿔왔던 항일혁명의 전위 조선공산당을 창립했다"면서 조선공산당이 추구했던 항일혁명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첫째, 이들은 제국주의 강대국이 식민지 약소국을 억압하고 착취하지 않는 자유로운 세상, 즉 민족해방을 꿈꾸었다. 그리하여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전 민족이 단결하여 민족해방투쟁을 벌임으로써 일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독립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다.
둘째, 이들은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지 않는 평등한 세상, 즉 계급해방을 꿈꾸었다. 그리하여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노동자·농민을 비롯한 전 민중이 단결하여 계급해방투쟁을 벌임으로써 일본 자본주의 약탈 세력을 몰아내고 서민 대중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항일혁명 조선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이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항일혁명가기념단체연합, 독립유공자유족회, 6.10만세운동유족회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기념식 참가자들이 항일혁명가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 권우성

▲‘항일혁명 조선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이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항일혁명가기념단체연합, 독립유공자유족회, 6.10만세운동유족회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하지만 이들은 "당시 일제는 그 어떤 독립운동 세력보다도 사회주의 세력의 확산을 두려워했던 것이며, 치안유지법이라고 하는 악랄한 법률을 만들어 수차례에 걸쳐 조선공산당을 파괴하였고, 수많은 항일혁명가들을 체포하여 잔인하게 고문하고 감옥에 가두었다"면서 "그 과정에서 수많은 혁명가들이 목숨을 잃거나 육체와 정신이 파괴되고 말았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탄압에도 6·10만세운동, 신간회 창립, 광주학생독립운동, 원산총파업, 적색노동조합운동, 적색농민조합운동 등이 펼쳐졌다. 따라서 이들은 "일제 말기 대부분의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변절했지만, 살아남은 소수의 항일혁명가들은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일제에 맞서 투쟁의 외길을 걸었다"고 평가했다.
항일혁명가들에 대한 탄압은 해방된 뒤에도 이어졌다. 이들은 "일제가 혁명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치안유지법'은 일시적으로 사라졌다가 '국가보안법'으로 이름만 바꿔 부활했다"면서 "혁명가들은 다시 쫓기기 시작했고, 해방된 조국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다시 감옥과 사형장이었다"고 술회했다.
이들은 "해방된 지 무려 50년이 지난 1995년에 이르러 대한민국 정부가 이동휘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함으로써 항일혁명가로서는 최초로 독립유공자가 탄생하게 되었다"면서 "1996년에는 이병희, 2002년에는 김사국, 2005년에는 권오상, 권오설, 김단야, 김재봉, 김철수, 김한, 여운형, 조동호, 차금봉, 2006년에는 이재유, 이효정 등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만시지탄이지만 일부 항일혁명가들의 공로를 국가가 뒤늦게나마 공식적으로 인정했
다는 점은 매우 반갑고도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아직도 서훈을 받지 못한 항일혁명가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점에 유념하여 정부는 친일 반공 후예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당당하게 혁명가들의 이름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한편, 극우 유튜버들이 이날 기념식장인 서대문형무소 출구쪽에 모여들어 한 때 긴장감이 흐르기도 했다.